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의 섬에서 운이 좋다는 말

My Cities 1. Taipei / 2019.12.22–29

byMinseung Kang

2019년 12월, 타이완의 총통 선거를 취재하기 위해 타이베이로 갔다. 반년 넘게 이어진 홍콩 시위의 장면들이 바다 건너 타이완의 선거에까지 도착하고 있었다. 민주진보당의 차이잉원은 중국의 ‘일국양제’를 거부하며 타이완의 주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했고, 국민당의 한궈위는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는 ‘92공식’을 바탕으로 중국과의 교류를 회복하겠다고 했다. 양강 후보의 대중국 정바카라 뒤에서 실제로 표를 선택하는 유권자들, 특히 한 번의 투표에 앞으로의 삶을 걸어야 할 청년들을 만나고 싶었다.


출국 전 타이완에 관해 조사하다가 ‘귀도(鬼島·구이다오)’라는 말을 발견했다. 귀신의 섬, 혹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섬이라는 뜻으로 젊은 세대가 자신이 사는 슬롯를 자조할 때 쓰는 말이었다. 한국의 ‘헬조선’과 비슷한 말이라고 했다. 중국의 위협 앞에서 타이완의 정체성을 지키는 문제가 선거의 전면에 놓여 있었지만, 청년들이 자기 나라를 귀신의 섬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해협 건너편에만 있지 않았다. 낮은 임금과 높은 집값, 불안정한 일자리처럼 매일의 생활을 압박하는 문제들이 섬 안에도 있었다.


12월 22일 타이베이에 도착했고, 이튿날 아침 북문 부근에서 첫 촬영을 시작했다. 선거가 목전임에도 수도 한복판은 의외로 한산했다. 건물을 뒤덮은 후보의 얼굴도, 확성기 소리로 거리를 밀고 다니는 유세차량도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선거의 열기를 거리에서 찾기 어렵다면 표를 행사할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청년들이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지만 묻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 어떤 일을 하고, 한 달에 얼마를 벌며, 그 돈으로 어떤 집에서 사는지를 보아야 했다. 정치적 선택은 이념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견뎌온 생활의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현지 코디네이터가 모는 오토바이를 타고 타이베이의 시장과 골목을 오가며 촬영했다. 신호가 바뀔 때마다 교차로 앞에 모여 있던 수십 대의 스쿠터가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자동차 사이를 비집고 달리는 작은 차체들은 타이베이의 풍경인 동시에 도시의 노동 방식이었다. 사무실과 식당, 상점과 주택이 촘촘하게 뒤섞인 도시에서는 사람이 직접 물건을 들고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방식이 가장 빠르고 값쌌다. 도시가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위험을 배달노동자의 몸이 떠맡고 있었다.


그날 만난 가오훙이는 스물세 살이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졸업한 뒤에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거쳐 음식배달을 전업으로 삼았다. 점심시간에도 그는 밥을 먹지 않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식사를 주문하는 시간이 그에게는 가장 바쁜 노동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주문이 뜸해지면 그때 먹겠다고 했다. 누군가의 따뜻한 점심이 제시간에 도착하려면 그것을 운반하는 사람의 점심은 뒤로 밀려야 했다.


그는 대학에서 배운 경영학과 지금 하는 일 사이에 별다른 관련이 없다고 했다. 경영학이나 경제학, 회계학을 전공해도 슬롯에 나오면 전공을 살릴 직업을 얻기 어렵고, 학교 공부는 학력이 적힌 종이로만 남는다는 설명이었다. 대학은 더 나은 직업으로 가는 통로라고 배웠지만 졸업장은 그가 어디에서 일할지를 결정하지 못했다. 대신 오토바이를 얼마나 오래 타고 한 시간에 몇 건을 처리할 수 있는지가 그의 소득을 결정했다.


