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와 메마른 몸에 대한 오래된 갈망
2026년 8월 8일 오후 한 시께, 위고비를 처음 맞았다. 본격적으로 체중을 감량해보겠다는 거창한 뜻은 아니었다. 혈당과 체지방에 관한 걱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오래도록 나를 끌고 다닌 식욕을 별다른 고통 없이 잠잠하게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 마음에 들었다.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동생의 추천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위고비는 고통스러운 수행도 없이 해탈에 이를 수 있게 해주는 인류 최대의 업적처럼 느껴졌다. 식욕을 줄여준다는 설명을 나는 어느새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입에 음식을 꾸역꾸역 구겨 넣으면서 오래도록 갈망해온 상태였다.
주사를 맞은 뒤 밤 10시가 넘도록 마신 것은 단백질 음료 한 잔뿐이었다.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음식을 가져다 놓아도 많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허기는 남아 있는데 다급하지 않다는 것이 낯설었다. 담배는 여전히 생각났다. 성욕과 수면욕은 어떻게 될지 좀 더 두고 보기로 했다. 약 하나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생각보다, 정말 어디까지 달라질 수 있을지 궁금한 마음이 앞섰다.
오랫동안 내가 원한 것은 마른 몸보다 '메마른' 몸이었다. 영화 〈경주〉에서 최현(박해일)의 티셔츠가 복부 앞에서 하늘거리는 모습을 보며, 저렇게 입으려면 나는 3XL를 사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옷은 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안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 선명하게 드러냈다. 천을 밀어내는 배가 없다는 사실보다, 무언가에 쫓기거나 들끓지 않는 듯한 몸가짐이 부러웠다. 살을 빼면 나도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육체의 윤곽을 바꾸면 성정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가 그 얇은 티셔츠에 걸려 있었다.
그 기대에는 남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의 문제도 섞여 있었다.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이 성시경 같은 후배 가수들에게 턱선으로 여심을 베어야 한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기억한다. 이별을 노래하는 사람의 얼굴이 후덕하면 마음이 아파도 먹을 것은 잘 챙겨 먹은 것처럼 보인다는 농담이었다. 우스운 말이지만 고통의 진정성을 외모로 판정하는 관습을 정확하게 건드렸다. 슬픈 사람은 식욕까지 잃어야 하고, 창작하는 사람은 생활의 안락과 거리를 둔 얼굴이어야 했다. 글 쓰는 사람도 사흘쯤 피죽을 얻어먹지 못한 인상이어야 문장 밖으로 창작의 고통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던 내 손에는 후라이드치킨 두 마리가 들려 있었다.
페이스북에서 글로써 먼저 알게 된 어떤 작가를 실제로 만났을 때, 그는 헤어질 무렵 나의 글을 먼저 본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농담이었겠지만 오래 남았다. 후덕한 사람도 글을 쓴다. 잘 먹으면서도 괴로울 수 있고, 배가 나온 채 예민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 역시 그 구분을 온전히 믿지는 못했다. 외모로 글을 판단하는 시선을 비웃으면서도 정작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그 시선에 더 잘 부합하는 몸이었다. 메마름은 나의 미적 취향인 동시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외양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나를 만들어온 음식들은 그런 외양과 거리가 멀었다. 대학 4학년 때, 나는 초코 다이제스티브와 튀김우동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언론사 입사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에는 돈이 부족했고 늘 배가 고팠다. 무엇을 먹고 싶은지보다 무엇으로 끼니를 넘길 수 있는지가 먼저였다. 과자는 간식이 아니라 식사의 일부였고 컵라면은 그날의 밥이었다. 남에게는 출출할 때 먹는 것들이 내게는 다음 끼니까지 버티게 하는 음식이었다. 꿈과 의지로 설명되는 수험생활도 결국은 먹은 몸으로 치러야 했다.
2014년 여름, 고급 레스토랑에서 이름을 외기도 어려운 '샤프란 크림 리조또'를 먹다가 그 조합을 떠올렸다. 특별한 손님과 함께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좀처럼 가지 않는 식당이었다. 긴 이름을 가진 음식을 앞에 두고 생각난 것은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수치가 아니었다. 초코 다이제스티브와 튀김우동을 먹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여기 앉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대형마트에서 그 과자와 컵라면을 볼 때마다 같은 생각을 했다. 형편이 나아졌다고 해서 나를 지탱했던 음식까지 하찮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성공한 뒤 버려야 할 과거가 아니라, 성공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던 몸을 계속 살려둔 것이었다.
