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길에서 죽지 않도록

<다큐멘터리 3일> 여기, 그들이 있다 — 국립중앙의료원 72시간

byMinseung Kang

혈압은 70에 40이었다. 쪽방에서 홀로 지내던 노인의 몸은 뼈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날 만큼 말라 있었다. 심전도 전극을 가슴에 붙였지만 자꾸 떨어졌다. 영양 상태가 너무 나빠 접착면이 버티지 못했다. 간호사와 의사가 침대 주위로 모여 전극을 두세 개씩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렇게 한 뒤에야 모니터에 숫자가 떴다. 의료기기가 붙잡지 못하는 몸을 사람의 손이 붙들고 있었다.


CT에는 결핵이 강하게 의심되는 흔적이 보였다. 노인은 음압격리실로 옮겨졌다. 왜 이 환자가 국립중앙의료원에 왔느냐는 물음에 의료진은 두 가지를 말했다. 이런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많지 않고, 환자에게는 병원비를 낼 능력도 없었다. 결핵이 의심되는 중환자를 격리해 치료할 시설이 필요했고, 치료비를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까지 병원이 감수해야 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더 좋은 병원을 골라 찾아온 곳이 아니라, 다른 선택이 사라진 뒤에도 문이 남아 있는 병원이었다.


이 병원으로 오는 환자는 두 번 위급해진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몸이 아파서 위급하고, 그다음에는 받아줄 병원이 적어서 위급하다.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노숙인, 보호자가 없는 독거노인, 보험이 없는 외국인, 결핵처럼 격리가 필요한 감염 의심 환자는 치료에 더 많은 인력과 공간을 요구하지만 병원비를 받을 가능성은 낮다. 의학적 중증도 위에 슬롯적 취약성이 겹치면 환자는 병원 입장에서 가장 어렵고 손실이 큰 사람이 된다. 사립 대형병원의 문이 모든 환자에게 같은 무게로 열려 있지 않은 이유다.


같은 밤, 국립중앙의료원 재난응급의료상황실에는 다른 병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마흔 살의 한 외국인이 술을 마신 뒤 길에 쓰러져 있다가 119에 실려 왔는데, 배 속 어딘가에 구멍이 나 복막염이 생긴 것으로 의심된다고 한다. 응급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에게는 보험도 보호자도 없다는 점. 처음 환자를 받은 병원은 수술을 맡아줄 병원을 찾아달라고 상황실에 요청해온 것이다.


그 즉시 상황요원이 다른 병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한 병원은 외과 인력이 부족했다. 다른 병원에서는 이미 한 명을 수술하고 있었고, 다음 수술 환자도 기다리는 중이었다. 경북 구미의 한 병원도 인력이 없어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거절 사유를 적은 뒤 다시 번호를 눌렀다. 밤이 지나도록 병원은 정해지지 않았다. 아침이 됐을 때도 의뢰한 병원이 먼저 자체 해결을 시도하고, 불가능하면 상황실이 다시 돕기로 한 상태였다. 상황요원은 어려운 환자 한 명 때문에 스무 곳, 서른 곳에 문의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라도 병원이 정해지면 다행이라고 했다.


