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단길의 이름값을 치른 사람들

〈다큐멘터리 3일〉 2018 경리단길 편 취재기

byMinseung Kang

금요일 저녁, 경리단길에서 방송인 홍석천 씨를 만났다.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 앞에 선 그는 문이 왜 열려 있지 않은지 물었다. 낮에는 다른 일을 본 뒤 이제 막 가게로 오는 길이었다.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손님 몇몇이 앉은 테이블이 보였다. 오늘은 장사가 좀 되는 것 같다고 하자, 지인들이 열두 명쯤 예약해 준 것이라며 그게 거의 전부라고 했다. 금요일의 식당이었다.


홍 씨는 루프탑으로 올라가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남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여성 셋은 전날 중간고사를 마쳤다고 했다. 한 사람이 그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한다며 반가워하자 홍 씨는 자신이 맞팔을 해드렸는지 되물었다. 아니라고 하자 홍 씨는 여자는 잘 팔로우하지 않는다며 농담을 건넸다. 손님들과 웃고 하이파이브를 나눈 뒤, 그는 옆 테이블의 부부에게 다가갔다.


부부는 결혼 1주년 때 이 식당에 왔고, 4주년인 이날 다시 찾았다고 했다. 홍 씨는 그동안 식당이 문을 닫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부부는 기념일마다 다시 올 수 있게 오래 운영해 달라고 부탁했다. 여러 가게를 줄이더라도 이곳 하나만은 남겨 달라는 말에 그는 이미 줄이고 있다고 답했다. 좋은 날이면 남산이 보이는 이 자리가 떠올랐다는 부부와 사진을 찍은 뒤, 홍 씨는 비슷한 사연의 다른 손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의 가게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결혼하고 아이를 데리고 찾아온 적도 있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손님들은 가게를 지켜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그들의 기억이 있던 가게를 그는 끝내 지키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밖으로 나오자 홍 씨는 골목의 가게 주인들에게 인사했다. 카페였던 자리가 옷가게로 바뀌어 있었고, 오래 장사한 다른 식당의 주인은 다가올 겨울을 걱정했다. 금요일 밤 여덟 시 반인데 손님이 겨우 서너 팀이라는 푸념이 오갔다. 조금 더 걷자 한 상인이 그를 붙잡고 동네를 좀 살려달라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많았던 사람이 왜 이렇게 줄었느냐고 말하다가 스스로 말을 고쳤다. 사람이 줄었다고 해서는 안 되며 동네가 살아 있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손님이 없다는 말은 어려움을 알리는 동시에 찾아올지도 모르는 손님을 돌려보낼 수도 있는 말이었다. 홍 씨는 다들 절박한 상황이라고 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또 다른 식당에서도 그는 손님의 식사를 살핀 다음 직원에게 그날 몇 테이블을 받았는지 물었다. 태국 음식으로 메뉴를 새로 짠 가게였다. 해외에 갈 때마다 직접 골라 들여온 그림과 조명, 식재료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그는 매출을 확인하고 재료비를 걱정했다. 조금 전까지 손님에게 웃으며 농담을 건네던 얼굴에 금세 그늘이 드리웠다.


나는 2018년 11월 2일, 〈다큐멘터리 3일〉의 경리단길 후속 촬영을 시작했다. 프로그램은 2016년 1월에도 이곳에서 보낸 72시간을 방송한 바 있다. 그때는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거리였지만 2년여 사이 빈 점포가 늘고 방문객의 발길도 줄었다. 무엇이 어떻게, 왜 달라졌는지 보기 위해 당시 이 골목을 촬영했던 제작진을 다시 소집했고 연출자인 나만 새로 합류했다. 촬영을 준비하며 나는 그들이 찍은 첫 방송을 찾아보았다.


2016년 방송은 사람들로 붐비는 골목에서 시작했다. 연인들이 사진을 찍고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길을 오르내렸다. 촬영 중 맞이한 2015년 마지막 날에도 거리는 새해를 앞둔 방문객으로 붐볐다. 그들이 향한 곳은 유명 식당 한 곳이 아니었다. 녹사평역에서 남산 쪽으로 올라가며 이어지는 주택가의 작은 가게들이 하나의 행선지가 되었다. 대구에서 서울 여행을 온 학생들은 경복궁을 둘러본 뒤 한복 차림으로 이 골목까지 왔다. 당시 경리단길은 서울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명소였다.