달걀프라이는 더 오래된 허기에 속한다. 어릴 때는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없었다. 식탁에 올라온 몇 개를 두고 동생과 다퉜다. 맛있다는 감각과 충분하지 않다는 감각이 붙어 있었다. 내 몫을 먹고 나서도 하나를 더 먹고 싶었고, 그 하나는 대개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어른이 되면 달걀 한 판을 사서 끼니마다 세 개씩 부쳐 먹겠다고 생각했다. 훗날 저녁에 프라이를 다섯 개나 부쳐 먹고 내가 이렇게 부자라고 농담한 적도 있다. 구매력이 달라져도 풍요를 가늠하는 단위는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지금은 작은딸이 달걀프라이를 좋아한다. 접시에 하나가 남으면 먹겠느냐고 ‘확인차’ 묻는다. 마음 한구석에는 한 번쯤 사양해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있지만 아이는 거절하지 않는다. 나는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는 사람처럼 달걀을 건네고, 아이는 원래 자기에게 돌아올 음식처럼 받아먹는다. 그 달걀에 내 어린 시절이 눌러붙어 있다는 것을 아이는 모른다. 알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의 양보를 특별한 희생으로 기억하게 하는 것보다, 하나 더 먹고 싶다는 말이 아무런 빚도 만들지 않는 식탁을 물려주는 편이 낫다. 내게는 아직 아쉬운 마지막 한 개가 아이에게는 평범한 한 끼의 일부가 된다.
내가 원한 몸과 나를 지탱해온 방식은 처음부터 서로 반대편에 서 있었다. 나는 매 순간이 절박했고 늘 갈급하게 달려들어왔다.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조금 늦거나 덜 애쓰면 내 자리가 사라질 것 같았다. 충분하다고 판단하는 것보다 더 밀어 넣는 쪽이 익숙했다. 배가 부르지 않으면 서러웠던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이 먹는 일에는 쾌락뿐 아니라 이제 그만 부족해도 된다는 확인이 들어 있었다. 그런 몸을 살찌게 했다고 질바카라하면서, 정작 그 몸을 몰아붙인 생활은 그대로 두었다.
이제 생각하면 최현에게서 부러워한 것도 단순한 절식의 결과는 아니었다. 그는 춘화를 다시 보려고 경주까지 찾아가고, 옛 연인을 불러내고, 찻집 주인에게 끌리는 사람이다. 욕망을 버린 인물로 보기에는 그의 여정 자체가 너무 충동적이다. 다만 그 충동이 모두 성취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가까워졌다가 멈추고, 끌리면서도 물러난다. 그 망설임을 전부 고결한 절제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상대의 사정과 자신의 기억, 어긋나는 순간들이 그의 행동을 바꾼다. 욕망은 있지만 욕망만으로 장면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장률은 춘화에서 행위뿐 아니라 사람과 분위기, 공간이 보인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 설명을 따라가면 〈경주〉의 느슨한 호흡도 달리 보인다. 영화는 인물이 원하는 것만을 향해 서둘러 가지 않고 그 주위에 있는 것들을 함께 남겨둔다. 그의 티셔츠에는 옷과 살 사이의 여백이 있었고, 영화에는 충동과 실현 사이의 여백이 있었다. 반면 나는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둘러야 한다고 믿었다. 내가 동경한 메마름은 체중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상태에 이르는 방법으로 내가 아는 것은 또다시 자신을 몰아붙이는 일뿐이었다. 언젠가 몸매 관리 비결을 묻는 리포터에게 배우 이하늬가 “죽도록 운동합니다. 죽도록”이라고 답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가 좋아졌다. 타고났다는 말이나 특별한 비법으로 노동을 지우지 않는 대답이었다. 아름다운 몸에도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는 사실이 명료했다. 다만 나는 그 말을 내 몸에 적용하면서 고통을 감수하는 것과 몸을 제대로 돌보는 것을 자주 혼동했다. 괴로울수록 잘하고 있는 것 같았고, 오래 견디지 못하면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 됐다.
2015년 5월에는 저녁으로 양배추를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덜 먹기는 어려우니 다른 것으로 가득 채우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30분이 지나자 저녁을 먹지 않은 사람처럼 허기가 몰려왔다. 그 상태로 마트에 가서 오이와 호두, 닭가슴살을 가열차게 담았다. 먹고 싶은 것을 찾는 장보기라기보다 먹어도 될 것들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그 와중에 후각은 이상할 만큼 예민해졌다. 과일과 육고기와 생선, 냉동가스가 뒤섞인 마트의 냄새가 하나씩 벼린 듯 구분됐다. 카트 안에는 허용된 음식들이 쌓였지만 코는 매장 전체를 향해 열려 있었다.
당시의 실패를 단지 참지 못한 탓으로 돌리면 설명은 간단해진다. 그러나 나는 덜 먹는 동안 왜 그토록 신경질이 나고 서러웠는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허기를 줄이려는 계획에는 있었지만 허기와 함께 밀려오는 감정을 다룰 계획은 없었다. 음식에 너무 많은 일을 맡겨놓고 식사량만 조정하면 된다고 여겼다. 몸을 관리한다는 말 아래에서 생활은 검토되지 않았고 몸만 반복해서 심판받았다.