병원이 환자를 가려 받는다는 말은 이 장면 앞에서 절반만 맞는다. 중증환자를 받는 일은 응급실의 빈 침대 하나를 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복막염이면 외과의와 마취과의, 수술실 인력, 수술 뒤 들어갈 중환자실이 필요하다. 뇌출혈이면 신경외과의와 영상검사, 수술실 또는 중재시술실이 붙어야 한다. 결핵이 의심되면 음압격리실과 감염관리 인력이 있어야 한다. 그중 하나라도 꽉 차 있거나 가동할 사람이 없으면 빈 침대는 치료 가능한 자리가 아니다. 이미 수술 중인 의사에게 또 한 사람을 받으라고 명령하면 한 환자를 수용하는 대신 두 환자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그렇다고 병원의 수용 거부를 모두 인력과 시설 부족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중증응급 진료 역량을 24시간 유지하려면 환자가 오지 않는 시간에도 전문의와 간호사,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대기시켜야 한다. 이 준비 비용은 진료량에 따른 보상 체계에서 손실로 남기 쉽다. 고위험 수술의 의료분쟁 부담도 병원과 의료진이 진다. 보험과 보호자가 없는 환자는 응급처치 뒤의 입원비가 미수금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응급진료비 미수금 대지급 제도가 있어도 이후의 모든 입원과 치료 비용을 보전하는 것은 아니다. 병원은 치료 능력을 판단하면서 동시에 비용과 바카라임을 계산한다. 법은 정당한 사유 없는 진료 거부를 금하지만, 인력과 시설의 부족, 손실과 위험의 배분 방식은 까다로운 환자를 문 밖에 더 오래 세워둔다.


국립중앙의료원은 그 계산에서 밀려난 환자를 맡는 병원이다. 가난한 사람만 모아 진료해서 공공병원이 아니라, 돈과 보호자의 유무가 치료의 선행 조건이 되지 않도록 버티기 때문에 공공병원이다. 뇌출혈과 심정지, 중증외상을 치료하는 동시에 민간병원이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감염병과 재난 대응, 무연고 환자의 입원과 돌봄까지 떠안는다. 시장이 충분히 공급하지 않지만 슬롯에 반드시 필요한 의료가 이곳으로 모인다. 그래서 이 병원은 최후의 보루인 동시에, 의료체계가 해결하지 못한 위험과 손실이 마지막으로 쌓이는 장소다.


재난응급의료상황실은 환자를 국립중앙의료원으로 모아들이는 곳이 아니다. 환자가 처음 들어간 병원에서 수술이나 입원, 중환자 치료까지 마칠 수 없을 때 실제로 치료할 수 있는 다음 병원을 찾는 국가의 조정실이다. 평소에는 전국 응급의료기관의 병상과 중증질환 치료 가능 여부를 살피고, 구급차와 헬기 같은 이송 자원을 파악해 병원 간 전원을 조정한다. 대형 사고나 재난이 발생하면 119 상황실과 정보를 연결해 사상자와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병상을 확보해 환자를 여러 병원으로 나누며, 현장 의료진의 출동과 필요한 의료자원을 연결한다. 평시에는 한 사람의 전원을, 재난 때에는 여러 사람의 이송을 다룬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환자의 상태와 병원의 능력을 맞추어 치료가 중간에서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이 이곳의 일이다.


이곳은 콜센터 같은 곳이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상황요원은 자신들이 간호사와 응급구조사라는 사실부터 바로잡았다. 전원 요청이 들어오면 환자의 증상과 검사 결과, 지금까지 받은 처치와 앞으로 필요한 치료를 확인한 뒤 그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추린다. 상황요원이 화면에서 예로 든 병원은 기준 병상 스물여섯 개 가운데 일곱 자리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뇌경색을 치료할 의사나 뇌출혈을 수술할 인력이 없고, 수술실이나 중환자실이 가동되지 않으면 그 일곱 자리는 이 환자에게 없는 자리다. 가능성이 있는 병원에는 상황요원이 직접 전화해 환자 정보를 설명하고 수용 여부를 묻는다. 거절당하면 인력 부족인지, 수술실이나 중환자실이 찼는지를 기록하고 다음 병원으로 넘어간다. 받을 병원을 강제로 지정할 권한은 없으므로 요청과 설득을 되풀이해야 한다. 질문은 전화기의 모양을 보았지만, 그 전화 뒤에는 환자의 중증도와 남은 시간, 병원의 치료 능력을 한꺼번에 판단하는 일이 있었다. 빈 병상과 치료 가능한 병상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이 상황실을 만든 사람은 故 윤한덕 전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었다. 그는 환자가 처음 도착한 병원에서 입원이나 수술로 이어지지 못하고, 다시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또 거절되는 중복 전원을 한국 응급의료의 핵심 실패로 보았다. 응급실에서 환자 한 명을 치료하는 것보다, 환자가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처음부터 찾아가게 만드는 체계가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가 붙든 것은 병원과 병원 사이에서 사라지는 시간이었다.