길의 이름은 옛 육군 중앙경리단에서 왔다. 길가에는 50년 된 쌀집과 오래된 재래시장이 있었고, 그 근처에는 캐나다에서 온 사람이 작은 식당을 열었다. 최기웅 씨가 오래 모아 온 외국 바카라 사이에서 우간다 출신 단골은 자기 나라 말로 된 성경을 찾아냈다. 주택가 안쪽에는 젊은 주인들의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섰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일을 접은 사람은 손님이 LP를 골라 들을 수 있는 가게를 냈다. 오래 살아온 주민과 새로 자리를 잡은 사람, 시장과 외국 식당, 주택과 가게가 짧은 길 안에 놓여 있었다. 낯선 음식이나 음악을 만나러 왔다가 여전히 사람들이 장을 보는 시장 앞을 지나게 되는 거리였다. 골목 안쪽의 작은 가게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려졌고, 방문객은 가게 하나에서 다음 가게로 걸어갔다.


후속편 촬영 첫날, 시장에 들어서자 권씨가 제작진을 알아보았다. 채소가게 어르신도 오래간만이라며 반겼다. 내게는 첫 방송에서 보았던 얼굴들이었다. 골목에서는 에콰도르에서 신혼여행을 온 부부가 휴대전화로 온라인카지노 가게를 찾고 있었다. 검색 결과에 나온 ‘리틀넥’을 따라 계단을 올랐지만 문에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그날 가게는 열지 않았다. 부부는 다른 곳을 찾아 떠났다. 타이완에서 온 관광객도 닫힌 카페와 적은 인파를 아쉬워했다. 우리가 촬영에 앞서 본 2016년의 방송과 부부가 손에 든 검색 결과는 각기 다른 시점의 거리를 보여주었다. 멀리서 온 별빛이 이미 지나간 별의 모습을 전하듯, 경리단길의 이름도 가게가 바뀐 뒤까지 사람들을 이곳으로 데려오고 있었다.


첫 방송 속 경리단길에서 김미례 씨는 그림을 그리던 방에서 자몽 음료를 팔았고, 제일시장의 권옥남 씨는 새해 첫날 주문받은 떡을 만들었다. 이이순 씨는 두 건물 사이의 좁은 틈에서 꽃을 꺼내 길가에 놓았다. 서로 다른 세 가게를 지나는 동안 방문객은 어느 한 가게의 손님인 동시에 이 거리의 손님이 되었다. 그 길의 명성은 다른 동네의 이름에도 남았다. 서울 망원동의 망리단길, 경주 황남동의 황리단길, 부산 해운대의 해리단길이 그 예다. ‘리단길’이라는 이름에는 작은 가게들을 찾아 골목을 걷는 즐거움이 실려 있었다.


첫 방송에서 김미례 씨의 가게는 작업실이기도 했다. 공대를 나와 디자인 일을 하던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경리단길에 방을 얻었다. 개인 작업실로 쓰다가 생계를 위해 한쪽에서 음료와 맥주를 팔기 시작했다. 2016년 화면에는 그림 도구와 손님에게 내놓을 자몽 음료가 한 공간에 있었다. 그는 새해에 좋은 작품을 완성하고 여행을 다녀오며 가게도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촬영을 마칠 무렵에는 붓을 들어 제작진에게 글씨를 써주었다.


2018년에도 김씨는 그 방에서 자몽 맥주를 만들고 그림을 그렸다. 첫 방송을 보고 찾아온 손님도 있었다. 그가 꺼내 보여준 방명록은 스물일곱 권이었다. 2014년 9월부터 손님들은 그 안에 글을 쓰고 그림을 남겼다. 한때는 한 달이면 한 권이 찼지만, 2018년 2월에 시작한 바카라은 11월에도 마지막 장에 이르지 못했다. 손님의 발길이 뜸해진 시간은 그 바카라의 남은 페이지에 선명했다.


김씨가 가리킨 거리에서는 두 칸짜리 빵집이 액세서리 가게와 꽃 수업을 하는 가게로 바뀌었고, 소품점 자리에는 타로 가게가, 그림 가게 자리에는 부동산이 들어섰다. 얼마 전까지 손님이 많던 돈가스 샌드위치 가게도 문을 닫았다. 김씨는 가게를 떠난 이웃들의 자리를 하나씩 짚다가 자신도 그 순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려고 얻은 방에서 이제는 생활비보다 월세를 먼저 걱정했다. 임대료를 내려 달라고 부탁했을 때는 차라리 나가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계속 그곳에 있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다음 달의 임대료를 낼 수 없었다.


권옥남 씨는 이미 첫 방송 이전에 자리를 한 차례 옮겼다. 길가의 떡집 월세가 190만 원이 될 때까지 버티다가 시장 안쪽의 가게를 사서 들어왔다. 2016년 그는 옛 자리가 이제 월세 400만 원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길에서는 멀어졌지만 시장에는 오래된 단골이 있었다. 새해 첫날에는 들어온 주문을 맞추려면 아홉 말의 떡을 해야 한다며 잠을 못 자겠다고 웃었다.


