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상속되지 않지만

하영과 김희성, 알게 된 이후의 삶

byMinseung Kang

2024년 11월, 나는 〈미스터 션샤인〉의 김희성을 생각하며 이렇게 썼다.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기 위해서 나는 조부와 아버지를, 그들의 유산을 거역할 수 없다. 그러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것 중에는 그이처럼 무용해서 아름다운 것이 있다. 패배가 선명히도 보이는 전장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나라의 병탄이 확실함에도 치욕적인 역사를 하루라도 늦추자고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는 저들의 무모함을 나는 감히 이해도 할 수 없다. 이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달, 별 그리고 꽃 같은 저들을 사랑해서 나는, 구시대적인 유산을 차마 거스르지 못하는 스스로를 벌하고자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을 스스로 갖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나는 하고자 한다. 그저 아름답고 무용한 것을 사랑하고자 한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시 읽어보면 김희성의 비극은 선대의 죄를 대신 짊어졌다는 데 있지 않다. 그 죄가 낳은 결과가 이미 자신을 너무 많이 이루고 있다는 데 있다. 그는 친일 행위로 부와 신분을 쌓은 조부와 아버지가 마련한 세계에서 태어났다. 그 안에서 잘 먹고 잘 배웠으며,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와 아름답고 무용한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취향을 얻었다. 자신이 거부하고 싶은 집안의 흔적은 재산과 이름에만 남아 있지 않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말투, 자신감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도 들어 있었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 그것을 받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이미 먹은 것은 몸이 되었고 이미 배운 것은 생각이 되었으며, 이미 누린 것은 삶의 일부가 되었다. 물려받은 재산은 내놓을 수 있고 집안의 이름은 버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재산과 이름을 통해 형성된 사람 자체를 분리해 폐기할 수는 없다. 어떤 유산은 벗어놓을 수 있는 외투가 아니라 피부에 가깝다.


그래서 처음의 김희성이 선택한 것은 청산보다 제한이었다. 명망 있는 집안의 후계자라는 지위로 더 높은 자리를 얻지 않고, 가문의 힘이 자신의 욕망을 손쉽게 완성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가장 사랑하는 애신에게도 정혼자의 권리를 끝까지 행사하지 않는다. 이미 받은 것으로 더 받는 일을 멈추는 것이 선대와 결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줄이는 이상하고 귀족적인 자기징벌이었다.


배우 하영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그 문장을 다시 떠올렸다. 2026년 8월 7일, 하영은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자신의 집안을 ‘4대째 의사 집안’으로 소개했다. 증조부가 일본에서 서양의학을 배워와 한양에서 양의원을 열고 고종을 진료했으며, 그 뒤로 조부와 부모, 언니까지 의사의 길을 이어갔다는 이야기였다. 방송은 이를 드물고 자랑스러운 의료가문의 이력으로 받아냈다. 대대로 의사를 배출한 집안에서 혼자 배우가 된 하영의 선택은 오히려 개성 있는 이탈처럼 보였다.


방송 뒤 증조부가 근대 의사 안상호라는 사실과 그의 일제강점기 행적이 알려졌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안상호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추도행사의 준비위원으로 참여했고, 경성부 협의회원과 경성종로금융조합장을 지냈으며 대정친목회와 동민회 같은 관변단체에서도 활동했다. 안상호는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전의 선정 기준에 미달했다는 사실과 친일·부일 협력으로 평가할 행적이 없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명단은 판단의 기준이지 명단 밖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는 장부가 아니다.


몰랐을까. 그 점은 정말 궁금하다.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증조부가 그토록 드물고 이름난 양의사였다면 그의 삶이 집안에서 어떤 형태로든 전해졌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다. 다만 후손에게 전해진 것이 그의 삶 전체였는지, 자랑스러운 부분만 남기고 불편한 행적은 지운 이야기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영 역시 어릴 때부터 대대로 의사를 배출한 집안이라는 정도의 말을 들었고, 그것을 가족의 내력쯤으로 생각해 방송에서 가볍게 언급했을 수 있다. 그가 증조부의 구체적인 친일 행적까지 알고 있었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의심만으로 그 빈자리를 채워서는 안 된다.