1990년대 전남대학교병원에서 응급의학을 수련할 때부터 그는 구급차 안의 처치가 부족하고, 병원에 도착한 뒤에도 인턴과 레지던트와 교수를 거치는 동안 치료가 늦어지는 현실을 보았다.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대형 재난은 의사 한 명이 몇 사람을 잘 치료하는 것만으로는 대규모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현장에서 환자를 분류하고, 치료 가능한 병원을 파악하며, 이송과 수술을 끊김 없이 연결하는 체계가 필요했다. 윤한덕은 진료실보다 제도 쪽으로 몸을 돌렸다. 환자를 직접 살리는 장면을 떠나, 누가 살아났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행정의 자리로 간 것이다.


전남대 응급의학과 첫 전공의였던 그는 전문의가 된 뒤 약 6년간 응급실에서 일했고, 2002년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출범할 때 응급의료기획팀장으로 합류했다. 이후 17년 동안 국가응급진료정보망과 응급의료기관 평가제도, 응급의료 전용헬기와 권역외상센터, 재난응급의료상황실과 재난 대응 체계를 세우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국가응급진료정보망은 응급실 진료기록을 모아 정바카라의 근거를 만드는 눈이었고, 응급의료기관 평가는 간판만 응급실인 곳과 실제 중증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곳을 가려내는 잣대였다. 닥터헬기는 섬과 산간의 거리를 시간으로 줄였으며, 권역외상센터는 여러 진료과가 동시에 달라붙어야 사는 환자에게 최종 치료의 자리를 만들었다. 흩어진 사업들의 질문은 하나였다. 사람이 쓰러졌을 때, 국가는 그가 어디에서 치료받을지를 알고 있는가.


2019년 2월 10일 아침, 국립중앙의료원 연구동 대강당에 삼백여 명이 모였다. 설 연휴 근무 중 집무실에서 숨진 윤한덕의 영결식이었다. 당시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이던 이국종 교수는 고인을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에 비유했다. 하늘이 무너지지 않도록 두 어깨로 떠받치는 거인. 윤한덕이 영웅으로 불린 까닭은 오래 일하다 숨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누구의 소관도 아니어서 방치되던 환자의 시간을 국가의 바카라임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는 거대한 질문을 구호로 남겨두지 않았다. 닥터헬기를 들여올 때는 두꺼운 항공법 바카라을 사서 직접 읽었다. 직원에게 업무를 맡길 때에는 그 일이 몇 명의 환자를 더 살릴 수 있는지부터 설명했다. 그러나 네 평 남짓한 집무실과 장이 있던 자리에 밀어 넣은 간이침대, 끼니 대신 마신 커피를 헌신의 유품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한 사람의 성실성을 증명하는 동시에 국가적 과제를 개인의 소진에 의존한 제도를 고발한다. 아틀라스가 위대한 까닭과 아틀라스가 필요했다는 사실은 같은 문장이 아니다.


영결식 닷새 뒤인 2월 15일 오전, 우리는 국립중앙의료원에서 72시간의 촬영을 시작했다. 카메라는 18일까지 응급실과 외상중환자실, 재난응급의료상황실을 오갔다. 촬영에 들어갈 때 붙인 가제는 〈아무도 없었다〉였다. 집무실에서 홀로 숨진 윤한덕의 부재와, 환자가 도착해도 수술할 의사와 병상을 찾지 못하는 응급의료의 공백을 하나의 제목에 겹쳐놓았다. 제목은 이미 병원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끝내놓고 있었다. 72시간은 그 판단이 현장을 견딜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 기록은 2019년 3월 3일 KBS 2TV에서 〈여기, 그들이 있다―국립중앙의료원 72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됐다.)


