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길목에서 나를 쫓는 발걸음

마음을 전할 땐 바디랭귀지면 충분해

by봄날의 곰


모스크바의 겨울 해는 유난히 일찍 저물었다.


12월이 되자 오후 4시도 되지 않았는데 사방이 한층 어두운 무색채로 물들었다. 한창 활동할 시간임에도 눈꺼풀이 무겁고 노곤해지는 걸 보면, 나는 홀로 6시간이 빠른 한국의 시간 속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지도 몰랐다.






그날도 어김없이 유치원에 있는 첫째 아이를 데리러 가던 길이었다. 낮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이던 깜깜한 거리 위를 이제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의지해 걸어야 했다. 그리 외진 골목도 아닌데 자꾸만 뒤를 곁눈질하며 점점 걸음이 빨라졌다. 하지만 내가 느낀 두려움은 단순히 어둠 때문만이 아니었다. 아까부터 역 근처에서 누군가 나를 계속 따라오는 기척을 느껴졌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다시 한번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낡고 꾀죄죄한 회색 털 비니 모자를 쓰고 공사장용 주황색 조끼를 입은 한 남성이 내 쪽으로 빠르게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체구에 얼핏 보면 건설 현장의 인부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와 접점이 전혀 없어 보이지만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아닌 듯 일정한 거리에서 계속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앞만 보고 걸었지만 괜히 목 뒤로 느낌이 싸했다.


설마..... 강도면 어떡하지?'



한국에서 호신용품이라도 챙겨 올걸 하는 후회가 갑자기 밀려왔다. 사실 우리가 머물던 모스크바 중심부는 러시아 안에서도 치안이 좋은 편이었다. 대통령궁이 지척이라 그런지 길에서 2인조로 순찰을 도는 경찰도 심심찮게 보였다. 특히 외국인에게도 한 번씩 신분증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나 역시 외출 시 외투 깊숙한 곳에 여권을 꼭 챙겨 다녔다. 체류 기간이 7일을 넘기면 반드시 거주지 등록을 해야 하는 옛 슬롯주의식 시스템도, 나같이 거리낄 것 없는 외국인에게는 오히려 안전장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익숙함이 방심을 부른 걸까. 가족들과 반복되는 평화로운 일상에 젖어 있던 나는 치안에 대한 경계심이나 호신용품의 필요성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오래 전 어학연수를 떠날 때, 현실 남매답게 평소 데면데면하던 오빠가 외출 시 쓰라며 쥐여주었던 호신용 스프레이가 불현듯 떠올랐다. 귀국하자마자 쓰던 바카라상 서랍 어딘가에 넣어두고 잊고 있었던, 그 손가락만 한 스프레이가 갑자기 절실해졌다. 더구나 품 안에는 둘째 아이가 안겨 있었다. 유사시에 도망치고 싶어도 아이가 다칠까 힘껏 달릴 수는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끝없이 머릿속에 불길한 상상을 떠올리자니 한층 공포감이 밀려왔다.


우선 사람이 보이는 밝은 곳으로 가야 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대로변 신호가 바뀌자마자 서둘러 길을 건넜다. 불과 몇십 미터 앞, 저기 보이는 유치원 2층 창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이 유독 멀게 느껴졌다. 곁눈질로 힐끔 뒤를 보니 그 의문의 남성도 따라 길을 건너고 있었다.


'역시…… 나를 따라오는 게 맞았어.' 의심은 순식간에 확신으로 변했다.


종종걸음으로 속도를 올리자 뒤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도 덩달아 빨라졌다. 덜컥 겁이 났다. 주변에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누구도 이쪽 상황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 혼자만 묻지 마 범죄의 표적이 된 것만 같았다.


'나 정말 돈 없는데……' 울고 싶었다.

소리라도 질러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하나 싶던 찰나, 뒤따르던 발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릴 만큼 바짝 다가왔다. '쿵쾅쿵쾅' 심장 소리가 앞으로 튀어나갈 듯 온몸을 울렸다. 속으로 '침착하자, 괜찮아'를 되뇌었지만 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급한 대로 얼른 휴대폰 동영상 녹화를 켜고 다시 주머니 속에 찔러 넣었다. 범죄 상황이 일어난다면 목소리라도 녹음되어야 증거로 남을 것 같았다. 몇 초 사이에 머릿속에서는 온갖 불길한 시나리오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때, 등 뒤에 멘 배낭 어깨끈을 누군가 툭툭 건드렸다. 나는 한 손으로 아기띠 안의 둘째를 감싸 안으며 아이 얼굴을 최대한 가렸다. 다른 한 손으로는 배낭을 빼앗기지 않으려 어깨끈을 단단히 부여잡은 채, 그나마 생각나는 러시아어를 외치듯 쏟아냈다.