다만 이 의료 명문가의 이야기가 방송을 위해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영의 아버지 안병문은 2002년 중앙일보에 큰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쓰면서 자기 집안을 “몇 안 되는 의료 명문”이라고 소개했다. 증조부와 조부의 의사 경력을 설명하고 자신도 선대의 덕분에 좋은 교육을 받아 가업을 이을 수 있었다는 취지로 썼다. 이 글이 하영에게 전달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세대 전부터 같은 계보가 가족 내부에서 자긍심의 언어로 서술되고 있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가족사는 대개 그렇게 편집된다. 누구는 어느 학교를 나왔고 누구는 어떤 자리에 올랐으며, 집안에서 처음 무엇을 해낸 사람은 누구였다는 이야기가 남는다.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어떤 권력과 관계를 맺었고 무엇을 외면했는지는 같은 비중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후손이 물려받는 것은 한 사람의 생애 전체라기보다 가족이 기억하기로 선택한 장면들일 수 있다. 그러므로 하영이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와 함께 한 집안이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지우며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왔는지도 살펴야 한다.


이 사실만으로 하영에게 증조부의 바카라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 그는 증조부를 선택하지 않았고 백여 년 전의 행위에 가담하지도 않았다. 배우로서 이룬 성취가 집안의 경제적·문화적 조건에 얼마나 힘입었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그의 능력과 노동을 모두 ‘친일의 과실’로 환원하면 역사 비평은 연좌제로 변한다. 선대의 행적과 후손에게 실제로 이어진 이익 사이에는 별도의 입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영이 방송에서 꺼낸 것은 자신의 연기 경력만이 아니었다. 그는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계보를 현재의 자신을 설명하는 이야기로 사용했다. 조상의 잘못을 이유로 후손을 공격하는 일과, 후손이 조상의 명망을 자신의 배경으로 불러왔을 때 그 명망의 기원을 묻는 일은 다르다. 전자는 혈통에 바카라임을 묻지만 후자는 자신이 선택한 자기서사에 질문한다. 좋은 가문이라는 이야기를 현재의 나에게 연결했다면, 그 가문을 만든 불편한 역사만 완전히 남의 것으로 밀어낼 수 있는지는 물을 수 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교육받을 가능성과 직업에 관한 정보, 사람을 만나는 방식과 문화적 습관, 실패했을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안전망도 내려온다. 무엇보다 ‘나는 어떤 집안의 사람인가’라고 자신을 이해하는 감각이 전해진다. 누군가는 전문직을 멀고 낯선 세계로 여기며 자라고, 누군가는 가족의 일상으로 접한다. 두 사람이 같은 시험장에 들어갔다고 출발점까지 같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조건을 인정한다고 개인의 노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영의 삶에 가족의 배경이 실제로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여러 세대에 걸친 전문직의 계보가 공개적인 자기소개의 일부가 되었다면, 그 계보는 낡은 족보가 아니라 현재에도 작동하는 문화적 자산이다. 좋은 부분은 ‘우리 집안’의 유산으로 취하고 불편한 부분만 ‘나와 무관한 조상의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죄는 상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명망만 골라서 상속받을 수도 없다.


친일을 말할 때도 이런 구분이 필요하다. 친일은 긍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일제강점기를 독립운동가와 매국노만 존재했던 시대로 그릴 수도 없다. 그 사이에는 저항하지도 적극적으로 협력하지도 못한 채 일상을 살아간 다수가 있었다. 해방이 올지 알 수 없던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우리가 그때 나라면 당연히 독립운동을 했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것 역시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의 오만일 수 있다.