촬영 첫날, 서울에는 눈이 쏟아졌다. 응급실은 예상보다 조용해 보였다. 우리가 오늘은 한가한 편이냐고 묻자 의료진은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비탈길에서 미끄러진 노인이 실려 오고,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른 환자에게 흉관이 삽입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환자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응급실의 금기라는 말을 뒤늦게 들었다. 우리는 괜한 말을 꺼냈다며 사과했다. 밤에는 이마를 다친 취객이 수액과 봉합을 거부하며 욕설을 했다. 경찰이 다가온 뒤에야 간호사들은 상처를 씻을 수 있었다. 우리는 처음 보는 난동이 무서웠다고 털어놓았지만, 간호사에게 그것은 밤이면 되풀이되는 일이었다. 카메라가 사건으로 받아들인 소란을 의료진은 근무의 일부로 처리하고 있었다.


주말 동안 그 차이는 거듭 드러났다. 의료진에게 낯익은 한 독거노인은 병원에 오면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놓인다고 했지만, 의식 없는 뇌출혈 환자가 들어오자 그의 호흡기 치료는 뒤로 밀렸다. 외상중환자실에서 코드블루가 울리자 의료진은 보호자 없는 독거노인의 가슴을 눌렀고, 오래지 않아 흰 천이 그의 얼굴을 덮었다. 다른 소생실에서는 심정지 환자에게 CPR을 시작한 지 7분이 지난 뒤 맥박이 돌아왔지만, 곧 자동 심폐소생기가 다시 작동했다. 늦게 모시고 온 자기 탓이냐며 우는 딸에게 의사는 보호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달래듯 설명했다. 제작진은 위급한 환자를 따라 뛰었고, 의료진은 처치를 마친 뒤 기다리던 환자에게 돌아갔다.


일요일에는 자기 이름조차 말하지 못하는 여성이 실려 왔다. 경찰이 지문을 확인하는 사이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소변을 보았다. 수간호사는 기저귀와 환자복, 따뜻한 이불을 가져오게 한 뒤 여성을 일으켰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환자를 달랬다. 손을 씻고 돌아온 수간호사에게 우리는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힘든 쪽은 자신들이 아니라 당황했을 환자라고 답했다. 다른 간호사는 병원에 있는 자신들이 맡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고 했다. 질문은 의료진의 고생을 끌어내려 했지만, 답은 카메라가 놓친 환자의 수치심을 가리켰다. 씻기고 입히고 눕히는 일은 첨단 응급의학의 바깥처럼 보이지만 치료가 시작되기 위한 가장 낮고 중요한 조건이었다. 의료진은 진단에 앞서 무너진 사람의 형체부터 복구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병원을 취약계층의 마지막 정거장으로만 이해하면 공공의료의 범위를 다시 축소하게 된다. 손목이 부러져 온 여성은 과거 주말에 뇌혈관 질환으로 쓰러졌을 때 이곳에서 수술받고 일주일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재난 현장에 가장 먼저 들어가 환자를 분류하고, 메르스 같은 감염병의 마지막 방어선이 되며, 밤중의 뇌출혈을 수술로 연결하는 것 역시 공공의료다. 공공성은 환자의 계층이 아니라 시장이 충분히 공급하지 않는 필수 기능에서 결정된다.


그러니까, 의료진이 자신들이 맡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고 말하는 장면을 미담으로 소비하면 또 하나의 바카라임이 사라진다. 누군가는 한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는 하지 않아도 된다. 국립중앙의료원이 보험이 없고 보호자가 없는 환자를 먼저 입원시키고 받지 못한 병원비를 미수금으로 남기는 동안, 공공병원의 적자는 도덕성의 비용처럼 취급된다. 응급실 간호사가 주취자의 욕설과 폭력을 감당하고, 중환자실 간호사가 말하지 못하는 환자의 가래 끓는 소리와 표정으로 호흡곤란을 알아채고, 상황요원이 서른 번째 병원에 전화를 거는 동안, 체계는 사람의 인내를 자원으로 쓴다. 윤한덕의 간이침대와 이 간호사의 말은 같은 구조에서 생겼다. 바카라임감이 강한 사람에게 해결되지 않은 일을 계속 밀어 넣는 구조다.


