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오아시스, 안탈리아#1

영하의 모스크바를 뒤로하고, 지중해로

by봄날의 곰

가족이 다시 모여 모스크바에서 생활한 지도 어느덧 5개월이 흘렀다.


시작점부터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생활의 많은 부분들이 자리를 잡아갔다. 집 앞에는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 작은 단골 가게들이 생겼고, 모스크바 거리 위에서 가족의 소소한 추억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다만… 문제는 나였다. 아니면... 오후 4시만 되면 속절없이 해가 지고 가라앉는 어둠, 그 긴 어둠 때문이었을까.


문득문득 '집'이 그리워졌다.

내가 좋아하는 바카라과 언제나 편히 눕던 푹신한 침대가 있는 진짜 내 집. 언젠가 돌아갈 날을 떠올리면 생필품 말고는 무언가를 사둘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아이들 물건이나 매일 쓰는 스킨, 로션 같은 소모품을 제외하곤 가급적 새로 들이지 않았다. 어느 날은 한국에서는 그간 딱히 즐기지도 않던 찜질방의 뜨끈한 바닥에 몸을 지지는 풍경을 그려보곤 했다. 그저 비슷한 게 아니라, 정말 집에서 담근 된장으로 끓여낸 엄마 표 된장찌개 맛이 간절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향수병일지도. 겉보기엔 아무 문제없는 평온한 날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 구석은 방향을 잃은 듯 자주 헛헛해졌다.



그렇다고 돌아갈 날이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 다음 달이 될지, 몇 달을 더 버텨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내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는 게 현명하다는 걸 알면서도, 불쑥불쑥 날짜를 가늠해 보았다. 남편의 업무가 점점 마무리되어 가는 눈치였으나 정확한 시기는 여전히 안갯속이었다.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마음은 오히려 점점 초조해졌다. 어쩌면 이곳에서 얼마간 더 버텨낼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당장 다가온 큰아이의 현지 유치원 재등록, 그 해 여름 전 다가오는 나의 육아휴직 만료일, 그리고 그리움에 혼자 입맛을 다셔보는 친정집 밥상까지.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믿었던 모스크바 생활 끝자락에서,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흔들리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생전 처음 겪는 모스크바의 겨울은 유난히 혹독하게 느껴졌다. 모자와 장갑까지 꼼꼼히 챙겨 입고 단단히 각오를 다지며 밖으로 나서지만, 공동현관문을 열자마자 만화영화처럼 사선으로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마주할 때면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추위 속에서도 꿋꿋하게 제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정말 러시아에 있구나' 실감이 들었다.



폭설이 내려 도로 위가 순식간에 하얀 눈으로 뒤덮이면, 신기하게도 어디선가 제설차량들이 나타나 시내 곳곳을 누볐다. '겨울왕국'다운 노하우 덕분인지, 제법 두툼하게 쌓였던 눈도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서면 거짓말처럼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아… 놓쳤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을 '뽀도독뽀도독' 소리 내며 걸어가는 게 나만의 소소한 기쁨이었는데.




영하의 추위가 기승을 부리자 둘째 아이가 감기라도 걸릴까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작은 아이는 지난가을에 걸린 목감기로 거의 한 달 넘게 잘 때마다 기침을 심하게 해 남편도 나도 걱정이 많았다.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 한 손으로는 첫째의 손을 꼭 쥔 채 온몸에 힘을 주고 걸었다. 꼭 필요한 외출이 아니면 문밖을 나서는 일조차 삼가려 했다. 집과 첫째의 유치원, 식재료를 사는 근처 마트만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오가는 나날이었다. 슬슬 장기전을 대비해야 하는가. 정신없이 적응할 땐 미처 몰랐던 고민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아직 결정짓지 못한 일들이 하나씩 쌓여가며, 집 안 공기마저 보이지 않는 긴장으로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거운 공기를 마주하고 있던 건,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한 남편이 뜬금없이 한마디를 건넸다. (그러고 보니 사람 참 안 변한다.)


"우리 휴가 갈까? 넷이서는 아무 데도 못 갔잖아. 며칠 쉬다 오자."


"휴가? 어딜? 애들 데리고 이렇게 추운데?"


"어디든 가면 되지. 그냥 떠나자!"


"..............."


1년 가까이 타국에서 쉼 없이 몰아치는 업무에 지쳐있던 그 역시, 숨통을 트일 작은 숨구멍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마음 한구석은 반가웠지만 덥석 찬성하기엔 걱정이 덜컥 앞섰다. 돌아보면 우리 부부도 참 한결같았다. 일단 일을 벌이고 보는 남편과 뒷수습을 맡아 노심초사하는 아내라니, 그야말로 ‘환장할 콤비’였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눈이 퍼붓는 이 혹독한 겨울에, 자가용도 없이 어린 두 아이를 끌고 여행을 떠난다니. 솔직히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즉흥적인 남편과 살며 배운 게 있다면, 완벽한 계획 없이 맞닥뜨리는 예외의 순간도 때론 근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 말 나온 김에 가자. 그 휴가. 아이를 낳고 키우며 '휴가'라는 단어가 얼마나 아득해졌는지 잘 알고 있었다. 휴가지에 가봤자 장소만 바뀔 뿐 아이들 수발드느라 정신없을게 뻔하긴 했다. 우선 짐을 싸기 시작할 때부터 애들 건 왜 이리 챙길 게 많은 지 이미 출발도 전에 진이 다 빠졌다. 최대한 단출하게 떠나던 미혼 시절을 떠올려봐야 시계를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떠나고 싶었다.