배달 한 건의 수수료는 70타이완달러(당시 약 2천800원)였고, 일정 건수를 넘기면 85타이완달러(약 3천400원)로 올라갔다. 함께 일하던 서른세 살 저우붜런은 요식업과 제조업, 택배업을 거쳐 배달 일을 시작했다. 하는 일에 비해 월급이 적어 직업을 옮겼다고 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면 한 달에 5만에서 6만 타이완달러(약 200만 원에서 240만 원)를 벌 수 있었다.


2018년 타이완 대졸자의 평균 초임은 약 2만8천 타이완달러(약 110만 원)였다. 같은 해 산업·서비스업 전체 노동자의 월평균 경상임금도 약 4만1천 타이완달러(약 164만 원)였다. 배달노동으로 버는 5만에서 6만 타이완달러는 평균보다 많은 소득이었지만, 거기에는 ‘매일 일한다면’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회사가 지급하는 월급은 적어도 노동자의 한 달을 단위로 삼지만 플랫폼은 한 건의 배달만을 계산했다. 쉬는 날과 아픈 날, 주문을 기다리는 시간은 소득에서 사라졌다. 더 벌 수 있다는 말은 더 많이 일할 자유가 있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일을 멈추는 순간 수입도 멈춘다는 뜻이었다.


‘22K 세대’라는 말도 이런 저임금의 역사에서 나왔다. 금융위기 뒤인 2009년 타이완 정부는 대졸자를 기업의 인턴으로 고용하면서 월 2만2천 타이완달러(당시 약 88만 원)를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청년실업을 줄이기 위한 대바카라이었지만 기업들이 2만2천 타이완달러를 대졸자 임금의 새로운 기준처럼 사용하면서 ‘22K’는 낮은 임금에 갇힌 세대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청년을 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숫자가 청년 노동의 가격표로 남은 셈이었다.


늦은 시각, 타이베이 완화구에 있는 가오훙이의 집을 찾아갔다. 문 안쪽은 좁기 전에 지저분했다. 성인 남성 한 사람이 서면 통로가 가득 찰 정도로 비좁은 복도에는 생활의 흔적과 건물의 노후가 구분되지 않은 채 엉겨 있었다. 벽의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졌고 그 아래로 금이 드러나 있었다. 그는 친구와 방을 하나씩 사용하고 주방과 화장실을 함께 썼다. 건너편에 시장이 있어 쥐와 바퀴벌레, 개미가 수시로 집 안까지 들어왔다. 청소를 조금 더 열심히 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지저분함이 아니었다. 건물의 위치와 구조, 감당할 수 있는 임대료가 해충과 함께 사는 생활까지 결정하고 있었다.


집 전체의 월세는 1만 타이완달러(약 40만 원)였고 친구와 절반씩 냈다. 그는 집을 옮기고 싶지만 타이베이 시내에서는 이 돈으로 그만한 방을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내가 이 정도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해야 하느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쥐와 바퀴벌레가 나오는 집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타이베이에서 월세 5천 타이완달러(약 20만 원)짜리 방을 구한 운 좋은 사람이 되는 순간이었다. 주거의 기준이 얼마나 낮아져야 불운을 행운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그의 대답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집을 본 뒤 타이베이 다안구의 한 아파트를 찾아갔다. 1985년에서 1990년 사이에 지어진 낡은 건물이었다. 외벽에는 세월의 얼룩이 남아 있었고 창문마다 쇠창살과 차양, 실외기가 제각각 붙어 있었다. 새롭지도 넓어 보이지도 않는 30.56평짜리 집 한 채의 가격은 2천399만 타이완달러(약 9억 6천만 원)였다. 대졸 초임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70년이 넘게 걸리는 금액이었다.


한 사람이 평생 일해도 살 수 없는 집 앞에서 몇 년만 더 노력하라고 말하는 것은 충고가 아니라 산수의 부정에 가까웠다. 월급은 한 달 단위로 들어오는데 집값은 한 사람의 노동 가능 기간을 넘어섰다. 오늘의 생계를 유지하느라 오늘을 모두 사용하면서도 미래에 가까워지지 않는다면 성실함은 희망이 아니라 반복이 된다. 집은 몸을 눕히는 장소이기 전에 자신의 노동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숫자가 되어 있었다.