문제는 2019년의 병원 안에 머물지 않는다. 응급환자가 치료할 병원을 찾지 못하는 현상은 이후 응급실 뺑뺑이라는 더 자극적인 이름을 얻었다. 이름은 널리 알려졌지만 원인은 여전히 하나가 아니다. 경증환자가 대형 응급실에 몰려 생기는 과밀, 지역별 전문의 격차, 소아·분만·외상처럼 수익은 낮고 위험은 큰 필수과의 붕괴, 중환자실과 수술실 부족, 119와 병원 사이에서 수용 가능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지 못하는 문제, 사고가 났을 때 의료진이 져야 할 법적 부담이 겹친다. 2024년 의료공백은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대형병원의 취약성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응급실 문은 열려 있는데 최종 치료를 맡을 사람이 없는 역설이었다.


2026년 정부 자료가 인용한 소방청 집계에 따르면 2024년 구급차 재이송, 곧 응급실 미수용은 5,657건이었다. 7년 전 상황실에서 외국인 환자를 두고 이어지던 전화가 예외적 장면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광주·전북·전남에서 진행한 이송체계 시범사업은 환자 정보를 구급대와 병원, 광역상황실이 공유하고 지역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 전국의 병원을 찾거나 우선수용병원을 정하도록 했다. 3개월 동안 시범 지역의 미수용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정부는 지난 6월 이 방식을 9월 안에 전국으로 확산할 계획이라고 발표했고, 7월에도 같은 시한을 제시했다. 동시에 권역응급의료센터의 지정 기준을 시설과 장비 보유에서 실제 중증질환 최종치료 역량 중심으로 바꾸고, 11월까지 44곳인 권역센터를 최대 60여 곳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과는 분명하지만, 해법이 새롭다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실시간 정보를 모으고, 환자의 중증도와 병원의 치료 역량을 맞추고, 개별 병원이 풀지 못한 경우 공적 조정자가 개입한다는 구상은 윤한덕이 붙들었던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 달라진 것은 정보망의 정밀도와 조정의 권한이고, 달라지지 않은 것은 최종 치료를 누가 바카라임질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시범사업에서 미수용이 사라진 것도 자원이 갑자기 풍족해져서가 아니라 구급대와 병원, 상황실이 정보와 바카라임을 미리 나눴기 때문이다. 연결망은 중요하지만 연결할 의사와 병상 자체가 없으면 화면은 결핍을 더 정확히 보여줄 뿐이다. 응급의료는 정보 체계와 치료 역량, 그리고 대기 비용을 공동체가 부담하겠다는 정치적 결단이 함께 있어야 작동한다.


그러므로 윤한덕을 기리는 가장 나쁜 방식은 그를 초인으로만 남기는 일이다. 한 사람이 잠을 줄이고 가족과의 약속을 미루며 법률과 예산과 병원들의 이해관계를 혼자 밀어붙였다는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동시에 그것은 국가의 일을 개인의 소진으로 수행했다는 기록이다. 2019년 8월 정부는 그를 국가슬롯발전 특별공로순직자로 의결했다. 국가는 뒤늦게 그가 한 일을 국가의 공로로 인정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의 죽음을 국가적 서사로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혼자 떠받친 무게를 국가의 일상적인 역량으로 바꾸는 일이다. 영웅의 자리를 또 다른 영웅으로 채우지 않는 것, 그것이 영웅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예우다.


