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죽지 않은 장례》
05. 여덟 달
오전 10시 14분.
수연이 돌아온 지 사흘째였다. 유진은 평가시스템에서 김수연의 이름을 찾았다. 이름 오른쪽의 등급란은 비어 있었다. 조정 전 평가 제출 마감은 사흘 뒤였다. 유진은 상세 화면을 열었다. 평가자 의견도 아직 없었다. 창을 닫으려던 순간 메신저 알림이 떴다.
`차장님, 김수연 차장 평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김수연의 부서장이었다. 유진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공유폴더에서 평가운영 기준을 열었다.
중도입사자, 부서이동자, 휴직자, 평가기간 중 장기부재자.
비슷해 보이는 이름은 여러 개였다. 그중 어느 항목에도 수연의 여덟 달은 딱 맞게 들어가지 않았다. 유진은 휴직자 부분을 다시 읽었다. 실제 근무기간의 업무수행과 성과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문장은 짧았다. 메신저 창으로 돌아왔다.
`실제 근무기간 기준으로 평가해 주시면 됩니다.`
곧 답이 왔다.
`며칠 안 됐는데요.`
유진은 키보드 위에서 손을 멈췄다.
`현재 확인 가능한 업무수행을 기준으로 봐주세요.`
이번에는 답이 바로 오지 않았다. 화면 위에 `입력 중...`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가 또 사라졌다. 한참 뒤 한 줄이 왔다.
`판단하기가 어렵네요.`
유진은 평가등급 기준을 열었다.
A: 탁월한 성과
B: 기대 수준 충족
C: 성과 또는 업무수행 개선 필요
D: 현저한 개선 필요
판단하기 어렵다는 칸은 없었다. 점심시간을 십여 분 앞두고 전화가 왔다. 수연의 부서장이었다.
“수연 차장 평가 말인데요.”
“네.”
“그냥 B 주기는 좀 그렇지 않아요?”
유진은 의자에 등을 붙였다.
“왜요?”
“올해 한 게 거의 없잖아요.”
“휴직했으니까요.”
“그건 알죠.”
수화기 너머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몇 번 빠르게 이어지다가 멈췄다.
“다른 직원들은 계속 일했잖아요.”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부서장이 말을 이었다.
“목표 잡고 계속 일한 사람이 있고, 막 돌아온 사람이 있는데 똑같이 평가하면 그 사람들한테는 뭐라고 설명해요?”
유진은 바카라상 위 달력을 바라봤다. 평가 마감일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그건 저도 설명이 필요하다고 봐요.”
전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유진이 물었다.
“그런데 휴직한 기간 때문에 C를 주시는 건 아니죠?”
“그건 아니고요.”
“그럼 실제 근무기간에 C로 볼 만한 사유가 있었어요?”
이번에는 키보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 뒤 부서장이 말했다.
“아직은 모르죠.”
유진은 바카라상 위에 놓인 볼펜 뚜껑을 닫았다.
“그럼 지금은 모르는 거네요.”
“없는 건지, 아직 모르는 건지는 모르죠.”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도 틀리지 않았다.
유진의 자리 맞은편에서 직원 하나가 의자를 밀며 일어났다.
“쌀국수 먹을 사람?”
사무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움직였다. 누군가는 지갑을 챙겼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부서장이 짧게 웃었다.
“인사는 참 답답해요.”
유진도 웃었다.
“저도 지금은 답이 없어서요.”
“일단 볼게요.”
통화가 끝났다. 유진은 평가시스템으로 돌아갔다.
김수연.
등급란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창을 닫았다.
오후 세 시 여덟 분.
다른 업무를 처리하다가 평가시스템을 다시 열었다. 수연의 이름 옆에 글자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C`
조정 전 1차 등급이었다. 아직 평가조정도 남아 있었고, 확정까지는 몇 단계를 더 지나야 했다. 유진은 평가자 의견을 열었다.
첫 번째 문장.
`평가기간 중 실제 근무기간이 짧아 성과 확인이 제한적임.`
그 아래.
`복귀 후 신규업무 적응도 추가 관찰 필요.`
유진의 마우스가 두 번째 문장에서 멈췄다.
`적응도`
수연이 돌아온 지 사흘째였다. 첫날 아침에는 출입카드가 열리지 않았다. 업무시스템 권한도 오후가 돼서야 살아났다. 수연은 그날부터 다른 사람에게 새 업무를 배우고 있었다. 유진은 문장 끝에 커서를 놓았다가 뗐다. 평가자 의견은 평가자가 쓰는 것이었다. 유진이 대신 고칠 수는 없었다. 메신저를 열었다.
`C 평가 사유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작성 부탁드립니다. 휴직기간 또는 복귀 초기라는 사실 자체가 평가근거가 되지 않도록 확인해 주세요.`
전송.
잠시 뒤 숫자 `1`이 사라졌다.
읽음.
답은 오지 않았다.
오후가 지나면서 유진은 다른 일을 했다. 메일에 답했고, 보상 안 자료를 하나 확인했다. 전화도 몇 번 받았다. 그 사이 평가화면을 두 번 더 열었다. 두 번 모두 C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졌을 때 유진은 수연의 인사기록을 열었다.
입사일, 직급, 부서, 발령 이력.
화면을 조금 더 내렸다.
`휴직 시작일`
그 아래 날짜.
다음 줄에는
`휴직 종료일`
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복귀일`
세 날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유진은 시작일과 종료일을 번갈아 봤다.
여덟 달.
그 사이 수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왜 쉬었는지도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회사가 승인했다는 기록만 남아 있었다. 유진은 마우스 휠을 한 번 위로 올렸다. 다시 내렸다.
휴직 시작일, 휴직 종료일, 복귀일.
시작과 끝은 있었다. 그 사이를 입력하는 칸은 없었다. 두 날짜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