2018년 11월 3일 새벽, 권씨는 주흘산에 가는 단골에게 건넬 연잎밥을 쪘다. 평소 떡을 사 가던 손님이 한번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생긴, 첫 방송 때는 없던 메뉴였다. 손님이 받으러 오기로 한 시간을 살피며 밥을 찌던 권씨는 백화점에서는 5천 원에서 7천 원씩 받는다면서도 자신의 연잎밥에는 3천 원을 받았다. 안에 이것저것 넣으면 남는 것이 많지 않았지만, 손님들의 사정을 아는데 가격부터 올릴 수는 없었다.


큰길의 비싼 월세를 피해 사들인 시장 안의 가게는 그의 것이었다. 그래서 김씨처럼 다음 계약 때 작업실을 빼야 할지 걱정하는 처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가게의 소유권이 사라진 이웃을 돌려주지는 못했다. 첫 방송 때 가족이 살던 가게 뒤편을 영업 공간으로 바꾸고 일부를 다시 임대한 그도 손님의 주문에 맞춰 메뉴를 늘려야 했다. 권씨는 상인들이 너무 자주 바뀐다며 예전처럼 길에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랐다. 오래된 시장을 떠나지 않고 버텨온 사람에게 쇠퇴는 자기 가게의 매출에 앞서 늘 보던 얼굴들이 바뀌는 일이었다.


‘똑순이’ 이이순 씨는 두 건물 사이의 틈에서 꽃을 팔았다. 낮이면 지하에 두었던 꽃을 길가로 꺼내고 저녁이면 다시 들였다. 꽃바구니를 만들고 손님을 맞은 뒤에는 밤 8시에 미용실 청소를 하러 갔다. 2016년 방송 당시 그는 꽃집을 38년째 하고 있었지만 가게는 여전히 월세였다. 다가오는 2월이면 어디에 화분을 더 놓을지 손으로 가리키며, 골목 입구에 꽃집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2018년 그 틈에는 꽃집이 없었다. 권씨가 근처로 옮겨 간 이씨를 불러주었다. 첫 방송 뒤에는 자신을 알아보고 꽃을 사러 온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이씨의 설명에 따르면, 그 뒤 건물주에게 원래 자리에서 나가라는 말을 들었고 다툼은 법정까지 갔다. 같은 동네에 다시 꽃집을 냈지만 그곳에서도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마지막 영업일로 정해 둔 날짜는 11월 15일. 첫 방송에서 이듬해 봄에 놓을 화분의 자리를 살피던 사람이 이제는 가게를 정리할 날짜를 말하고 있었다.


이씨는 단골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꽃을 사러 온 손님 앞에서 폐업 이야기가 처음 나왔다. 맞은편 가게와 가까운 언니 정도에게만 알리고 조용히 떠나려 했다고 했다. 오래 꽃을 팔았는데도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는 자신의 실패로 받아들였다. 말끝에 얼굴을 가리고 울던 이씨는 가게가 없어진 뒤에도 꽃이 좋았던 집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제작진이 앞선 방송이 가게에 해가 된 것은 아닌지 묻자 이씨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 방송 뒤 손님이 늘었고,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리려고 자신을 내보냈다고 말했다.


같은 주말, 다른 꽃가게 앞에는 문을 열기도 전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그 가게는 한 달 전부터 준비한 가을 꽃 플리마켓을 열었다. 손님이 유럽의 꽃시장처럼 꽃을 자유롭게 고르는 행사였다. 줄을 선 한 손님은 소셜미디어의 방문 후기를 보고 찾아왔다고 했다. 손님들은 매장에 들어가 국산 꽃과 수입 꽃 백여 종류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을 직접 골랐다. 한 손님은 여자친구와 아직 직접 만나지 못한 여자친구의 어머니에게 줄 꽃을 찾았다. 주인은 어떤 꽃을 좋아할지 몰라 종류를 넉넉히 준비했지만, 팔리지 않으면 버려야 할까 봐 전날 밤 잠을 설쳤다고 했다. 이씨가 매일 지하에서 꽃을 꺼내 골목에 놓고 지나가는 손님을 맞았다면, 이 가게는 소셜미디어로 알린 행사에 손님들을 한날 모았다. 그날의 긴 줄과 이씨가 정해 둔 마지막 영업일이 같은 골목에 있었다. 꽃을 사는 사람은 여전히 있었지만, 꽃집을 발견하고 찾아오는 경로와 시간은 달라져 있었다.


첫 방송은 경리단길 주변 점포의 임대료가 앞선 5년 동안 가게에 따라 두 배에서 여섯 배까지 올랐다고 전했다. 그때 방송은 거리의 활기를 기록하면서도, 활기를 만들어 온 사람이 이미 길가에서 시장 안으로 물러난 장면을 함께 찍었다. 손님이 많이 다니는 자리와 계속 장사할 수 있는 자리가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2018년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었는데도 김씨와 이씨에게는 월세가 남았다. 거리가 유명해질 때 생긴 비용은 그 유명세가 사라진다고 함께 내려가지 않았다.


