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의 밤

My Cities 2. Noboribetsu / 2014.12.26–28

byMinseung Kang

노보리베츠에서는 오후 네 시가 되기도 전에 빛이 기울었다. 하늘은 아직 낮의 색을 조금 남기고 있었지만 눈 덮인 길은 벌써 저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산 쪽에서 내려온 그늘이 마을의 지붕과 골목을 차례로 덮었다. 사람들은 희고 단단해진 길 위를 천천히 걸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눈 위에 검고 움푹한 자국이 생겼고, 그 자국들이 서로 만나 온천가의 이쪽과 저쪽을 이었다.


눈이 내려앉은 마을은 소리가 드물었다. 자동차가 지나가도 바퀴 소리는 멀리 퍼지지 않았고, 사람들의 말소리도 몇 걸음을 벗어나면 눈 속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거리에는 온천수가 밀어 올린 흰 증기가 피어올랐다. 유황 냄새는 어느 한곳에서 시작되지 않고 마을 전체에 묽게 번져 있었다. 눈과 수증기는 함께 희었다. 눈은 위에서 내려와 사물의 윤곽을 덮었고, 증기는 땅에서 솟아올라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온천 마을인데도 밤을 기다렸다는 듯 간판을 밝히는 가게는 많지 않았다. 흔한 편의점 하나를 찾으려 해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한국의 관광지는 밤이 오면 더 분주해진다. 조명을 켜고 음악을 틀어 여행자가 소비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린다. 노보리베츠는 하루를 연장하려 들지 않았다. 해가 지면 순순히 어두워졌다. 어둠은 온천탕의 늙은 주인처럼 골목 입구에 먼저 앉아,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 그만 서두르라고 말하는 듯했다.


온천수가 솟는 자리에는 돌부처가 서 있었다. 누군가 돌도 추위를 탈 것이라 여겨 목도리를 둘러주었다고 했다. 목도리는 돌의 목을 한 바퀴 감싸고 가슴께로 가지런히 내려와 있었다. 얼굴과 어깨에는 눈이 쌓였지만 목만은 따뜻해 보였다. 산과 길과 집에도 신령이 산다고 믿는 곳이었다. 차가운 돌 안에도 어떤 생명이 머문다고 생각했다면 차마 그 돌을 눈 속에 맨몸으로 세워두지 못했을 것이다.


그 풍경이 좋았다. 인간에게 특별히 친절하지 않은 도시에서 인간이 아닌 것까지 보살피는 마음에서 한 점의 온기가 돌았다. 노보리베츠의 적막은 그래서 황량함과 달랐다. 거리는 사람을 붙잡지 않았고 마을은 자신을 과장하지 않았지만, 돌 하나를 대하는 태도에는 오래된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 도시의 온기는 밝기나 소음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온천가를 벗어나면 화산이 남긴 지형과 뜨거운 물이 고인 오유누마가 있었다. 눈 덮인 땅 한가운데에서 물은 얼지 않은 채 증기를 올렸다. 겨울의 공기와 땅속의 열기가 한 자리에서 맞부딪쳤다. 땅은 흰 눈 아래 잠든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고요하다고 해서 정지한 것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끓고 있다는 점에서 그곳의 밤과 사람의 마음은 조금 닮아 있었다.


해가 완전히 지자 마을은 잠드는 대신 다른 시간대로 이동했다. 한낮에는 사람에게 내어주었던 길과 온천과 숲을 본래의 주인들이 되찾는 듯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올랐다. 어느 여관의 문이 열리고, 낮에는 보이지 않던 손님들이 말없이 눈길을 건너올 것 같았다. 노보리베츠에서 밤은 낮의 나머지가 아니었다. 사람이 물러난 뒤 비로소 시작되는, 별도의 세계에 가까웠다.


눈은 어두워진 뒤 다시 내렸다. 처음에는 드문드문 떨어지던 눈송이가 어느새 길 전체를 채웠다. 오후에 사람들이 남긴 발자국의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무너졌다. 깊게 밟힌 자국에는 눈이 고였고, 나란히 이어지던 두 줄의 발자국도 차츰 방향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누가 혼자 걸었는지, 누가 함께 걸었는지, 어디에서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는지 눈은 묻지 않았다. 밤새 내리고 또 내려 모든 사정을 같은 흰빛 아래에 눕혔다.


여행지는 흔히 방문객에게 당신은 특별하다고 말한다. 이 풍경은 당신을 기다렸고 이 순간은 오직 당신을 위해 준비되었다고 속삭인다. 노보리베츠는 그런 거짓말에 인색했다. 내가 오기 전에도 오후 네 시면 해가 졌고, 내가 떠난 뒤에도 눈은 같은 방식으로 길을 덮었을 것이다. 이 도시는 나를 밀어내지도 않았지만 중심에 세워주지도 않았다. 나는 잠시 그 위를 지나간 하나의 몸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내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때는 곤경에 처하면 어디선가 구원이 나타나고, 오래 견디면 삶이 나를 위해 합당한 결말을 준비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세계는 한 사람의 고통을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노보리베츠가 나를 위해 해를 늦추지 않았듯 삶도 누군가를 위해 계절의 순서를 바꾸지 않는다.


그 깨달음은 생각만큼 쓸쓸하지 않았다. 발자국이 사라졌다고 해서 내가 걷지 않았던 것은 아니니까. 길은 내가 그 위를 지나는 동안 분명히 존재했다. 세계가 나를 기억하지 않더라도 나는 눈과 증기, 목도리를 두른 돌부처와 오후 네 시의 어둠을 기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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