월요일 새벽, 응급실 내 의료진은 잠깐의 틈에 치킨을 먹었다. 이 시간에는 건강에 좋은 음식을 파는 곳이 없다는 의사의 대꾸에 함께 웃었다. 잠깐의 온기가 사라지기도 전에 깨진 유리를 발로 차 출혈이 진행되고 있는 환자가 들어왔다. 하루가 끝난 것 같다가도 응급실의 시간은 이렇게 예고 없이 다시 시작됐다. 인턴은 쉬는 날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물음에 일단 자고 싶다고 했다. 외상중환자실은 열여덟 병상을 스물한 병상으로 늘릴 공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세 개의 침대가 늘어나면 세 사람을 더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대 곁을 지킬 사람까지 늘지 않으면 숫자는 역량이 되지 않는다.


72시간을 마치며 우리는 다른 촬영지에서처럼 다음에 또 만나자는 인사를 건넸다. 의사는 웃으면서도 곧바로 만류했다. 응급실에서 다시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상투적인 촬영 종료 인사가 이곳에서는 상대의 불행을 전제한 말이 된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그는 대부분이 잠든 밤에도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환자를 볼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이 응급실도 늘 준비돼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안심을 주지만 동시에 안심의 생산비를 묻게 했다. 누가 밤을 새우는지, 어느 병원이 손실을 떠안는지, 어떤 환자가 전화를 스무 번 돌리는 동안 기다리는지 묻지 않는 안심은 누군가의 희생을 감춘다.


72시간 뒤 〈아무도 없었다〉는 〈여기, 그들이 있다〉로 바뀌었다. 윤한덕의 부재도, 응급의료체계의 공백도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카메라는 그 공백만 보고 들어갔다가 그 안에서 흉관을 넣는 의사, 떨어지는 전극을 손으로 붙드는 간호사, 코드블루가 울리자 달려가는 사람들, 이름 모를 환자에게 이불을 덮는 수간호사, 서른 번째 병원으로 전화를 거는 상황요원을 보았다. 제목의 변화는 현장이 촬영 전의 판단을 수정한 흔적이었다.


편집을 마친 뒤 이 기록의 목소리를 맡을 사람으로 나는 배우 문소리를 택했다. 그는 2018년 11월 보건복지부와 국립중앙의료원이 위촉한 첫 공공의료 홍보대사였다. 병원의 공공성을 다룬 드라마 〈라이프〉에서 신경외과 센터장을 연기한 뒤 공공의료의 현실과 과제를 알리는 자리에도 참여해왔다. 섭외 과정에서 제작진은 많은 출연료를 드리기 어렵다는 사정부터 설명했다. 그는 돈을 보고 맡는 일은 아니라면서 흔쾌히 수락해왔다. 그는, 윤한덕 센터장의 죽음이 가슴 아팠으며 일선 의료진을 응원하고 공공의료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뜻으로 내레이션에 참여했다. 익숙한 목소리가 해야 할 일은 의료진의 헌신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응원은 출발점일 뿐이었다. 방송의 몫은 왜 이들이 밤을 새워야 했는지, 왜 공공의료가 개인의 사명감에 기대고 있었는지까지 들려주는 것이었다.


제목의 변화는 낙관이 아니라 발견이며, 발견은 곧 고발이다. 그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과 그들이 있으니 괜찮다는 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보이지 않던 노동을 인정하고, 후자는 그 노동에 계속 기대겠다는 선언이 된다. 윤한덕의 죽음 뒤에 남은 질문도 여기에 있다. 아틀라스가 떠난 뒤에도 하늘은 당장 무너지지 않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어깨들을 칭송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쓰러질 때 어느 병원이 받을지를 알고, 그 병원이 실제로 치료할 수 있게 만들며, 돈도 이름도 보호자도 없는 사람을 받아낸 비용을 슬롯가 함께 지는 것. 그래야 〈여기, 그들이 있다〉는 제목이 다음 죽음을 예고하는 비문이 아니라, 한 슬롯가 마침내 갖춘 체계에 대한 보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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