나는 그 시대에 살았다면 끝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고문과 가난, 가족의 죽음과 실패를 감수하면서도 저항했을 것이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아마 버티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고백은 친일을 용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독립운동가의 삶을 현재의 내가 도덕적 우월감을 확인하는 재료로 사용하지 않기 위한 절제다.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한다고 모든 협력을 생존이라는 말로 덮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권력의 요구를 피하지 못해 수동적으로 협조한 사람과 지위와 이익을 얻기 위해 능동적으로 제국의 일부가 된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어떤 선택지가 있었고 거부에는 어떤 대가가 따랐으며 협력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그래야 친일이 몇몇 악인의 성품이 아니라 제도와 욕망이 결합한 역사적 행위로 보인다.


친일이 어려운 문제로 남은 것은 그 결과가 광복과 함께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민지 권력과 협력해 얻은 지위와 재산, 교육과 슬롯적 관계는 해방 뒤에도 이어질 수 있었다. 반대로 저항 때문에 잃은 재산과 교육의 기회, 가족의 생계도 광복만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한쪽의 이익과 다른 쪽의 손실이 후대의 삶으로 건너왔다면 현재의 격차를 개인의 능력과 운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런 구조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특정 후손이 어떤 이익을 물려받았는지는 구별해야 한다. 구조에 관한 설명이 개인에 관한 증거를 대신할 수는 없다.


〈파묘〉는 이 문제를 간명한 이미지로 보여준다. 무덤을 열었는데 시신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누가 그곳에 묘를 썼고 그 선택이 어떤 역사와 연결돼 있으며, 그것이 후손의 삶에 무엇을 남겼는지가 함께 드러난다. 묻어두었다고 생각한 과거가 현재의 집과 재산, 가족의 질서를 흔든다. 혈연을 따라 죄가 상속되지는 않지만, 죄가 만들어놓은 조건은 후대의 삶으로 건너올 수 있다.


현실에서 무덤을 연다는 것은 후손의 사생활을 파헤치거나 조상의 죄를 대신 갚게 하는 일이 아니어야 한다. 누가 무엇을 축적했고 그것이 해방 뒤 어떤 제도와 관계를 통해 이어졌는지 조사하는 일이어야 한다. 분노는 무덤을 열게 할 수 있지만 그 뒤의 질서를 설계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단죄 이후에는 기록과 공개, 필요한 경우 법적 환원이 뒤따라야 한다.


논란이 불거진 직후 하영의 소속사는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친일 행적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관련 기록이 확인되자 하루 뒤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검증 없이 성급하게 답변한 점을 사과했다. 이후 하영도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족사를 가볍게 언급한 일을 반성하고, 가족의 역사와 그 시대를 제대로 들여다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과로 증조부의 과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방송된 말도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문제의 시점은 달라진다. 과거를 몰랐던 사람에게 무엇을 바카라임지라고 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이제 알게 된 사람이 그 사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의 문제로 옮겨간다. 모르고 받은 것과 알고도 계속 받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모르고 자신의 것으로 여긴 것과 그 기원을 알게 된 뒤에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자신의 것으로 호명하는 일 역시 다르다.


그래서 하영의 사과문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사과보다 ‘실천’일 것이다. 이제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무엇을 다르게 할 것인가라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천의 내용을 외부에서 정답처럼 정해줄 수는 없다. 독립운동가 후손을 돕거나 역사 관련 단체를 후원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잊힌 역사를 알릴 수 있다. 모두 의미 있는 일이지만 얼마를 내놓고 몇 번 활동해야 충분한 반성이 되는지 계산하기 시작하면 실천은 비판을 통과하기 위해 납부하는 비용이 된다.


