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남편은 환자가 되었다

by산너머 작은집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은 환자가 되었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그렇게 내 일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커다란 버스가 가득 차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은 우중충하고 공기도 탁했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멍하니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어서 빨리 버스가 왔으면 좋겠다. 빨리 도시 집으로 가서 지친 내 몸과 마음을 충전하고 싶다.


늦은 오후 햇살은 점점 사그라들고 내 머릿속에는 온통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초점 없이 그저 터미널 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그때 유난히 하얀 벚나무와 목련 나무 두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반사되는 햇빛이 없어서일까 더 또렷하게 우아함을 뽐내고 서 있는 벚꽃과 목련 나무가 지쳐버린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서서히 내 피로감도 사라지면서 차차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몇 년 전 남편의 퇴직이 다가오면서 우리 부부의 노후 생활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평생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일만 했지 별다른 취미가 없는 남편은 시골에 작은 땅을 마련하고 소일 삼아 텃밭 농사하기를 원했다. 젊을 때부터 강원도를 좋아했던 우리는 지금의 산골에 300여 평의 땅을 마련하여 농막같이 작은 집을 지었다. 도시의 집은 그대로 두고 왔다 갔다 하면서 시골 생활에 적응도 하고 훗날 두고두고 우리 아이들의 휴식처로 삼고자 하였다.


난생처음 우리의 땅을 갖고 나무도 심고 밭을 일구며 참 많이 행복했었다. 워낙 자연을 좋아하고 전원생활을 원했던 우리 부부는 물론 딸들과 사위, 손자 모두 꿈같은 시골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지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던가.


도시 생활을 답답해하던 남편은 시골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고 나는 어린 손자를 돌보기 위해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생활하게 되었다. 그때는 건강한 남편이었기에 남편만 시골에 있고 나는 주중에 도시집에 머물다가 주말이면 딸, 사위와 함께 시골에 와서 맛있는 음식도 함께 먹고 밤이면 데크에 누워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보며 황홀한 탄성을 질러댔다. 그렇게 꿈같은 전원생활에 감사하며 살던 어느 날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하루아침에 환자가 된 남편은 대학병원에서 2주간의 치료를 마치고 재활 병원에 입원하였다. 그때는 남편이 이미 텃밭에 농작물을 다 심어 놓은 후라 나는 도시에 있는 재활 병원과 시골을 오가며 혼자 텃밭 농사를 하였다. 평생 도시에서만 살아 호밋자루 한번 잡아 본 적 없었지만, 농작물을 가꾸고 거두는 일은 그리 힘들지도 않았고, 보람도 있었다. 암담했던 그때의 마음을 땅이 보듬고 위로해 주었다.


봄에 입원한 남편은 그해 늦가을 퇴원해서 시골집으로 왔다. 남편이 시골 살기를 원했고 건강 회복을 위해서도 도시보다 시골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다행히 남편은 많이 호전되어 걷고 움직이는데 큰 불편함은 없지만 후유증인 신경통으로 본격적인 투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픈 남편의 생활만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때부터 환자의 보호자로 살기 시작은 내 일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환자가 된 남편을 돌보기 위해 나는 도시 집에는 거의 가지 못하고 시골집에 상주하게 되었고 아직 돌봄이 필요한 어린 손자는 어쩔 수 없이 학원 순례를 하게 되었다. 오직 하나뿐인 손자를 더 이상 봐줄 수 없게 된 상황이 많이 맘 아프고 애가 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산골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농막같이 작은 집에서의 생활도 힘들지만 남편이 건강했을 때는 모든 일을 다 알아서 척척 했는데, 이제 집 안팎의 일을 나 혼자 다 해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통이 너무 불편해서 남편 없이 읍내조차 맘대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내 발을 묶어 놓은 듯 너무 답답했다.


올해부터는 텃밭 농사를 대폭 줄이고 대추나무를 심기로 했다. 그래도 시골에는 할 일이 참 많다. 여전히 풀과 씨름해야 하고 작은 채마밭과 꽃밭을 가꾸는 일도 녹록지 않다. 게다가 환자가 된 이후 감정이 많이 예민해진 남편을 돌봐줘야 하는 내 마음도 힘들지만, 어린 손자가 학원을 전전하는 모습 보면 가슴이 아려왔다.


어느 날 갑자기 사고처럼 남편은 환자가 되었고, 나의 많은 부분은 남편의 시계에 맞춰 돌아간다. 마치 나의 일부분이 소실된 느낌이다. 그렇게 나의 몸과 마음이 모두 소진될 때쯤 나는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도시 집으로 향한다. 물론 남편의 식사와 건강이 염려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나 자신을 돌보는 일에도 소홀할 수가 없다.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모든 일을 잘 컨트롤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도시집에 도착했다. 아픈 남편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는 도시집 소파에 길게 누워 베란다 창밖을 바라본다. 앞동산에 봄 꽃이 가득하다. 이제 막 귀여운 연둣빛 잎을 내밀기 시작한 나무들 사이로 한 무더기의 노란 개나리 꽃과 팝콘을 튀겨 놓은 듯 하얗게 터져버린 벚꽃이 장관이다. 틈새에 낀 진달래도 수줍은 듯 분홍빛 얼굴을 살짝 드러내고 도시 힐링을 하러 온 나를 기꺼이 맞아준다.


아! 좋다. 정말 좋다.

완전한 나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