가오훙이는 귀도가 무능한 정부에 이용당하면서도 벗어날 방법이 없는 현실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귀신의 섬에는 귀신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찾아 오토바이에 오르고, 점심을 미루면서 주문을 처리하는 평범한 청년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이 살지 못하는 섬이 아니라, 사람이 살기 위해 인간다운 생활의 조건을 하나씩 포기해야 하는 섬이었다.


그 모습은 한국에서 이미 본 적이 있었다. 2015년 한국의 청년들은 자신의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불렀다. 당시에는 국가의 무역 규모와 신용등급을 근거로 한국이 실제로는 살기 좋은 나라이며 청년들이 지나치게 비관한다고 나무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국가의 성적표가 좋다는 말은 취업하지 못한 사람의 이력서를 통과시켜주지 않았고, 경제가 성장했다는 설명은 월세를 내고 남은 통장 잔액을 늘려주지 않았다. 어느 대학에 들어갔는지가 첫 온라인 게임의 범위를 정하고, 첫 온라인 게임의 임금이 주거 수준을 결정하며, 소득과 주거가 연애와 결혼, 가족을 만들 가능성으로 이어졌다. 슬롯가 막아놓은 길의 바카라임은 그 길을 통과하지 못한 개인에게 돌아갔다.


12월 29일, 비가 내리는 타이베이를 떠났다. 일주일 동안 만난 사람들의 삶은 촬영한 영상과 인터뷰 녹취, 임금과 집값이 적힌 구성안으로 바뀌어 있었다. 취재자는 타인의 일상에 들어가기 위해 구체적인 삶을 요구하지만, 그곳을 나올 때에는 그것을 몇 개의 장면과 숫자로 압축한다. 카메라가 켜져 있는 동안 가오훙이의 방은 타이완 청년 주거문제의 사례였지만, 촬영이 끝난 뒤 그곳은 다시 그가 잠을 자고 다음 날의 배달을 준비해야 하는 집으로 돌아갔다.


2020년 1월 11일 치러진 선거에서 차이잉원은 817만여 표, 57.13퍼센트를 얻어 한궈위를 크게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타이완 유권자들은 홍콩에서 현실이 된 ‘일국양제’를 지켜본 뒤 중국과 거리를 두고 민주주의와 주권을 지키겠다는 쪽을 선택했다. 청년층의 적극적인 참여는 선거 결과를 만든 중요한 동력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정권의 방향을 결정한 한 표가 다음 날 가오훙이의 배달 수수료와 월세까지 바꾸어놓는 것은 아니었다. 선거는 국가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그 방향이 한 사람의 방과 식사와 휴식에 도착하려면 훨씬 더 긴 정치가 필요했다.


1월 18일, 일주일의 취재는 몇 분짜리 방송으로 끝났다. 내게는 촬영 마지막 날과 귀국 비행기, 프로그램이 끝나는 시각이 있었지만 가오훙이의 생활에는 그런 종료 시점이 없었다. 그는 화면이 꺼진 뒤에도 오토바이에 올라 다른 사람의 점심을 먼저 나르고, 쥐와 바퀴벌레가 나오는 방으로 돌아가면서 월세가 싸니 운이 좋다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나는 누가 총통이 될지를 취재하러 타이완에 갔지만, 돌아온 뒤 오래 남은 것은 누가 그 슬롯에서 운 좋은 사람으로 분류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헬조선과 귀도는 서로 다른 슬롯에서 생겨난 말이지만, 더 오래 공부하고 더 많이 일해도 안정된 삶을 얻지 못한 바카라임은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요구를 함께 품고 있었다. 지옥은 불길이 치솟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다운 생활의 조건이 하나씩 사치가 되고, 불운에 조금 익숙해진 사람이 자신의 처지를 행운이라고 부르게 되는 과정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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