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죽지 않은 장례》
00. 프롤로그
오후 5시 49분.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퇴직자 계정 종료 예정 안내`
서유진은 첨부된 체크리스트를 열었다.
사원증 반납.
노트북 반납.
법인카드 확인.
보안서약.
메일 계정 종료.
앞의 네 칸에는 이미 체크 표시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 한 칸만 비어 있었다.
유진은 복도 끝을 바라봤다.
남자는 작은 종이상자를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머그컵 하나와 충전기, 오래된 바카라 두 권이 상자 밖으로 조금 보였다.
옆에 있던 후배가 무언가를 말했다.
남자가 웃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는 상자를 한쪽 팔로 고쳐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손을 한 번 들었다.
유진은 자리로 돌아왔다.
모니터에는 여전히 마지막 한 칸이 비어 있었다.
`계정 종료 확인`
마우스를 올렸다.
클릭했다.
잠시 뒤 화면 오른쪽 아래에 작은 문구가 나타났다.
'처리 완료'
다음 날 아침 그의 바카라상 위에는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전화는 다른 사람이 받았다.
회의도 예정대로 시작됐다.
조직도에서는 이름 하나가 사라져 있었다.
누구도 죽지 않았다.
회사도 문을 닫지 않았다.
복합기는 여덟 시가 되기 전에 첫 장을 뽑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