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짓는 문장 85.
가진 것 안에 이미 다 있다
Everything you need
is already within what you hold
아침이 어수선하다. 내가 그렇다.
서랍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았다. 집었다가 내려놓고, 넣었다가 다시 뒤적인다. 방을 몇 바퀴 돌고 나면, 아까 본 자리를 다시 살핀다. 설마 하는 마음이 같은 곳을 몇 번씩 확인한다. 반지가 없다.
도대체 어디다 둔 거지?
스페인에 와서 며칠 째,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욕실에서 떨어뜨린 칫솔을 주우려고 허리를 굽혔는데 타일 사이에 끼어 빛나고 있다. 여기에 이렇게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손가락에 다시 끼고는 얼마나 좋던지 반지를 한 참 바라봤다.
모아 둔 오렌지 껍질과 달걀 껍데기를 버리려고 정원 모퉁이로 갔다. Mina 작가는 모든 음식물 쓰레기를 친환경적으로 처리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사진 속 공간은 자연의 순환방식으로 썩히고 분해시킨다. 내용물을 버린 후, 모아 둔 마른 나뭇잎이나 잔가지, 흙으로 덮어버리면 그만이다. 겨울 내내 벽난로를 태웠던 장작의 재와 함께 섞어서 정원의 거름으로 사용한다. 썩는 냄새가 날 만도 한데 전혀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오히려 흙냄새와 마른 풀냄새만 난다.
버린 것들을 꼼꼼하게 잘 덮어두려다가
아. 뿔. 싸...
반지가 훌러덩 벗겨져서 풀잎 사이로 떨어졌다. 그런데 반지가 보인다.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다 가늘고 긴 나뭇가지를 발견했다.
조심조심...
가지에 반지를 끼우고는 진땀 나게 끌어올리다가
놓. 쳤. 다...
반지가 보이지 않는다.
아...
저 깊은데로 들어가야 하나.
구덩이를 파 놓은 건지도 몰라서 무턱대고 들어가긴 망설여진다.
가만히 서서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풀잎 사이사이를 샅샅이 훑었다.
안. 보. 인. 다.
아까보다 조금 더 굵은 나뭇가지를 주워서 이리저리 조심스럽게 파헤쳤다.
반. 짝. 반. 짝.
이렇게라도 찾았다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온 정성과 마음을 모아 몸을 바짝 굽혔다.
벽 쪽으로 위태롭게 걸려있는 반지를 나무줄기에 끼워서 아까처럼 실수하지 않으려 숨도 쉬지 않았다.
조금... 더.. 조... 금... 만... 더...
건. 졌. 다!
누군가 이런 내 모습을 봤다면 웃을게 뻔하다. 남편은 더 할 것이다.
스페인으로 떠나는 전 날도 그랬다.
남편이 물을 마시다가 나를 보더니 말한다.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해?"
"안경 찾아."
분명 쓰고 있었는데, 벗어 둔 기억이 없다. 바카라상부터 본다. 거기 없으면 거실 탁자, 그래도 없으면 정수기 위, 늘 두는 자리만 몇 군데 있는데 아무리 살펴도 없다. 설마 하는 마음에 선반을 뒤지고, 방구석구석을 보게 된다. 익숙한 경로를 오가느라 마음까지 급해진다.
"어디에 뒀지..."
말도 흐릿해지고 짧아진다.
남편이 피식 웃는다
"쓰고 있는 건 뭐야?"
아차... 쓰고 있다.
그제야 코 옆에 닿는 얇은 압이 느껴진다. 귀 뒤를 가볍게 누르고 있던 자리가 뒤늦게 또렷해진다. 이렇게 껌딱지처럼 얼굴에 붙어있는데, 처음 만져 보는 것처럼 낯설다. 없어진 게 아니라, 내가 의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경을 쓴 채로 방 안을 몇 바퀴나 돌았다.
이미 가진 것들을 종종 없는 쪽에서 찾는다. 코에 잘 걸려 있는 안경을 찾아 방 안을 몇 바퀴나 돌듯, 반지를 잃어버린 줄 알고 마음을 바쁘게 하듯이 말이다. 그래서일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일수록 오히려 보이지 않는다. 안경은 시야를 만들어 주지만 시야 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늘 끼던 반지가 없으면 그때서야 부랴부랴 찾게 된다. 안경도 그렇지만, 두 번이나 거듭 찾게 된 반지 해프닝도 처음 가지고 있던 것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 잃어버리는 과정을 통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더욱 뚜렷하게 인식한다.
깊이 알고 싶은 창조성이나 잠재력도 그와 비슷하다. 외부로부터 새롭게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 곳곳에 숨어 있는데 보이지 않을 뿐이다. 반지가 풀더미 속으로 떨어져 잠시 숨었듯, 내 안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곳에 놓여 있다. 그것을 찾는 일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보지 못하던 것을 다시 관찰하고 자각하는 일이다. 그래서 인식은 재발견에 가깝다.
조급함을 내려놓는 일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기다리는 일
이미 있는 것을 향해 집중하는 일
삶은 자주 없는 것을 채우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미 있는 것을 알아채라고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안경을 쓰고도 안경을 찾는 나처럼 우리는 이미 있으면서 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충분한데도 부족하다고 느끼고,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도 없다고 생각한다.
가지고 있는 것은 가질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막 피어난 인식은 무한한 잠재성을 열고 드러낸다.
글벗 되어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주어진 것들로 소중한 하루 보내시길 바래요♡
사진. by mocalem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