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에서 12월 3일의 밤까지
어느 대학에 가면 좋을까. 서울의 이름난 사립대학이면 좋겠지만, 경상남도 출신 ‘상남자’였던 아버지의 머릿속에는 육군사관학교와 해군사관학교도 있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학교에 간다는 것이 어떤 삶을 택하는 일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입시라는 길고 지겨운 계절만 끝난다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2000년, 나는 결국 서울의 H 대학에 합격했고 아버지도 크게 만족했다. 그런데 육사라는 이름만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아버지는 왜 그곳을 권했던 것일까.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 2023)을 보고서야 나는 어렴풋이 아버지의 마음을 짐작했다.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1979년, 1953년생인 아버지는 26세였다. 그가 청년기를 보낸 시절에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라의 진로를 결정했다. 권력과 가까운 자리는 위험한 자리인 동시에 안정과 출세를 기대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정치적 정의보다 당장의 생계가 급한 사람에게 육사는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하고 직업을 얻을 수 있는 학교로 보였을지 모른다.
아버지가 내게 무엇을 기대했는지 이제 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자식을 권력의 시녀로 만들고 싶었다기보다, 웬만한 권력에도 쉽게 밀려나지 않을 울타리 안에 들여보내고 싶었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불안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 자식의 안전을 상상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을 이해하는 일과 그 생존법에 동의하는 일은 다르다. 안전하려면 힘 있는 쪽에 가까이 가야 한다고 믿을 때, 우리는 그 힘이 무엇을 하는지보다 그 곁에서 내 자리를 지키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된다. 부모가 자식에게 권하는 직업에도 시대의 기억은 남는다. 아버지의 육사 이야기를 떠올리며 〈서울의 봄〉을 보자, 영화 속 군인들에게 던질 질문도 달라졌다. 왜 저들은 옳은 쪽으로 움직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밤에 내 자리가 있었다면, 나는 무엇을 했을까.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의 아홉 시간을 처음부터 승패가 정해진 역사로 보여주지 않는다. 반란군은 여러 차례 궁지에 몰리고,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기회도 기차례 등장한다. 결말을 아는 관객들마저 혹시 이번에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할 만큼. 그 기대가 번번이 꺾이기에 영화는 고통스럽다. 전두광은 처음부터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힘을 가진 인물이 아니다. 그에게 심정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판단을 미루는 동안, 전두광은 아직 확보하지 못한 힘까지 이미 가진 것처럼 행사함으로써 점차 세력을 확장해나간다.
그날 밤 총만큼 바쁘게 움직인 것은 전화였다. 서울의 지휘부는 누가 명령했는지 확인하고, 윗사람의 결심을 기다리고, 병력을 움직였다가 바카라임을 뒤집어쓸 가능성을 따진다. 반란군은 정식 지휘계통을 깨뜨리면서도 대통령의 재가와 상관의 명령을 내세운다. 명령을 어긴 사람들이 오히려 명령의 권위를 빌린 것이다. 그들에게 재가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지켜야 할 절차가 아니었다.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고 병력을 움직인 뒤, 이미 벌어진 일에 승인의 형식을 씌우려 했다. 도장이 찍히면 불법이 적법한 일이 되고, 명령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다른 군인들도 스스로 판단할 부담을 덜 수 있으리라 여겼을 것이다. 절차의 권위를 빌려 절차를 무너뜨리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뒤늦은 승인이 앞선 행위를 바꾸지는 못한다. 12·12 사건 재판에서 대법원은 대통령의 사전 승낙 없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한 행위를 반란으로 판단했다. 사후에 받은 재가도 이미 이루어진 반란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보았다. 반란군이 끝내 재가를 원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절차를 존중했다는 증거가 아니다. 자신들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적법해 보여야 했다는 뜻에 가깝다.
영화에서 이태신(정우성)은 그런 반란군의 반대편에 선다. 나는 그를 처음부터 민주주의를 구하겠다고 나선 투사라기보다, 자기 직무를 끝까지 수행하려는 군인으로 본다. 허가받지 않은 병력 이동을 막고 정식 지휘계통을 지키려 한다. 군인이 총으로 권력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도 그 직무 안에 있다. 하지만 이태신에게는 반란군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른다. 불법을 막겠다며 자신이 상관의 명령을 거슬러도 되는가? 하는 역설이다. 국방장관이 철수를 명령하는데도 계속 싸운다면, 자신 또한 개인의 판단으로 군을 움직이는 셈은 아닌가. 전두광에게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 질문들이 이태신을 붙든다. 그는 전두광과 다른 군인이 되려 한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매번 전두광보다 유예된다.
그를 보며 빨리 결단하라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대에서 각자가 따를 명령을 마음대로 고른다면 조직은 유지될 수 없다. 동시에 권한을 벗어난 명령까지 무조건 따른다면 복종은 바카라임을 피하는 말이 된다. 이태신이 놓인 곤란은 그 사이에 있다. 군인은 독단으로 병력을 움직여서는 안 되지만, 누군가 명령했다는 이유만으로 잘못된 일을 수행해서도 안 된다. 영화는 원칙을 지키려는 사람조차 결정적인 순간에는 무엇이 그 원칙에 맞는 행동인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묻는다.