경리단길의 가게들은 혼자 손님을 모은 것이 아니었다. 꽃집 앞에 꽃이 놓이고, 작업실에서 손님이 방명록을 쓰고, 시장에서 떡을 사는 일이 겹쳐 방문객에게는 하나의 골목이 되었다. 그러나 가게를 빌리는 계약은 각자 맺었다. 골목 전체가 만들어 낸 매력은 건물과 가게의 가격에 반영될 수 있지만, 그 가격을 내야 하는 사람의 장부에는 옆 가게가 불러온 손님의 몫이 적히지 않는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다는 비유는 여기서 나온다. 더 높은 임대료를 당장 받을 수 있어도, 그 값을 낼 이유가 되었던 가게들이 떠나면 빈 점포 앞을 지나는 손님도 줄어든다. 골목을 이루던 가게들은 서로 경쟁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찾아올 이유가 되어 주었다.


후속편이 11월 18일 방송된 뒤 이씨의 사연과 경리단길의 변화는 여러 기사에 실렸다. 한 사람의 꽃집과 다른 사람의 작업실, 시장에서 이어지던 장사가 ‘경리단길 몰락’이라는 제목 아래 묶였다. 2016년에는 이름난 골목을 보여주는 방송이 사람을 불렀고, 2018년에는 쇠퇴한 골목을 보여주는 방송이 남은 사람들의 일을 설명했다. 어느 쪽의 화면이든 거리를 구경하는 사람과 그곳에서 월세를 내는 사람에게 같은 의미일 수는 없었다. 나 역시 카메라를 들고 그 거리로 갔다는 점에서 이 문제의 바깥에 있지 않다.


2018년 방송이 나간 뒤, 홍 씨는 거리에서 들은 부탁을 실제 일로 옮겼다. 이듬해 초 그는 경리단길에서 운영하던 두 식당도 어렵다면서 건물주와 상인들을 만나 모임을 만들었다. 그 자신도 이 골목에 건물을 가진 임대인이면서 다른 가게에서는 영업비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임대료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어느 한쪽에만 서 있지 않았다. 2019년 그가 진행한 골목 상생 방송에서 상인들은 매출에 따라 임대료를 조정하자고 제안했다. 건물주들은 매출을 어떻게 확인할지부터 물었고, 한 건물주는 자신은 월세 250만 원을 받는데 550만 원을 받는 건물주도 있다며 임대료 인하에 공감을 표했다. 거리에서 그에게 살려 달라던 사람들의 부탁은 회의장에서는 누가 얼마를 덜 받고, 누가 매출을 얼마나 공개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되었다.


홍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의 월 적자가 천만 원에서 천오백만 원에 이르러 방송으로 번 돈을 보탰다고 했다. 한때 일하던 직원이 이백 명에 이르렀는데 그들이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가 붙들고 있던 것은 식당의 간판만이 아니었다. 가게를 하나씩 접은 뒤 마지막으로 남은 이태원의 식당 ‘마이첼시’는 월세가 950만 원이었다. 그는 50만 원을 내려 달라고 부탁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 가게는 경리단길의 루프탑 식당이 아니었고, 마지막 폐업에는 코로나19의 타격도 컸다. 2020년 8월 그 식당마저 문을 닫았다. 당시 경리단길의 ‘마이스카이’는 후배가 운영하고 있다고 그가 직접 밝혔다.


나중에 경리단길에 다시 손님이 몰리고 빈 점포가 채워진다면 우리는 상권이 회복됐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새 가게의 매출과 이곳을 떠난 사람의 귀환은 다른 일이다. 이씨가 꽃을 꺼내 놓던 자리에 다시 꽃집이 생겨도, 경리단길에서 오랫동안 꽃을 팔던 이씨의 자리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골목의 활기를 잃는 일과 그 활기를 만들어 온 사람을 잃는 일을 구별해야 하는 이유다.


그날 홍 씨는 손님에게는 오래 있어 달라는 말을, 거리의 상인에게는 골목을 살려 달라는 말을 들었다. 잠시 뒤 다른 식당에서는 그날 받은 테이블 수를 확인했다. 골목을 지켜 달라는 부탁이 결국 한 사람이 얼마나 더 일하고 손해를 견딜 수 있는지를 묻는 말이 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건물을 소유한 홍 씨와 쫓겨난 이씨의 형편은 같지 않다.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같은 질문 앞에 섰다. 자신이 만든 거리에서 일하려면 앞으로 무엇을 더 감당해야 하는가. 경리단길은 그들이 들인 시간 덕분에 이름을 얻었다. 그 이름에 값이 붙은 뒤에도 자리를 지키는 비용은 각자의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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