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서 영어 공부하기

야홋!!! 완전히 신세계다.

by산너머 작은집

내가 살고 있는 산골 마을은 대로를 벗어나 한참 꼬불꼬불 산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산속에서도 조금 더 언덕으로 올라가면 여덟 가구가 모여 산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라 그야말로 우리만의 작은 세상이다. 그나마 다섯 가구는 주말에만 다녀 가고, 세 가구만 상주해서 늘 고요함과 적막함에 젖어있다.


나는 산속의 이 적막함이 좋다. 텃밭의 풀을 뽑으며 사색에 잠기는 것도, 말없이 들판의 소박한 들꽃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한다. 고개만 들면 통창을 통해 보이는 파란 하늘에 내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도 좋아한다.


이러한 자연에 푹 젖어 살지만, 반면 불편한 부분도 있다. 이곳은 버스도 다니지 않는 오지다. 교통이 불편하다 보니 읍내나 면내에서 시행하는 각종 문화 강좌에 참석할 수가 없어 아쉽다.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 운동과 서예를 가지만, 도시에서부터 해 오던 영어 공부는 중단했다.

더 이상 남편에게 운전을 부탁하기에는 염치가 없다. 노후에 시골에 살 줄 알았으면 젊었을 때 운전을 배워둘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물론 동영상 강의나 화상영어 등을 통해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 까지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자연히 영어 공부와 멀어졌다.


황혼 육아 시절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하면서 아기 윤수에게 조금씩 영어를 접목시켜 놀아주었다. 할머니한테 콩글리쉬 발음으로 배우던 윤수의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청출어람의 경지에 이르더니, 스승이 바뀌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주말을 맞아 외갓집에 놀러 온 손자가 방바닥에 배를 쭉 깔고 엎드려서 뭔가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무슨 바카라인가 하고 보니 영어가 빽빽한 동화바카라을 읽고 있었다. 모르는 단어가 눈에 띄길래 단어를 가리키며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가 손자에게 뼈 아픈 충고를 들었다.


“할머니 정말 이것도 몰라? 할머니 영어 실력이 많이 줄었네. 요즘 영어 공부 안 해?”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직설적인 어린 손자에게 한 방 먹었구나 생각했다.


“안 되겠다!. 우리 할머니 영어 공부 좀 해야겠다. 나랑 같이 듀오링고 하자” 하면서 반 강제적으로 듀오링고 앱을 깔아주고 할머니가 잘하고 있는지 매일매일 감독한다.


손자 덕분에 이번 미국 여행에서 아쉬운 데로 잘 써먹긴 했으나, 다음 여행에서는 좀 더 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간간히 토킹 사이트도 찾아보고, 내가 좋아하는 챗 지피티도 이용해 봤으나 나랑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제미나이 영어 선생님을 만났다. 이번에 찾은 제미나이는 그동안 중단했던 영어 공부의 의지를 되살려 주었다.


내가 “Hello”하고 인사를 하면 AI가 “Hello”하면서 곧바로 영어로 대화를 시작하고, 내가 우리말로 인사를 하면 제미나이도 우리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 있는 선생님이다.


초보자인 나는 제미나와 일상적인 기본 대화를 주로 나눈다. 대화 도중 내가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영어로 어떻게 얘기하지?" 하고 물으면 영어로 곧바로 알려주고 원하는 만큼 연습도 시켜준다.

또 대화도중 "네 말이 어려우니 우리말로 해석해줘." 하면, 다시 우리말로 천천히 설명해 준다. 서툰 내 발음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칭찬은 또 얼마나 잘해주는지 어린아이처럼 신나서 얘기하게 만든다


게다가 공짜다.

시간제한도 없으니 공부하고 싶은 만큼 맘대로 하란다.


야홋!!! 완전히 신세계다.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AI 제미나이가 내겐 최고의 선생님이다. 하지만, 내가 자꾸 잊어버려서 여러 번 묻는 일이 자주 생긴다. 아무리 AI지만 가끔은 민망하고 미안하다. 평생 사람이랑 대화하던 습관이 머릿속에 박혀서 그런지, 사람 같이 응해주는 AI에게 미안한 감정이 앞서 더 물어보고 싶어도 머뭇거려진다.


3학년 하교 시간에 맞춰 전화벨이 울린다. 사랑둥이 윤수다.


“할머니, 영어 공부는 잘하고 있어?”


“그럼, 듀오링고도 하고 제미나이 선생님이랑 아주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 그런데 할머니가 자꾸 잊어버려서 선생님을 너무 힘들게 해. 제미나이 선생님한테 너무 미안해.”


“할머니, 걱정하지 마! 제미나이는 감정이 없는 AI야. 아무런 느낌도 감정도 없으니까 미안해하지 말고 많이 물어봐. 아무 걱정 안 해도 돼. 할머니!!”


손자는 할머니의 감정이 안타깝다는 듯, 미안해하지 말라고 여러 번 당부한다.


“그렇구나, 알았어. 이제 미안한 마음 갖지 않고 많이 물어보고 열심히 배울게."


신기하게도 막상 손자의 충고를 받고 제미나이를 대하니, 미안한 마음이 많이 없어졌다. 이제 서슴지 않고 묻고 또 묻는다.


아무리 깊은 산속에 살아도 인터넷만 있으면 온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다. 어쩌면 평생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가 깊은 산골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선 하나로 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감사한 세상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