<아무도 죽지 않은 장례>없는 동안

by이지연

《아무도 죽지 않은 장례》

06. 없는 동안






수연이 돌아온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맞은편 직원이 수연을 불렀다.


“차장님, 이것 좀 봐주실 수 있어요?”


수연이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직원의 모니터에는 익숙한 엑셀 양식이 떠 있었다. 수연이 만든 것이었다. 정확히는, 수연이 만들었던 것에서 시작된 파일이었다.


“이거 아직 써?”


수연이 물었다.


“네. 계속 쓰고 있어요.”


직원이 셀 하나를 가리켰다.


“근데 이 수식이 가끔 이상하게 나와서요.”


수연은 마우스를 받아 클릭했다. 수식창을 열었다.


“여기 기준일 때문이야.”


“아.”


“월말이면 이 날짜를 먼저 바꿔야 돼.”


수연이 셀 하나를 더 열었다. 손이 멈췄다. 화면 오른쪽에 처음 보는 시트가 세 개 붙어 있었다.


“이건 뭐야?”


“차장님 쉬시는 동안 추가했어요.”


직원이 마우스를 다시 받아갔다.


“이걸로 하니까 월말에 빠지는 게 좀 줄더라고요.”


새 시트를 열었다. 수연이 알던 양식과 모양은 비슷했다. 대신 입력하는 순서가 바뀌어 있었고, 예전에는 직접 확인하던 값 몇 개가 자동으로 불러와졌다.


“이거 누가 만든 거야?”


“저희 둘이요. 하다가 자꾸 틀려서.”


직원이 조금 머쓱한 얼굴로 웃었다. 수연도 웃었다.


“더 좋아졌네.”


“진짜요?”


“응.”


직원의 얼굴이 밝아졌다.


“처음엔 차장님 파일 건드려도 되나 했는데.”


“왜.”


“괜히 망칠까 봐.”


수연은 화면을 한번 더 봤다.


“잘했는데, 뭐.”


직원이 다시 마우스를 움직였다.


“여기 이것도 바꿨어요.”


수연은 옆에 서서 설명을 들었다. 자신이 만든 파일이었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이 이 파일을 물어보면 수연이 대답했다. 이제는 수연이 물었다.


“이건 왜 이렇게 바꿨어?”


직원이 설명했다. 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낫겠다.”


모니터 한쪽에 작은 메신저 알림이 떴다. 직원이 창을 닫았다.


“감사해요, 차장님.”


“응.”


수연은 자리로 돌아왔다. 자기 모니터에는 신규업무 교육자료가 열려 있었다. 오전 열한 시가 조금 넘어서 부서장이 지나가며 물었다.


“새 업무는 좀 어떠세요?”


“하고 있어요.”


“어렵진 않으시고?”


“어렵진 않아요.”


부서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지나가려 했다. 수연이 불렀다.


“부장님.”


그가 돌아봤다.


“기존 업무는 지금 두 분이 하는 거죠?”


“네.”


“업무량은 괜찮아요?”


부서장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종이컵을 한 모금 마셨다.


“지금은 돌아가요.”


수연은 조금 있다가 물었다.


“제가 일부 다시 받으면 안 돼요?”


“그건 전체 업무분장 보고요.”


“언제쯤 정해져요?”


“조직개편안 확정되면 한번 봅시다.”


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서장은 다시 자기 자리로 갔다. 수연은 신규업무 화면으로 돌아갔다. 몇 줄을 읽었다. 마우스 휠을 내렸다. 다시 위로 올렸다. 점심시간이 되자 직원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연도 휴대폰을 챙겼다. 맞은편 직원이 말했다.


“차장님, 오늘 같이 가실래요?”


“어디 가는데?”


“아래 새로 생긴 덮밥집이요.”


수연이 웃었다.


“새로 생긴 데가 왜 이렇게 많아.”


“차장님 안 계실 때 많이 바뀌었어요.”


직원은 아무 뜻 없이 말했다. 수연도 아무 말 없이 가방에서 카드를 꺼냈다. 오후 네 시가 조금 넘어 수연은 팀 공용폴더를 열었다. 전날에는 열어보다가 닫았던 폴더였다.


`김수연_운영관리`


이번에는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수정한 파일이 있었다. 그 아래로 날짜가 이어졌다. 수연이 없는 동안 만들어진 파일들이었다. 날짜순으로 정렬했다.


여덟 달치.


처음 몇 개는 수연이 쓰던 이름 그대로였다.


`운영관리_월말`

`운영관리_확인`

`운영관리_최종`


몇 달이 지나자 파일명 끝에 붙는 말이 달라졌다. 폴더가 하나 추가됐고, 자료도 둘로 나뉘었다. 수연은 가장 최근 파일을 열었다. 익숙한 표가 화면에 나타났다. 자기가 만들었던 열과 수식은 남아 있었다. 그 사이에 모르는 열이 들어와 있었다.


수연은 한 셀을 클릭했다. 수식창을 열었다. 처음 보는 식이었다. 엔터를 눌렀다. 값은 정상적으로 나왔다. 옆 셀도 눌러봤다. 그것도 맞았다. 수연은 한동안 화면을 보고 있었다. 처음 만들 때는 밤늦게까지 붙잡고 있었던 파일이었다. 월말마다 오류가 났고, 수식을 고치다 처음부터 다시 만든 적도 있었다. 몇 년 동안 조금씩 손을 봤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파일 중 하나였다. 그 파일이 여전히 있었다. 자신이 모르는 부분까지 생긴 채로.


수연은 파일을 닫았다. 저장 여부를 묻는 창은 뜨지 않았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후 4시 53분.

팀 단체 메신저에 다음 주 일정표가 올라왔다.


월요일.

고객 미팅, 담당자 이름 둘.


화요일에는 내부 점검이 있었다.

수요일 운영회의.

목요일에는 월말 사전 검토가 잡혀 있었다.


수연은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 금요일에서 자기 이름을 찾았다.


`신규업무 교육 결과 공유 - 김수연`


한 줄이었다.


수연은 옆에 놓인 메모장을 펼쳤다.


금요일.

`신규업무 교육 결과 공유`


그대로 옮겨 적었다. 펜 끝이 종이 위에서 잠깐 멈췄다. 수연은 메모장을 덮지 않았다.

모니터에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차례로 놓여 있었다.



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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