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헌혈을 해보니

by정숙진

한 때, 헌혈을 꾸준히 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안 하다가 영국에 와서 그것도 서른이 넘어 처음 해보고 이후 계속 해온 것이다.


한국이 아닌 영국에 와서 첫 헌혈을 한 이유는, 누구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계기가 엉뚱할 때가 있듯 나도 우연히 그렇게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군대에서 초코파이를 얻어먹으려...

헌혈의 집을 지나다 붙들려...

친구를 따라갔다 호기심에...

영화표나 선물에 유혹되어...


헌혈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채혈 바늘이 무섭기도 했고, 어릴 적부터 어지럼증을 많이 겪었기에 헌혈에 적합하지 않은 체질이라 막연히 짐작했다. 또한, 헌혈 부작용에 대한 괴담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헌혈에 대한 권유 기미가 보인다 싶으면 되도록 피해 다녔다.


그러다가, 결혼 후 영국에 와서 온라인 게임을 다니고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내 건강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얻고 나니 헌혈을 못할 이유가 없겠다 새로이 판단하게 되었다. 물론, 그건 나만의 생각이고 실제로 헌혈을 할 수 있는 체질인지 아닌지는 헌혈의 집에 가서 검사받아야 알 수 있다.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던 사람조차, 당일 몸 상태에 따라 부적합 판정을 받을 수도 있으니.


'나는 헌혈과 무관한 사람이다'에서 '나도 헌혈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 변화에도 불구하고 별 조치를 취하지 않던 , 영국에 기록적인 한파가 닥친 어느 해 겨울 TV 공익 광고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폭설로 인해 헌혈의 집 방문자가 줄어 혈액이 부족하다는 내용의 광고였다. 이 정도까지만 했더라면 헌혈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지 못하던 내가 여전히 망설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활용 범위가 넓은 O형 혈액이 특히 더 필요하다는 말에 내 마음이 움직였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갑자기 내 혈액형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나면서 나의 헌혈 역사는 시작되었다.


마침, 헌혈의 집이, 집과 가까운 곳이라 폭설이 내려도 가는 길을 걱정 안 해도 되었고, 생애 처음 헌혈을 하는 나를 위해 가족도 따라나서는 것에 동의해 줬다. 다만, 이 남자들은 오로지 '따라만 가겠다'를 강조했다. 특히 남편은, 자기는 군대에서 실컷 피를 뽑아서 더 이상 뽑을 피가 없다, 무조건 구경만 하겠다며 강력히 못 박았다.


어려서부터 병원과 치과는 신나는 구경거리요 잠시잠깐의 진료가 끝나면 기념품을 받을 수 있는 장소로 인식하던 아들에게, 주삿바늘과 의료 시설이 즐비한 헌혈의 집은 또 한 번 호기심을 충족하는 대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헌혈과 무관한 나이니 홀가분하게 따라온 것이리라. 어쩌면, 헌혈자를 위한 '무언가'가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파악했을 수도 있다.


다행히 헌혈을 하기에 내 건강에는 문제가 없었다. 어지럼증을 많이 겪는 현상은 혈압이 평균보다 낮아서인데 그렇다고 병적인 수준은 아니며 헌혈 전 기초 검사도 통과하고, 헌혈 후에도 내 몸에는 별 부작용이 없었다.



"16주 뒤면, 5월 7일인데, 이 날짜로 예약해 드릴까요?"


첫 헌혈을 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헌혈 규정과 다른 점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1. 헌혈 증서


헌혈자의 기본 정보와 헌혈 횟수가 표기된 증서는 주어지지만, 한국에서처럼 이 증서를 이용해 수혈 비용을 공제받는 혜택은 없다. 아니, 어떤 금전적 보상도 없다.


20140502_204752.jpgzahirrahbegam.blogspot.com



영국의 의료 체계는 국민의료보험 기관인 NHS에 의해 움직이고 헌혈 또한 이곳에서 관리한다. 영국의 의료비는 기본적으로 무료이므로, 수혈이 필요한 환자의 진료도 무료인 셈이다.



2. 헌혈 횟수


개인적으로, 성분 헌혈 대신 전혈 헌혈만 했기에 이 내용만 비교하면, 한국에서는 연간 최대 5회까지 헌혈이 가능한 반면, 영국에서는 여성의 경우 최대 3회까지다. 헌혈 후 16주가 지난 날짜를 기준으로 다음 헌혈을 예약해 주기 때문이다. 남성의 경우 12주마다 헌혈이 가능하여 연간 최대 4회까지다.



