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다정한 편입니다

무뚝뚝한 모스크바 사람들을 무장해제시킨 아이들

by봄날의 곰


아직 내 주변에는 러시아를 여행했거나 살아본 사람이 거의 없다.


솔직히 나 역시 떠나기 전, 미리 그려본 모스크바의 인상도 그리 따뜻하지 않았다. 당장 머릿속을 스치는 단어들만 해도 그랬다.


마피아, 주변국과의 전쟁, 스킨헤드...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할리우드 영화나 뉴스에서 먼저 접한 이미지 탓이었을까. 온 도시가 누아르 작품 특유의 차갑고 어두운 기운으로 가득할 것만 같았다. 심지어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러시아 패널마저 내 눈에는 한없이 ‘궁서체’ 느낌으로 진지해 보였다.


지리적으로는 가까운 데다 역사적 사건이나 국제 뉴스에서 자주 거론되는 나라였지만, 정작 사적으로 러시아 사람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았다. 요즘은 조금 달라졌으려나 싶지만, 서구권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러시아는 내게 많은 부분이 미지의 영역에 가까웠다.


“러시아라니… 아이들도 어린데 어떻게 지내려고?”


모스크바에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 역시 얼추 비슷했다. 글쎄…. 당시에는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해 그저 어색한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사실, 나도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원래 모르면 용감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이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힘들지. 그런데 오히려 아이들이랑 있어서 좋은 점도 많았어.”


말해놓고도 참 앞뒤가 안 맞는다 싶지만, 정말 그랬다. 장기간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준비해서 떠난 것도 아니었다. 좋게 얘기해도 가족들과 어쩌다 가는 해외여행 준비보다 조금 나았다 싶을 정도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 건 기본이었고, 겨울은 길었으며 의료나 교통 인프라도 한국에 비하면 불편했다. 치안 역시 은연중에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주변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구석이 있었다.



대체 왜였을까?


예전에 러시아의 문화와 일상을 다룬 바카라에서 ‘까르미띠 이 꾸따띠(кормить и кутать)’라는 표현을 읽은 적이 있다. 직역하면 ‘잘 먹이고 따뜻하게 싸매어 감싼다.’는 뜻으로, 오래전부터 아이를 귀하게 여기고 정성껏 돌봐 온 러시아의 문화를 보여 주는 표현이라고 했다.

오늘날에는 다소 과보호에 가까운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지만, 나는 이 표현이 결코 바카라 속의 설명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현지에서 생생하게 느끼곤 했다.






평일에는 첫째 아이의 등하원을 위해 하루 두 번 이상 외출은 필수였다. 인파가 붐비는 시간에 아이를 데리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꼭 누군가 한 두 명은 서로 자리를 양보하겠다며 작은 소란이 일곤 했다. 환승 때문에 두세 정거장만 가면 되는 사정이라 한사코 사양해도 소용없었다. 젊은 청년들은 물론이고 50~60대 아저씨, 심지어 당신이 앉으셔야 할 연로한 할머니들까지 기어코 나와 눈을 맞추며 이리 와 앉으라 손짓을 보냈다.


특히 할머니들은 이방인인 내가 곁에 앉아 있으면 아이를 요리조리 바라보며 꿋꿋이 러시아어로 한 마디씩을 보태시곤 했다. 억양이나 보디랭귀지를 힌트 삼아 눈치껏 짐작해 보면 대략 이런 말들이었다.


“추운데 아이 모자는 꼭 씌워.”


“자는 애기 목이 너무 꺾였어, 똑바로 세워줘.”


“양말 위에 뭐 하나 더 신겨줘. 춥겠어."


걱정이 듬뿍 담긴 말투가 선을 넘는 참견이라기보다는 이웃집 손주며느리를 대하는 정겨운 오지랖처럼 느껴져, 듣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났다.

한국에서도 신생아 때 유독 예민했던 첫째가 외출길에 자지러지게 울면, 왜 아이를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데리고 다니느냐는 시선에 주눅이 들곤 했다. 경로당 앞을 지나다 처음 보는 할머니들의 혀 차는 소리에 괜히 혼나는 기분이 들어 속상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스크바 할머니들의 눈빛과 목소리에서는 아이를 향한 염려가 고스란히 느껴져 싫지 않았다.


어쩌면 이젠 나도 그 정도 잔소리는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내공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음.... 아니면 기분 나쁠 말은 내가 못 알아들었던가.

