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버스에서 그림 그리기

50분 타임 어택

by아인장

여행 둘째 날 아침을 송도에서 먹을지 해운대 쪽을 가서 먹을지 고민이 많았다. 오후 1시에 해변열차를 예약해 뒀기 때문에 해운대 쪽으로 가야 하는데 밥을 먹고 출발하는 게 나을지, 아니면 일찍 가서 열차 탑승장 근처에서 먹는 게 좋을지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도에서 온라인카지노를 먹네 마네 하다가 차라리 든든하게 돼지국밥이 어떠냐는 말이 나왔고, 그렇게 해운대에 있는 국밥 맛집을 오픈런하게 되었다.


국밥집으로 가기 위해 우린 버스를 탔다. 버스로 50분 정도 달려야 했기에 나는 서둘러 드로잉북과 물감을 꺼냈다. 짧은 시간일 테지만, 버스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특별한 경험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비행기와 기차에서 그림을 그려봤으니 버스는 또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다.


자리에 앉아 종이를 펼쳤는데 영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거 괜찮은 건가?'


버스는 비행기나 기차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흔들렸다. 커브길도 많았고, 멈추는 일도 잦았다. 아하, 비행기나 기차는 자주 멈출 일이 없는데 버스는 다르구나. 아무래도 스케치를 하며 정교한 그림을 그리기는 불가하다 싶어 그냥 바로 붓에 물감을 묻혔다. 그리고 무엇을 그릴지 정하지도 않고 바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정된 장면도 없고, 버스라는 특별한 환경을 살려 창밖으로 지나가는 무수한 장면 중 내 시선을 끄는 요소들을 한 화면에 모아 그려 보기로 했다. 마침 부둣가를 지나고 있었고 내 눈에 보이는 건 파란색과 주황색의 네모난 컨테이너 화물들이었기 때문에 알 수 없는 형태를 그려내는 붓질이 시작되었다.


덜컹이는 버스의 가감 없는 진동이 더해져 내가 그리면서도 뭔지 모를 형체가 하얀 종이 위에 나타났다. 난 분명 컨테이너를 그리는데 이건 절대 컨테이너라고 부를 수 없는 그런 쭈글쭈글한 붓의 흔적이 남았다. 컨테이너들을 미처 다 그리기 전에 바다 풍경이 끝나고, 푸른 산 풍경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바로 산을 그렸다. 듬성듬성 거친 붓놀림으로 찍어내듯 표현하는 독특한 산맥이 담겼다. 마침내 인공적인 손길이 가득한 시내 풍경으로 바뀌었을 때에는 낮은 단층 벽돌집과 종이 위에 남기기 좋아 보이는 신호등까지 구불거리게 담았다.

그림_흰배경.png〈부산 풍경 콜라주〉 한국, 부산

50분이라는 시간은 손바닥보다 작은 종이 한 장에 풍성한 그림을 담기에 조금 부족한 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성도에 대한 만족감을 채우지 못한 채로 그림을 마무리할 수는 없었기에 얼른 물감과 붓을 정리하고, 짧은 색연필들을 꺼내 찍찍 선을 그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 정교함을 추가하려고 한 조치인데 생각보다 꽤 마음에 들고 말았다. 하나하나 요소들을 다듬고 묘사를 더하는 손맛 감성이 추가되는 아주 만족스러운 순간이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붓칠을 하면 할수록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드로잉이 되어 점점 재미있었다. 대상의 색과 현장감만을 담는 희소한 그림이 되어가고 있었다. 역시나 멀미를 하지 않은 덕분에 빠듯한 시간을 알차게 써서 내려야 할 정류장 바로 직전에 그림을 완성했다.


난해하고 다채로운 나만의 시간을 담은 진짜 내 그림. 내 손을 빌어 탄생하는 그림은 가히 피카소의 그것과도 다를 바가 없었다. 의도하지 않은 예술성이 녹아든 그림을 흔들리는 부산 버스에서 그려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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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