그 심판이 무의미해진 때가 있었다. 2018년 2월 어느 목요일 밤 오한이 시작됐고, 다음 날부터는 위장 안쪽을 손톱으로 할퀴는 듯한 복통이 이어졌다. 심야에 몇 시간씩 방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주말을 병원복 차림으로 보냈다. 병원에서는 ‘위장 마비’라고 했다. 먹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아프기 전부터 수도자처럼 욕망을 내려놓고 살겠다고 말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바라던 상태가 질병의 모습으로 찾아오자 그것은 전혀 자유롭지 않았다.
몸이 회복되는지는 무엇을 다시 원하는가로 알 수 있었다. 담배와 커피가 생각났고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 화해와 용서와 사과도 떠올랐다. 나를 지치게 했던 관계들이 다시 마음에 들어왔다. 식욕과 다른 욕망들이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때의 내게는 무언가를 원한다는 사실 자체가 회복의 징후였다. 욕망을 없애야 편안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때에는 편안함을 누릴 기력도 없었다. 나를 괴롭힌 것들과 나를 살아 있게 한 것들은 생각만큼 명확하게 나뉘지 않았다.
그런 경험을 하고도 위고비의 설명을 해탈의 약속처럼 받아들인 것을 보면, 나는 여전히 쉽게 달라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첫날부터 몸은 기대와 다르게 반응했다. 배고픔은 사라지지 않았고 담배 생각도 남았다. 둘째 날 점심에는 물회를 먹고 오래지 않아 설사를 했다. 약 때문인지 음식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적게 먹는 동안 기운이 없었고 씻기와 빨래, 다음 주의 일을 정리하는 것까지 유난히 귀찮았다. 식욕이 줄어든 만큼 생활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전날 저녁에 이어 그날 오전에도 차를 한두 시간 몰아 서해로 갔다. 막 시작한 낚시를 하고 싶었다. 망둥어 서너 마리를 잡았다가 곧바로 놓아주었다. 빨래는 미루면서 바다까지는 다녀왔다. 피로가 모든 일을 똑같이 가로막지는 않았고, 먹는 데 대한 관심이 줄어도 다른 즐거움을 찾는 마음은 남아 있었다. 이 모순을 어느 쪽이 진짜 내 상태인지 판정할 필요는 없었다. 둘 다 그날의 나였다.
저녁에는 오븐에 구운 통삼겹을 조금 잘라 상추와 깻잎에 싸 먹었다. 초콜릿과 쿠키도 한 조각씩 먹었다. 위장에서는 더부룩함과 구역감이 올라오는데 입은 계속 무언가를 원했다. 더 먹기 어렵다는 감각과 더 먹고 싶다는 감각이 동시에 있었다. 나는 그동안 이 둘을 모두 배고픔이라고 불렀다. 위고비를 맞은 뒤에는 오히려 그 어긋남이 또렷해졌다. 나의 욕망들은 시대의 명약이 드리운 그림자를 저마다의 현현한 빛으로 버티고 있었다.
이틀의 경험으로 체중 감량의 성공을 말할 수는 없다. 그동안 결심을 너무 많이 했으므로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이번이 기회처럼 느껴진 것은 내가 갑자기 강한 사람이 되지 않았는데도 참는 일이 조금 덜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작지 않았다. 나는 다이어트의 실패를 의지의 패배로 받아들여왔지만, 견뎌야 하는 감각의 강도가 달라지자 같은 나에게 다른 선택이 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면 이전의 실패 역시 인격에 대한 최종 판결일 수는 없었다.
약의 도움으로 몸이 달라진다고 해서 내가 원했던 태도까지 따라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허리둘레가 줄어도 인정에 조급할 수 있고, 티셔츠가 하늘거려도 마음은 여전히 무언가를 붙잡으려 들 수 있다. 그 둘을 같은 것으로 보았던 기대부터 거두어야 한다. 메마른 몸이 절제된 인간의 증거가 아니듯, 먹으며 버틴 몸도 삶을 잘못 살아왔다는 증거는 아니다. 필요한 것은 과거의 몸을 벌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몸으로 계속 살아갈 방법을 찾는 일이다.
나는 아직 달걀프라이 하나가 더 먹고 싶고, 바다에 가고 싶고,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그것들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다급해질 필요는 없다는 것을 배워보고 싶다. 위고비를 맞고 처음 만난 것은 완성된 메마름이 아니라, 배가 고픈 채로도 잠시 기다릴 수 있는 낯선 상태였다. 이번에는 그 기다림을 더 굶기 위한 능력으로만 쓰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