한 번은 너무나 무표정한 얼굴로 진지하게 포기하지 않고 자리를 권하시는 바람에, 미안함을 못 이겨 엉덩이만 살짝 걸친 채 어색하게 옆에 앉아 한 정거장을 더 가기도 했다.


어쩌다 들른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직원들이 테이블 가까이 다가와 서둘러 주문을 받으려는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대신 내 가슴팍에 아기띠로 대롱대롱 매달린 채 잠이 덜 깬 둘째에게 먼저 시선을 보냈다.

신기하고 귀한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아이의 손끝이라도 한 번 잡아 보려 애쓰던 직원은, 막상 나와 대화를 시작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사무적인 표정을 장착했다. ‘애들은 귀여워도 손님은 업무상 만나는 사람이니까요.’ 하는 듯, 중립에 딱 박힌 그 눈빛을 볼 때마다 아무리 봐도 참 신기했다.



‘츤데레’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형상화하면 딱 이럴까.

유독 추웠던 날 지하철 역사로 들어설 때면, 난데없는 강풍에 오래되고 묵직한 나무문이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쾅 닫히곤 했다. 아이들 손이라도 낄까 봐 문에 밀려나지 않으려고 어깨와 허리에 힘을 주며 황급히 버티다 보면, 어느새 어디선가 바람처럼 누군가 나타나 함께 문을 밀어주거나 빨리 닫히지 않도록 끝까지 잡아주었다. 휴, 살았다. “스파시바!(감사합니다)” 하고 꾸벅 인사를 건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사흘이 멀다 하고 겪던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이었다.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어서야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빈틈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나가는 생면부지의 타인이 건네는 작은 배려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느끼게 되었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의 의미도 이제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아르바트 거리 중간쯤에 자리한 도미노피자는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외식 장소였다. 미국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와는 달리, 미국에서 건너온 몇몇 프랜차이즈는 유독 인기가 많아 항상 그 비결이 궁금해지곤 했다.

밥하기 귀찮은 날이나 아이들이 유독 떼를 쓰는 날, 혹은 기분이 영 시원찮은 날이면 온갖 핑계를 대며 한 달에 두 번 이상 이곳을 찾았다. 재료도 신선했고 맛도 좋았다. 성인 서너 명이 먹어도 넉넉한 라지 사이즈 피자가 만오천 원 정도였으니 가격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을 찾았던 이유가 단지 맛과 가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28화 첨부사진.jpg아이는 따로 마련된 계단에 올라 피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신기한 듯 지켜보곤 했다.


통유리 너머로 피자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는 모습이야 한국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카운터 옆에 계단처럼 마련된 공간이었다.

‘계단이 있어야 할 곳도 아닌데 왜 저렇게 만들어두었을까?’

궁금해서 살펴보니, 어린아이들이 올라서서 주방을 편하게 내려다볼 수 있도록 마련해 둔 발판이었다. 첫째는 우리가 주문한 피자가 나오기 전까지 그 위에 올라서서 도우가 넓게 펴지고 토핑이 올라가 오븐으로 들어가는 전 과정을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아이의 눈높이를 먼저 생각한 작은 계단 하나. 그 사소한 배려가 결국 우리 가족을 그곳의 단골로 만들었다


29화 루프탑 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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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탑 와인바에서 큰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케이크


또 하나 인상에 강하게 남은 외출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연말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남편의 온라인 게임 동료들과 함께 늦은 저녁 와인바를 찾았다. 내가 모스크바에서 밤에 외출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초고층 빌딩이 빽빽하게 솟아 있는 ‘모스크바 시티’의 야경은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배경을 연상하게 했다. 최첨단 미래 도시에 불쑥 발을 들여놓은 듯 화려하고 낯선 풍경이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 어른들만의 대화가 이어지는 와인바 입구 앞에 서 있으니, 그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아이 동반이라고 문전박대당하면 어쩌지?’


우려가 무색하게 직원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와, 귀엽기도 해라.”

불편해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그래, 일단 입장은 성공이었다.

평소에는 잘 사주지 않던,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조각케이크부터 시켜주었다. 먹느라 조금은 얌전히 앉아 있겠지. 기분이 좋아지면 말도 조금 더 잘 듣지 않을까 하는, 참 번지수 잘못짚은 기대를 걸면서 말이다.



결과는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내 뜻대로만 되면 인생이 왜 어렵겠는가.