어디든 좋으니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쯤은 느슨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가서 푹 쉬지 못하면 또 어떠랴. 하다못해 며칠이라도 남이 해주는 밥을 먹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숨이 트일 것 같았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자 남편은 회사 동료들에게, 나는 주변 한인 엄마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확실히 애들 데리고 하는 여행은 아이 엄마들이 전문가였다. 만장일치로 답을 외쳐야 하는 게임도 아닌데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한 곳을 힘주어 말했다.



그렇게 이구동성으로 추천받은 곳이 바로 터키(현 튀르키예)의 '안탈리아(Antalya)'였다.



유럽인들을 비롯한 러시아인들이 사랑하는 지중해 휴양지이자,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로 4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 무식이 죄라고, 얼핏 들었을 땐 '이탈리아'를 잘못 말한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솔직히 그때 '안탈리아'라는 지명을 처음 들었다. 갈 수 있는 곳이라곤 모스크바 근교 정도 생각했던 나의 빈약한 상상력이 문제였다.



집에 돌아와 초록색 검색창에 낯선 지명을 검색해 보았다. 화면 가득 채우는 새파란 지중해와 고대 유적의 사진들에 어느새 마음이 먼저 그곳에 닿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존재조차 몰랐던 낯선 도시가, 사진 몇 장만으로 순식간에 '지금 가장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안탈리아의 마리나 항구 인근


한국에서 떠나올 때만 해도 '휴가'라는 단어는 감히 떠올리지도 못했으니, 갑작스러운 휴양지 여행에 수영복이 있을 리 만무했다. 두 번의 출산 이후 체형을 단단히 가려주는 해녀복 형태의 래시가드만 찾던 내게, 이곳에서 파는 수영복은 하나같이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분명 표기된 사이즈는 내 사이즈인데 희한한 일이었다. 모스크바 쇼핑센터를 뒤져 긴팔 수영복을 겨우 찾아내도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죄다 비키니뿐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안구 보호를 위해서라도 도저히 입을 수 없는 물건들이었다.



그냥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물에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던 차, 다행히 사정을 들은 이웃 한인 엄마들이 흔쾌히 온정을 베풀어 주었다. 덕분에 아이들 물놀이 용품부터 내 수영복까지 무사히 챙겨갈 수 있었다. 며칠 동안 정신없이 예약을 마치고, 짐을 싸고, 둘째를 위한 이유식까지 알차게 챙겨 마침내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에 오르자 오래간만에 주바카라없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평소 공항에 발만 디뎌도 엔도르핀이 도는 남편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신나게 수다를 떨며 설렘을 주고받던 끝에, 나는 진지한 얼굴로 나중에 그가 먼저 죽으면 공항 근처에 묻어주겠노라 선심 쓰듯 약속했다. 남편은 잽싸게 나더러 같이 묻히겠냐고 물었다. 나는 슬그머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건.... 조금 더 고민해 볼 문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곧 기체가 미동하며 이륙 준비를 시작하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갔다. 떠나기 직전, 이 밀려오는 설렘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가장 큰 묘미일 것이다.



드디어 일상에서 벗어나는 거야!



하지만 설렘도 잠시, 돌도 안 된 둘째와의 기내 안 사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아… 또 시작이구나! 모스크바에 올 때 그 긴 장거리 비행에서도 비교적 순했던 아이였는데. 생각해 보면 비행기 안에서의 아이 태도는 기질의 문제라기보다, 순전히 그날의 '컨디션'과 '운'에 달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아프지만 이번 뽑기도 망한 모양이었다.


이번엔 너냐?!


어렵게 예약한 바시넷에 눕히기만 하면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통에, 결국 비행시간 내내 작은 아이를 안고 어를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 ‘아, 내 팔자야, 제발 살려줘’ 하는 비명이 절로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5개월 전 내게 길고 긴 지옥 비행을 선사했던 첫째가 이번엔 여유롭게 기내 간식을 먹으며 아빠가 보여주는 영상에 푹 빠져 아주 얌전했다는 점이다. 정말 아이들은 자라며 딱 그 시기를 지나쳐 가나 보았다.



국내 항공사는 아이가 너무 어리면 규정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달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편의를 봐주었던 것 같은데, 외국 항공사는 원리원칙이 철저했다. 앉아 있을 때조차 엄마와 아이를 연결하는 간이 안전벨트를 꼭 채우라고 당부했다.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임을 머리로는 수긍하지만, 우는 아이를 달래려 살짝 일어서기만 해도 승무원이 득달같이 달려와 엄하게 주의를 주었다.



몇 번을 그러고 나니 나 역시 좌불안석이었다. 승무원의 단호하고 매서운 경고와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아이 사이에서,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기내식을 겨우 삼켰다. 짧다면 짧을 4시간의 비행이, 마치 한국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던 그 아득했던 날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얼른 착륙하게 해 주세요. 제발요~" 속으로 몇 번이고 기도를 올렸을까. 마침내 비행기가 바퀴를 내렸다.



살았다~!!



그렇게 도착한 안탈리아 공항은 한산하고 아담했다. 실내로 들어서자 홀 가장자리를 따라 고대 그리스·로마 유물을 연상시키는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마치 작은 갤러리나 미술관을 연상케 했다. 겨울 비수기 특유의 한가롭고 여유로운 공기가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공항이 이렇게 한적할 수 있다니, 이 맛에 다들 비수기 평일 휴가를 떠나는가 싶었다. 남편이 공항 환전소로 향하며 터키 화폐인 ‘리라’를 조금 바꾸겠다고 했다. 러시아어와는 전혀 다른 억양의 언어가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환전소 직원과 몇 마디 대화 끝에 낯선 지폐가 우리 손에 쥐어진 순간, 비로소 다른 나라에 도착했다는 실감 났다.


영하의 눈보라를 뚫고, 우리가 정말 지중해의 새로운 땅에 도착했음을.


튀르키예 안탈리아 공항(A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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