반대편에는 자기징벌이 있다. 재산을 포기하고 가문의 이름을 부정하며 자신의 성공까지 줄여야 진정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요구다. 그러나 하영에게 배우 일을 그만두거나 앞으로 성공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이후의 성취가 그의 재능과 노동에서 비롯된다면 그것은 그의 것이다. 얼마나 불행해져야 반성이 진짜인지 계산하는 순간 선대의 죄를 비판하다가 후손의 고통을 요구하는 도덕주의에 빠진다. 과거와 관계를 맺는 방법이 반드시 자기파괴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여기서 김희성에 대해 썼던 문장을 고쳐 읽게 된다. 나는 당시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러나 희성은 끝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 아니다. 처음에는 선대로부터 받은 힘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더 움직이지 않도록 스스로를 제한했다. 그러나 자신이 행복해지지 않는다고 선대 때문에 고통받은 사람들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 삶을 줄이는 일은 집안에 대한 항의일 수 있지만 그 집안이 만든 세계를 바꾸지는 못한다.


희성은 뒤로 갈수록 신문을 만들고 일본이 감추려는 것을 기록한다. 자신의 돈과 글, 슬롯적 지위를 의병과 그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다. 선대의 명망을 이어받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대신 그 명망이 지켜주던 세계의 반대편을 기록하는 데 자신을 놓는다. 선대로부터 받은 자원을 없애지는 못했지만 그 자원이 흘러가는 방향은 바꿀 수 있었다. 물려받은 삶을 버리는 대신 그 삶의 용도를 바꾼 것이다.


그 변화는 자기징벌에서 자기구원으로 나아간 과정이라기보다, 포기밖에 할 줄 몰랐던 사람이 자신이 가진 것을 사용할 방법을 발견한 과정에 가깝다. 과거를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되 그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이유로 삼지 않는다. 이미 자신을 만든 토대를 지울 수 없다면, 적어도 그 토대가 이전과 같은 욕망을 계속 생산하지 않게 한다.


김희성의 선택을 현실의 하영에게 그대로 요구할 수는 없다. 특정한 역사운동에 참여하거나 선대와 정반대의 삶을 살아야 할 의무도 없다. 김희성은 하나의 답이지 정답이 아니다. 다만 그의 변화는 자신을 만든 조건을 없애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변화는 거창한 행동보다 앞으로 가문을 어떤 언어로 말하는지에서 먼저 드러날 수 있다. 선대의 전문적 성취와 협력 행적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지, 자신의 노력과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명망의 밝은 부분만 자기 삶의 후광으로 사용하는 일을 멈출 수 있는지. 무엇을 내놓을 것인가와 함께 무엇을 더 이상 취하지 않을 것인가도 실천의 내용이 된다.


슬롯가 해야 할 일은 따로 남는다. 특정 배우의 사과와 성찰을 기다리는 동안 권력과 자산의 계승을 밝히는 일이 멈춰서는 안 된다. 문서를 조사하고 축적과 승계의 경로를 공개하며, 부당한 재산이 확인되면 법과 절차에 따라 다뤄야 한다. 친일 청산을 개인의 도덕성 심사로 축소할수록 국가는 해야 할 일을 피하고 모든 부담은 눈에 잘 띄는 후손 한 사람에게 몰린다.


하영에게 국가가 실패한 친일 청산을 대신 완수하라고 할 수는 없다. 그가 감당할 몫은 훨씬 작고 구체적이다. 자신이 자랑스럽게 꺼낸 가족사의 다른 얼굴을 알게 된 뒤에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명망을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선대와 무관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불가능한 작업보다, 알게 된 사실을 자신의 설명에서 다시 지우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 하영의 사과가 충분했는지 판정하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가 가족사를 공적으로 꺼냈고, 그 이면이 드러난 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며 앞으로 제대로 들여다보겠다고 말했다는 것까지다. 그다음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사과문 몇 줄의 강도를 재는 것보다 그 말을 한 뒤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보는 편이 정확하다.


김희성은 선대로부터 받은 삶을 버리지 못했다. 대신 그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하영의 선택은 그와 달라도 된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닮은 행동이 아니라 달라진 관계다. 한때 자신을 자랑스럽게 설명해주던 가족사를, 그 이면을 알게 된 뒤에는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할 것인가. 선대의 죄는 그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죄가 남긴 유산을 알게 된 이후, 그 유산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는 비로소 그의 몫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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