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 손자가 아파서 학교도 못간다는 연락을 받고 며칠간 딸 집에 다녀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말끔하게 정리해 놓았던 꽃밭과 텃밭이 그새 들쭉날쭉 잡초들로 뒤덮여있다. 간간이 내린 비에 잡초들이 아주 신이 났구나.
강아지 호박이도 말썽을 부려놓았다. 호박이는 내가 며칠 집을 비우면 투정 부리듯 뜰에다 똥오줌을 싸 놓기도 한다. 가끔은 제 인형을 물어뜯어 솜뭉치가 함박눈 날리듯 온 데크가 흰 눈처럼 뒤덮일 때가 있다.
비닐하우스 안에 심어 놓은 상추와 시금치가 바짝 말라 시들시들 타들어 가고,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고춧대와 농기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어디 이것뿐이랴. 식탐 없는 남편은 해놓은 밥도 챙겨 먹지 않고 군것질과 믹스 커피로 식사를 대신했다. 개수대에는 커피 컵들이 수북하고, 침구는 물론 벗어놓은 옷도 질펀하게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집을 며칠 비웠다가 돌아오면 집은 늘 엉망이다. 집을 비운 기간이 길면 길 수록 할 일은 몇 배로 늘어난다. 집에 돌아올 때면 우선 심호흡을 길게 하고 기도하며 다짐한다.
'제발 남편에게 화내지 않게 해 주세요. 빨리 예전으로 돌려놓으려 허둥대지 않겠습니다. 천천히 구역을 나눠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겠습니다'
머릿속으로 구역을 나눠본다. '내일은 꽃밭, 모레는 텃밭, 그다음 날은 비닐하우스.'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호박이를 살펴준다. 나의 귀가가 반가워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호박이를 진정시키고 간식을 챙겨준다. 그리곤 호박이가 저지른 오물부터 치우며 "호박아~ 왜 할머니 없어서 심통 났어? 다음부터는 여기에다 똥 싸면 안 돼~" 부드럽게 말하곤, 일단 다짐을 잘 지키고 있는 자신에게 흐뭇한 미소를 보낸다.
그다음은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호스를 길게 뽑아 상추와 시금치에 시원하게 물줄기를 뿌려준다. "어휴 세상에 얼마나 목말랐니? 너희들은 내가 없으면 다 말라죽겠다. 이제 좀 괜찮지?"
비닐하우스 안에 흩어진 농기구들은 하루 날을 잡아야겠구나. 남편의 무관심에 스멀스멀 화가 치밀려고 한다.
꽃밭과 텃밭을 돌며 순찰하듯 세심히 살펴본다. "너희들 잡초 때문에 괴로웠겠다. 조금만 기다려 내일 아침에 뽑아줄게." 여기저기 할 일이 너무 많아 숨이 가빠지려고 한다.
진정하자. 진정해...... 숨을 천천히 고른다.
고개를 돌려보니 꽃밭의 작은 들꽃이 앙증맞은 꽃망울을 터뜨렸다. "따가운 햇살 아래 어찌 이리 예쁜 꽃을 피웠니?" 다가가 살짝 어루만지고 향기를 맡는다. 마음이 스르르 풀리며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 그래. 남편은 나 없는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혼자 심심했을 텐데, 그래도 강아지 밥 챙겨주고 물도 주느라 애썼네... 앗~! 그러고 보니 밭에 심은 오이, 호박 덩굴 지지대도 멋지게 만들어 놨구나!!!"
내 마음을 다스리는 건지 세뇌를 시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마음이 차분해진다.
개수대 앞으로 가서 쌓인 설거지를 하고, 흩어진 이부자리를 털어 널고, 널브러진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그리곤 윙~ 청소기를 돌리고 방을 깨끗이 닦는다.
"휴~~ 집이 작아서 정말 다행이야. 청소가 금방 끝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