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를 수 있다

‘조건을 따지는 사랑’을 위한 변론

byMinseung Kang

연애가 마음의 일로만 보이는 것은 그 비용이 대개 장면 밖에 있기 때문이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보이지만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치른 교통비와 식비, 비워둔 저녁과 미뤄둔 노동은 보이지 않는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려면 먼저 만나도 되는 생활을 마련해야 한다. 퇴근 뒤의 몇 시간, 함께 걸을 거리, 오래 이야기해도 쫓겨나지 않을 공간이 필요하다. 가난은 지갑보다 먼저 그런 여백을 가져간다.


비싼 식당의 저녁이 편의점 앞의 삼각김밥보다 근사하거나 우월한 사랑이라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선택권이다. 싼 것을 고르는 일과 싼 것밖에 고를 수 없는 일은 다르다. 한두 번의 궁색한 데이트는 추억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약속이 잔고와 근무표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관계는 조금씩 움츠러든다. 가고 싶은 곳보다 갈 수 있는 곳을 찾고, 보고 싶은 날보다 돈이 덜 드는 날을 기다린다. 한 사람은 자꾸 미안해지고 다른 사람은 그 미안함을 달래느라 지친다. 사랑이 부족하지 않은데도 사랑의 자세는 점점 낮아진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그의 조건을 본다. 직업과 소득, 학력과 사는 곳은 그 사람의 본질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성실함만으로 이룬 성취도 아니며, 부모의 자산과 교육의 기회, 우연한 행운과 실패가 뒤섞인 결과다. 그런데도 조건은 무시하기 어렵다. 한 사람이 지나온 삶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동시에, 그와 함께 살아갈 때 나누어야 할 시간과 비용, 감당해야 할 불안의 크기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조건은 사람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지만 관계가 치러야 할 대가를 짐작하게 한다.


조건을 따지는 일을 속물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패를 견딜 여유가 없는 사람일수록 상대의 생활을 더 면밀히 살핀다. 넉넉한 사람은 연인의 실직을 한동안 떠받칠 수 있고 관계가 끝난 뒤에도 자기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불안정이 곧 두 사람의 생계를 흔드는 처지에서는 사랑도 위험을 계산할 수밖에 없다. 결국 사랑도 사람의 일이므로. 안정된 온라인 게임과 더 넓은 집을 바라는 마음은 더 나은 상대를 차지하려는 욕망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의 궁핍까지 감당할 능력이 자신에게 없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그 순간 조건은 안전장치이면서 문턱이 된다. 소득이 적은 사람, 고용이 불안한 사람, 독립할 집이 없는 사람은 표정과 성정을 보여주기 전에 관계의 후보에서 밀려난다. 그가 다정한지, 갈등 앞에서 얼마나 정직한지, 타인의 고통을 오래 견딜 수 있는지는 만나본 뒤에야 알 수 있다. 그러나 조건은 만남 이전에 확인할 수 있다. 불확실한 사람을 알아가는 수고 대신 측정 가능한 숫자로 위험을 거르는 편이 효율적이다. 사랑은 그렇게 타인을 발견하는 일에 앞서 타인의 생활을 우선 심사하는 일이 된다.


배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경제적 궁핍함이나 낮은 슬롯적 계급으로 말미암아 관계를 시작할 기회가 적었던 사람은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에도 서툴 수밖에 없다. 상대의 침묵을 기다리는 법, 호의와 애정을 구별하는 법, 다툰 뒤 다시 말을 거는 법은 마음만으로 알 수 없다. 만나고 오해하고 상처를 주고 사과하는 동안 배운다. 그 과정에서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 어떤 순간에 비겁해지는지를 알게 된다. 사랑은 타인을 얻는 경험인 동시에 타인 앞에 나타난 자신을 배우는 경험이다.


그러나 슬롯는 그 경험의 부족을 다시 개인의 결함으로 판정한다. 말주변이 없다거나 이성을 대할 줄 모른다거나 매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한 번은 조건이 부족해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다시 한번은 만남이 적어 생긴 서투름 때문에 선택받지 못한다. 경제적 빈곤은 관계의 빈곤으로 옮겨가고, 관계의 빈곤은 마침내 한 사람의 성격처럼 굳어진다. 가난은 사랑을 금지하지 않는다. 다만 사랑에 들어가는 문을 좁히고, 그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한 바카라임을 문밖에 남은 사람에게 돌린다.


가난한 사람의 사랑은 그래서 자주 미래형으로 말해진다. 취업하면, 빚을 갚으면, 방을 구하면, 조금 덜 바빠지면. 그러나 생활의 조건은 좀처럼 한꺼번에 갖추어지지 않는다. 기다리는 동안 사람은 떠나고, 마음은 표현되지 않은 채 오래된다. 시인의 말처럼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그는 그 마음을 한 사람에게 건네고, 실패하고, 다시 건네는 시간을 충분히 살아보지 못했다. 결국 그가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은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사랑 속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는가이다. 내가 모르는 나를 상대에게 설명할 수는 없다.


살림이 팍팍할수록 사람들은 제 삶보다 한 칸쯤 넉넉한 사람을 찾는다. 두 사람의 궁핍을 짊어질 힘이 없으니 적어도 상대만은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가 올려다보는 사람도 다시 위를 바라본다. 시선은 모두 위로 향하고 손은 중간에서 만나지 못한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 굳이 나를 택하는 일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 사랑을 시작하기도 어려운데 슬롯는 결혼과 출산이 왜 오지 않느냐고 묻는다. 인심만 곳간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을 삶 안에 들이고, 그의 실패를 견디며, 아이가 올 자리를 마련하는 마음도 곳간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사라진 것은 사랑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것을 생활로 옮길 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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