3. 헌혈자에게 주어지는 혜택


상품권이나 영화표, 과자, 음료수는 물론 수혈 시 비용이 공제되는 헌혈 증서까지 혜택이 많은 한국에 비해, 아쉽게도 영국에는 금전적 가치를 따질만한 혜택은 없다. 이런 혜택만 바란다면 나는 한국에서 헌혈을 했어야 한다. 헌혈 후 몸에서 빠져나간 영양을 보충할 정도의 음료와 간식만 줄 뿐이다.



"엄마요!"


헌혈을 끝낸 후, 다른 헌혈자들이 모여 쉬고 있는 소파로 몸을 옮겼더니, 그때까지 아빠와 함께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던 아들이 반갑게 나를 부르며 달려왔다. 흡사, 몇 개월간 떨어져 있던 가족을 맞이하는 것처럼 말이다.


30여 분 전까지만 해도 눈 쌓인 도로를 함께 손 잡고 걸어오고, 또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같은 대기 공간에 앉아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인사를 끝내자마자 내가 앉아 있던 소파 옆 테이블로 눈길을 돌렸다.




10387076_647254138685910_9119591840612106136_o.jpg




생애 처음으로 용감하게 피를 뽑고 무사히 돌아온 엄마 보다, 아들이 더 관심을 보인 건 내게 주어질 간식거리와 스티커였다.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어린 자녀를 둔 헌혈자에게 주는 스티커 종류로는


여자아이 그림 + My mum gave blood today (우리 엄마가 오늘 헌혈을 했어요)

남자아이 그림 + My dad gave blood today (우리 아빠가 ~ )

여자아이 그림 + My grandma gave blood today (우리 할머니가 ~ )

남자아이 그림 + My grandad gave blood today (우리 할아버지가 ~ )


이렇게 네 가지 버전이 있었다.


내가 주인공이기에 엄마라는 글자가 들어간 걸 고르긴 했다만, 나처럼 아들을 둔 사람을 위해서라도 '남자아이 그림 + 엄마가 ~ ' 버전도 만들면 어떻겠냐고 담당자에게 농담조로 부탁하고 왔다.


최근 자료를 찾아보니, 내 제안이 채택된 것 같지는 않지만 조금의 변화는 있었던 것 같다.


istockphoto-2187924679-612x612.jpgamazon.co.uk


어쩌면,


조카에게 자랑할 스티커가 필요한 삼촌... (우리 삼촌이 오늘 헌혈을 했어요)

엄마 등쌀에 떠밀려 헌혈의 집에 온 딸... (우리 딸이 오늘 헌혈을 했어요)

새로 사귄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려 헌혈을 감행한 남성... (남자친구가 오늘 헌혈을 했어요)


까지 다양한 스티커 요구에 대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4. 헌혈의 집 운영 방식, 헌혈자 모집


20241120_094415.jpgblood.co.uk




영국에는 대도시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만 상설 헌혈의 집을 운영한다.


나머지 지역에는, 즉 내가 살던 동네의 경우, 학교나 마을 회관 등을 빌려 임시 헌혈의 집으로 쓴다. 이런 시설은 상설 기관이 아니므로, 월 몇 차례 혹은 주 1회 정도만 운영하고 당일 일정이 끝나면 장비를 챙겨 철수한다.


길거리에서 헌혈자를 모집하거나 홍보하는 행위도 없다.


헌혈 기준이 까다롭기에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을 헌혈에 참가하라고 무턱대고 권유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에선지, 내가 헌혈하러 갈 때마다 함께 따라와 간식을 축내는 우리 가족을 보고도, 그 누구도 '남편은 헌혈 안 하나요?'라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한편, 기존 헌혈자의 꾸준한 헌혈을 권장하는 편이다.



거리 모집도 없고 무료 혜택도 안 주어지는 영국에서 누가 헌혈을 할까?


아마도 나 같이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사람과 그들의 가족 혹은 친구가 아닐까 싶다. 또한, 가족이나 친지 중 수혈이 필요했던 환자가 있어서 이를 계기로 시작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헌혈을 일회성 행사가 아닌 꾸준히 할 수 있는 봉사로 생각하는 성향도 있다. 한국에서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리라. 무엇보다, 내게는 연 3회라고 하니 크게 부담되지는 않았다.


예전에 살던 동네 헌혈의 집은 학교 강당에 꾸린 임시 시설이라 주 1회만 운영하므로 헌혈이 가능한 날짜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첫 헌혈을 하던 날 같은 자리에 있던 헌혈자들 중 일부를, 4개월마다 반복해서 만나기도 했다.


반드시 16주마다 출석해야 할 의무가 없음에도 이를 빼먹지 않고 오는 것이다. 그렇게 만난 헌혈 동기 중에는 아들이 다니던 초등학교의 교직원도 있었다. 그 여성 혼자만 온 것이 아니라 남편은 물론 동생 가족도 함께였다.


끝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