"야 니 가방류 포 루스키! (Я не говорю по-русски, 나 러시아어 못해요!)"

"까리얀까, 까리안까! (Кореянка, 한국인(여성)이에요!)"


검지로 내 가슴을 쿡쿡 찌르듯 가리키며 필사적으로 상대를 향해 외국인임을 알리려 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한국인에게 호의적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스치듯 떠올랐다. 그제서야 아저씨도 내가 외국인이라는 걸 눈치챘는지 뭐라고 러시아어로 말을 걸다 멈칫했다. 나는 얼른 반걸음 뒤로 거리를 넓히며 짧은 영어로 다시 소리쳤다.


"I can't speak Russian! (나 러시아어 못해요!)"


'말도 안 통하니까 제발 다가오지 마……!' 속으로는 거의 울고 있었지만, 덜덜 떨리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단호하게 발음하려 노력했다. 그런데도 그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다시 손짓을 동원해서 뭐라고 뭐라고 말을 건넨다. '몰라. 나한테 말 걸지 마. 제발요.' 양손의 검지손가락으로 십자가 모양을 만들어 퇴마 의식이라도 치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 말이나 내뱉는 나를 정신 이상자로 봐도 좋으니 제발 그냥 가주길 바랐다. 나 홀로 치열한 내적 갈등을 겪는 동안, 그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하더니 이번에는 나를 가로등 불빛이 환한 대로변 아래로 끌어당기려 했다. 으슥한 곳이 아닌 밝은 곳으로 데려가다니, 이건 또 무슨 상황일까.


다급한 그의 손짓과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몇 마디 말, 그리고 절박해 보이기까지 한 표정에는 분명 전하고 싶은 의도가 담겨 있었다. 못 이기는 척 몇 걸음 옮기자, 그는 손가락으로 내 위쪽을 가리켰다. 웬 하늘을 보라는 건가. 점점 상황은 미궁으로 빠진다.


"I have no idea! I'm late! (모르겠어요, 나 늦었어요!)"


그냥 이 상황에서 어서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오른손 검지로 왼쪽 손목 위를 탁탁 두드리고 가야 할 방향을 가리켰다. 이 상황과 별개로 나는 지금 몹시 급하고 난감하다는 표정을 혼신의 힘을 다해지어 보였다. 그러자 아저씨는 내 배낭을 가리키며 앞으로 돌려보라는 손짓을 반복했다. 차 안에서 안전벨트를 매는 듯한 동작이었다.

'가방? 가방이 왜?' 어리둥절해하며 배낭을 앞으로 돌려 멘 순간, 외마디 비명이 튀어나왔다.


"헉……!"


굳게 닫혀 있어야 할 내 배낭이 혀를 쭉 내민 것처럼 활짝 열린 채 축 늘어져 있었다.






급작스럽게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 지난 몇 분간의 상황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빨래가 늦어져 평소보다 늦게 서둘러 지하철에 탔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주요 관광지인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 근처에 있어 출퇴근 시간이 아니어도 늘 붐비는 곳이었다.


발음조차 어려운 '크로폿킨스까야'역 계단을 황급히 오를 때였다. 10~20대로 보이는 여성 몇 명이 이상할 정도로 내 쪽으로 바짝 붙어 걸었다. 사람이 많다 싶은 그 와중에 누군가 뒤에서 나를 밀고 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인파 때문인가 싶었지만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예고 없이 한번 휙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근처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 모른 척 앞만 보고 걸을 뿐이었다. '내 착각인가' 싶어 갈길을 재촉하며 역사 밖으로 나오자, 내 주변을 싸고돌던 인파가 순식간에 흩어졌다.


이제 텅 열린 가방을 보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소매치기가 발각되어도 쉽게 쫓아올 수 없는 애엄마는 얼마나 손쉬운 먹잇감이었을까. 인파 속에 섞여있던 그녀들은 처음부터 내 가방을 노렸던 것 같았다. 그 시간대에는 역을 이용하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 자연스럽게 무리 지어 곁으로 몰려들었다. 몇 번 시도 끝에 내 주의를 분산시키고 가방을 열었던 것이다.