케이크를 먹은 첫째가 신이 났는지, “갔다 올게.” 하더니 갑자기 몸을 뒤로 눕혀 테이블과 의자 사이로 쏙 빠져나갔다.

지금 디저트 먹고 운동하니…. 아휴…….

아이는 거침없이 가게 안 커다란 어항 앞을 탐험하기 시작했고, 나는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속삭이듯 목소리를 억눌렀다.



“이리 와, 거기 가면 안 돼.”

하지만 자기만의 흥에 오른 아이는 탐색 공간을 점점 넓혀가며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사를 건네며 까르르 웃어댔다.

‘아, 망했다. 이제 곧 쫓겨나겠네.’

한국이었다면 정숙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조심해 달라는 말을 들었거나,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슬그머니 한 소리 들었을 법한 상황이었다.



가까스로 아이의 한쪽 손목을 낚아채듯 잡고 우리 자리로 돌아가려던 찰나, 음식을 나르던 직원 한 명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나는 미안한 기색을 얼굴에 듬뿍 담아 ‘이즈비니 떼(죄송해요)’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나가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곧 내려질 처분을 기다리며 뻘쭘하게 서 있던 내게 돌아온 반응은 의외였다. 직원은 아이들에게 잼잼을 하듯 손을 오므렸다 펴며 인사를 건네더니,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 그 후로도 다른 직원들은 음료를 들고 오가며 아이와 마주칠 때마다 다정하게 웃어주거나 살며시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주변 손님들의 시선도 다르지 않았다. 마치 건너 알고 지내던 이웃집 아이를 대하듯 살가웠다. 오히려 내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쩌면 내가 특별히 운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편안하게 만드는 건 거창한 제도나 특별한 대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또 한 번 느꼈다. 아이를 향한 따뜻한 눈빛, 찰나의 미소, 그저 편안한 이웃으로 바라봐 주는 자연스러운 태도. 그런 사소하고 다정한 배려들이 모여, 육아에 이미 지친 부모의 마음에 든든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돌이켜 보면 한국에서도 아이들과 외출할 때 늘 마음 한구석이 조심스러웠다. 혹여 타인에게 피해를 줄까 봐 자연스레 주변 눈치를 살폈고, 아이가 울거나 떼를 써도 티가 잘 나지 않는 분주한 장소 위주로 찾아다니곤 했다. 아무리 미리 주의를 주고 교육을 시켜도, 아이들의 연령에 따라 혹은 기질상 가만히 앉아 있는 게 힘든 경우가 훨씬 많았다. 아이를 조용히 착석시키기 위해 식당에서 휴대폰을 쥐어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은 아니지만, 오죽하면 그럴까 싶은 부모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공공장소에서 조용한 식사를 원하는 이들의 권리 역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아이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건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 매체나 SNS를 통해 공공장소에서 막무가내인 아이들과 제지하지 않는 부모들로 인해 불편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했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하물며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낯선 타국이었다. 그곳에서 ‘한국인은 왜 저렇지?’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과 아이들의 행동거지에 더 바싹 신경을 곤두세웠다. 현지에서 상식으로 통용되는 선조차 알지 못한 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다는 건, 훨씬 더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다른 한국 엄마들과 대화할 때도 이 주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외국인에게 관대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관대한 나라라는 것.

남편 역시 자신이 이전에 겪었던 경험을 떠올렸다. 과거 함께 근무하던 한국인 남자 직원들끼리 쉬는 날 외출할 때면 길거리나 식당에서 유쾌하지 않은 시선을 받거나,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언사를 들은 적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외출할 때 아무리 추운 날이어도 패딩 점퍼 대신 늘 단정한 코트에 정장 구두를 갖춰 신으려고 했다.


정말 키즈 매직인가....


우리가 아이들과 다닐 때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먼저 다가와 다정하게 말을 건네곤 했다. 내가 누렸던 온기와 배려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라는 존재가 선물해 준 ‘따뜻한 방패’ 덕분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내 아이가 그곳에서 환영받는 존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도시에 대한 인상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다. 회색빛으로 상상했던 모스크바와 두 아이와 함께 살아본 모스크바는 이토록 달랐다.

겉으로는 툭툭 던지듯 차갑고 무뚝뚝하지만, 아이 앞에서는 한없이 무장해제되던 ‘츤데레’ 모스크바 사람들.
‘아, 여기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었지.’


그 당연한 사실을 일상에서 다시 일깨워준 곳.

그렇게 모스크바는 나에게,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오묘한 매력의 도시로 오래도록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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