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짓는 문장 87.
삶은 연결 속에서 자란다
Life grows
through quiet connections
병원이 왜 이렇게 아름다워야 했을까?
파밀리아 대성당 주변에 있는 산 파우 병원(Hospital de Sant Pau)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20세기 초, 카탈류냐 모더니즘 건축가 루이스 도메네크 몬타네르(Lluís Domènech i Montaner)가 복원한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이다. 붉은 벽돌과 햇빛이 스며드는 긴 복도 터널과 아치형 천장들. 건물들 사이에는 햇빛과 바람이 지나가도록 정원이 놓여 있고, 병실마다 자연광이 깊숙이 들어온다.
Hospital.
병원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hospitality, hospice, host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나그네를 맞이하고, 환자를 쉬게 하고 돌보는 마음. 병원과 환대가 원래 같은 뿌리의 언어였다는 사실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새삼스럽지 않음에도 새롭게 다시 돌아보는 단어를 품는다.
병원 지하의 긴 복도 터널은 모든 건물과 통하게 설계되었다. 이곳엔 응급실이 있고, 환자와 의료진이 날씨와 외부의 시선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이동할 수 있도록 연결되어 있다. 효율적인 구조다. 어두운 복도 곳곳에 하늘을 향한 불투명 창이 햇빛을 바닥으로 쏟아놓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멈추게 된다. 병원 특유의 긴장감보다 편안히 쉬게 하려는 평안함마저 느낀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병만 고치는 일이 아니었구나.
몸이 먼저 나아도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면 사람은 오래 아프다. 빛과 바람, 정원과 건물까지도 치료의 일부처럼 보인다. 나그네와 병자들, 그들을 돌본 사람들까지 그 공간에서 함께 낮과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그래서 병원과 환대가 같은 뿌리의 언어였는지도 모른다.
환대는 친절하게 맞이하는 태도를 넘어서, 한 사람이 편히 머물 수 있도록 곁을 내어주는 일이다.
토요일이면 성당 앞에 시장이 선다. 말은 알아듣지 못해도 삶을 사는 활력을 느낀다. Mina작가의 집도 그렇다. 남은 음식물은 정원의 흙으로 돌아가고, 흙은 다시 채소를 키워 식탁에 올린다. 사람들은 잠시 머물다 떠나고, 이어서 그 자리를 채운다. 잘하려 애쓰지 않고, 서툴러도 괜찮은 마음이 편안하게 한다.
에머슨은 '사람은 누구나 지구의 가장 먼 곳을 연결하는 법칙을 알지 못하고서는 자신의 구두끈을 맬 수없다'라고 했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이 문장이 내 생활 속으로 가깝게 다가온다. 구두끈을 너무 느슨하게 매면 걸을 때 자꾸 발이 헛돌고, 너무 꽉 조이면 발등이 아프다. 오래 걷기 위해서는 적당한 힘과 균형이 필요하다. 손의 감각으로 끈의 당김을 조절하고, 몸이 중심을 맞추며 매듭을 묶어야 한다. 아주 작은 행동 같지만 그 안에는 몸의 감각과 긴장, 균형과 타이밍이 함께 움직인다.
스페인에 온 처음 며칠은 작은 일에도 긴장했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방향을 다시 확인하고, 역 이름을 놓칠까 봐 더듬이를 세웠다. 장을 볼 때도 익숙한 브랜드 하나 없는 진열대 앞에서 긴 탐색을 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낯선 생활이 천천히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구글 맵만 붙들고 빠르게 움직이면 마음이 먼저 굳어졌고, 반대로 무작정 걷다 보면 엉뚱한 골목으로 들어서기도 했다. 익숙하지 않고 낯선 것들은 항상 내 몸과 정신의 균형을 새롭게 배우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균형은 혼자 힘으로만 만들어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내게 길을 알려주었고, 어떤 사람은 나의 서툰 말을 끝까지 듣고 기다려주었다. Mina작가의 집에 머무는 동안에도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돌봄을 받는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산 파우 병원(Hospital de Sant Pau)의 긴 복도를 걸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오갈 데 없는 행자와 병자를 거둔 그곳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으며 삶의 균형을 맞춰가도록 돕는 공간이었다. 구두끈 하나를 묶는 일처럼 사소해 보여도, 사실은 몸과 정신과 세상의 환경이 함께 맞물려야 가능한 일이다.
삶을 사는 동안 내 힘으로만 해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구두끈을 매는 사소한 반복과 행동에 하루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내 몫이라면, 그 시간을 이끌어 오신 분은 하나님이시란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우연 같은 만남을 통해 우리의 삶을 더 넓고 깊게 묶어가신다.
산 파우 병원을 뒤로하며 새긴 것은 건물의 아름다움을 넘어선 환대의 마음이었다.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 인해 다시 살아간다.
글벗되어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페인 여행, 까사 미나로 오세요♡
https://minas.casa/es/casa-mina/
사진. by mocalem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