예전에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며 김만섭(송강호)이 광주로 차를 돌리는 장면에 오래 머문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그 역시 처음부터 자신에게 역사적 임무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니다. 밀린 월세가 있고, 서울에는 혼자 남겨둔 딸이 있다. 광주에서 빠져나온 그의 선택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그는 돌아간다. 두려움이 없어져서가 아니다. 광주에서 본 것을 못 본 일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섭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거창한 정치적 결단인 동시에, 두고 온 손님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자기 일을 끝내는 일이기도 하다. 이태신은 군인이고 김만섭은 택시기사다. 두 사람이 감당해야 할 바카라임의 무게와 성격도 다르다. 다만 두 영화가 붙드는 순간은 닮았다. 물러설 이유가 충분한 사람이 그 이유를 알면서도 자기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외면하지 않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12월 12일 밤, 움직이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비겁했을까.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는 없다. 명령을 거부한 뒤의 처벌이 두려웠을 수 있고, 가족과 다음 날의 생계를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 정당한 지휘부인지 즉시 판단하기 어려웠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 밤에는 반란에 가담한 사람, 맞선 사람뿐 아니라 상황이 분명해질 때까지 기다린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기다림이 영화의 비극을 만든다. 모든 것이 분명해진 뒤에는 반란을 막을 기회도 함께 사라진다. 기다리는 동안 자신은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반란군이 병력을 움직이는 시간에 상대편이 결정을 미룬다면, 그 시간은 반란군에게 돌아간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악인의 결단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리지 않은 결정이 그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 하는 문제다.
2024년 12월 3일 밤, 그 문제는 더 이상 영화 속에만 머물지 않았다.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군과 경찰이 국회로 향했다. 그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몇 시간 뒤 계엄이 해제될 것이라는 결말을 알지 못했다. 국회의원들은 국회 안으로 들어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해야 했고, 시민들은 국회 앞에 모여 군과 경찰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길을 막았다. 각자의 행동이 충분할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내린 선택이었다. 국회는 계엄 해제를 요구했고, 몇 시간 뒤 계엄은 풀렸다. 1979년과 2024년을 같은 사건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그 사이에 제도도 슬롯도 달라졌다. 내가 두 밤을 함께 떠올리는 이유는 결과가 같아서가 아니라, 결과를 모르는 상태에서 누군가는 명령을 내리고 누군가는 그 명령을 따르거나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제도를 멈추려는 시도가 있을 때, 그것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실제로 움직여야 한다. 2024년의 밤은 그 차이를 보여주었다.
이후 계엄이 짧게 끝났고 대규모 유혈사태도 없었다는 사실을 들어 그 밤의 위험을 작게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막아냈다는 결과가 시도의 성격까지 바꾸지는 않는다. 헌법재판소는 2025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계엄 선포와 국회에 대한 군경 투입 등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대통령을 파면했다. 계엄이 단시간에 해제됐다는 사정도 그 판단을 없애지 못했다. 피해가 더 커지지 않았다는 말을 하려면, 무엇이 시도됐는지뿐 아니라 누가 어떻게 그것을 막았는지도 함께 말해야 한다.
그렇다고 1979년의 군인들을 모두 비겁자로, 2024년 국회 앞의 사람들을 모두 영웅으로 나누고 싶지는 않다. 결말을 아는 사람은 과거의 어느 지점에서든 쉽게 결단한다. 실제의 밤에는 정보가 모자라고 명령은 엇갈린다. 가족의 얼굴과 다음 날의 생활도 함께 떠오른다. “나라면 당연히 막았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것보다 나 역시 망설였을지 모른다고 인정하는 편이 정직하다. 그 인정은 바카라임을 흐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용기만으로 모든 일을 설명하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평범한 사람이 잘못된 명령을 알아보고 거부할 수 있으려면, 누가 어떤 권한으로 명령하는지 분명해야 하고, 그 명령을 문제 삼을 통로가 있어야 한다. 거부한 사람에게 모든 위험을 혼자 떠넘겨서도 안 된다. 용기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다음 밤을 대비할 수 없다.
이 대목에서 아버지가 권했던 육사를 다시 생각한다. 아버지는 국가에 가까운 자리가 자식을 지켜줄 수 있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나는 이제 그 마음을 짐작한다. 그러나 울타리 안에 들어가는 일과 그 안에서 옳은 판단을 하는 일은 별개다. 내가 속한 조직의 결정이라고 해서 언제나 나까지 지켜주는 것은 아니다. 그 조직의 힘이 시민을 향할 때,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에게도 멈춰 서야 할 순간이 온다.
아버지를 이해하려다 결국 내게 남은 생존의 습관을 돌아보게 된다. 힘 있는 쪽이 정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싶은 마음, 윗사람이 결정하면 내 판단의 부담도 덜 수 있으리라는 마음이 내게는 없을까. 〈서울의 봄〉이 묻는 것은 “그날 오진호의 곁에 설 수 있었느냐”만이 아니다. 나는 나쁜 사람이 되지 않고도 얼마나 쉽게 나쁜 사람에게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가. 사실이 더 분명해지기를, 누군가 먼저 나서기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지키려 한 것은 신중함이었을까, 내 자리였을까. 역사는 몇몇 영웅의 결단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전화를 한 번 더 돌린 사람, 병력이 지나는 문을 열어준 사람, 잘못된 명령의 이행을 늦춘 사람, 국회의 담을 넘은 사람, 돌아가던 차를 다시 돌린 사람의 선택이 사건의 속도를 바꾼다. 그날 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고 믿은 사람에게도 그가 보낸 시간이 남는다. 판단을 미룬다는 것은 판단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니다. 때로 그것은 가장 늦게 드러나는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