소매치기라니…… 당혹스러웠지만, 다행히 가방만 열려 있을 뿐 다른 피해는 없었다. 간혹 소매치기들이 작은 칼로 옷이나 가방을 찢기도 한다던데, 다친 사람도 없었고 훼손된 물건도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날은 억세게 운이 좋은 날이었다.



마침 그날 하원 때 아이의 세탁물을 한가득 받아 올 예정이라 일부러 빈 가방을 가져온 참이었다. 여권과 지갑 같은 귀중품을 늘 겉옷 안쪽 주머니 깊숙이 넣어 둔 것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평소에도 애 엄마 가방에 들어 있는 거라곤 간식과 기저귀, 물티슈가 전부이긴 했다.

원래 애 엄마 가방에는 애한테 필요한 게 있지 값나가는 물건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그 소매치기들은 미처 몰랐나 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몹시 놀라긴 했지만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쉬며 여전히 뭔가를 설명하려는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다시 올려다보니 신호등 옆 CCTV가 보였다. '하늘을 가리킨 게 아니라 CCTV를 알려주려 한 거구나.' 내가 내쉬는 한숨을 물건을 잃어버린 충격으로 여겼는지, 그는 위쪽 CCTV를 가리킨 뒤 전화를 거는 시늉을 하며 빨리 신고하라고 손짓했다.


"It's OK. It was empty. (괜찮아요. 가방 원래 비어 있었어요.)"


나는 손가락으로 텅 빈 가방 안을 가리키고, 팔로 크게 X자를 그리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시점에서는 가방이 털리고도 웃고 있는 내가 더 안타깝고 이상해 보였나 보다. 오해라고 설명을 하고 그분을 안심시키고 싶었지만 내 짧디 짧은 러시아어 밑천은 이미 바닥나 있었다. 그저 연신 꾸벅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스바시빠! (Спасибо, 고맙습니다!)"

"Everything is OK, don't worry. (모든 게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몇 번이나 웃으며 같은 말을 반복하자, 그제야 그분도 큰 피해가 없다는 걸 이해했는지 몇 번 머뭇거리다 잘 가라는 손짓을 남기고 돌아섰다. 그 분과 헤어져 서둘러 유치원으로 향하면서도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만난다면 번역기를 켜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감사를 전하고도 싶었다. 날씨가 추우니 인근 카페에서 따뜻한 음료라도 테이크아웃해 대접하고 싶을 만큼 진심으로 고마웠다.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먼 거리를 쫓아와 도와준 마음은 누구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안다. 서두른다고 하원하여 나오는 큰 아이의 손을 꼭 쥐고 숨이 차도록 열심히 뛰어왔건만 소용없었다. 아쉽게도 그 자리에 돌아왔을 때, 한겨울 요정처럼 그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아마 그분은 역 근처에서 일을 하다 가방이 활짝 열린 줄도 모르고 걷는 아기 엄마를 보고 달려왔을 테다. 어떤 오해를 받을지 계산조차 하지 않았을 그 선한 마음에, 성급히 뾰족하게 굴었던 내 행동이 못내 머쓱해졌다.






그날 이후 모스크바의 겨울은 내게 단순히 어둡고 추운 기억으로만 남지 않았다. 누군가는 내 가방과 지갑을 노렸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위험을 알려주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와 주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그가 온몸으로 전하려 했던 그 선한 의도만큼은 어떤 말보다도 명확하게 내 마음을 두드렸다. 모스크바의 어둡고 차가운 겨울 공기를 떠올릴 때마다 그날 나를 향했던 다급한 손짓과 주름진 얼굴 속 선한 눈빛을 함께 떠올려 본다.


타국에서의 경계심은 스스로를 지키는 최소한의 보호막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그날의 사건은 타향살이에 긴장으로 굳어 있던 내 시선을 한층 부드럽게 보듬어 주었다.


계산 없이 타인에게 건네는 순수한 선의.


지독히도 어둡고 추웠던 모스크바의 그 길목에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사람만이 줄 수 있는 투박하지만 온기 어린 마음도 함께 기억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직 세상은, 살아갈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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