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가는 이유
부산에 가는 가장 큰 이유가 뭐냐 묻는다면 단언컨대 이재모 피자 때문이라고 하겠다. 서울에 세고 빠진 게 피잣집인데 굳이 부산까지 피자를 먹으러 가냐고 묻는다면, 그럼 서울에 세고 빠진 게 빵집인데 굳이 대전까지 빵을 사러 가냐고 답하겠다. 그냥 피자가 아니라 소문 자자한 이재모 피자가 먹고 싶었던 거라고, 어떤 후기들이 넘실거리든 내가 직접 먹고 판단하겠다고 답하겠다.
부산으로 향하는 길에도 빵을 먹었지만, 계획대로 우리의 첫끼는 피자가 되었다. 원래는 본점을 가기로 했지만, 부산역에서 출구를 찾아 나가는 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어 졌고, 출구를 나서자마자 뭐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싶은 뜨거운 기온에 그냥 가까운 부산역점으로 가자고 계획을 바꾸었다. 본점이나 지점이나 맛이 뭐 크게 다를까. 기본 웨이팅 2-3시간 필수라던데 우린 과연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까 궁금한 상태로.
우리는 1시간 반 정도 기다려 빨간 간판의 그 유명한 부산 피잣집에 들어갔고, 웨이팅 순서를 기다리며 사실 또 모찌빵을 하나 먹었지만 군침 도는 피자 냄새를 맡으니 설레기 시작했다. 피자를 배달에 먹은 것도 오래고, 매장에 가서 주문해 먹는 건 더더욱 오래전의 일이라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생각보다 넓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테이블마다 큰 피자 한 판에 김치볶음밥은 무조건 하나씩 올려두고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소문의 피자를 곧 만날 수 있으니 어찌 두근대지 아니할까.
피잣집인데 꼭 시켜야 하는 건 김치볶음밥 이래서 피자와 밥을 우선 담고, 안 먹으면 아쉬울 것 같은 스파게티와 샐러드도 하나 시켰다. 모두 처음 온 곳이라 다 기본이나 대표 메뉴로 골랐다. 그림만 보면 여느 피자와 다를 것 없는 그냥 피자인데 과연 뭐가 다른 걸까? 오늘 내게 피자의 신세계가 열리는 걸까?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주 큰 기대는 없었다고 말해야 한다. 피자가 피자 맛이고, 김치볶음밥은 김치볶음밥 맛일 테니까. 하지만 일반적인 맛과의 차별점이 분명 존재할 거라는 믿음으로, 그게 뭔지 궁금했을 뿐이다.
가장 먼저 나온 메뉴는 샐러드였다. 샐러드는 엄연한 메뉴 하나로 치지 않는 나로서는 아직 음식이 하나도 나오지 않은 상태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이모는 샐러드를 ― 그리고 과일을 ― 좋아하기 때문에 꼭 시킨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곳이니 신선해 보이는 샐러드를 시킨 것인데 예상외로, 이 샐러드가 정말 맛있다. 인공적인 소스 맛이 아닌 상큼한 오렌지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어? 이거 예상외인데? 곁들여 놓은 과일들도 신선하고 개운했다. 인생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도 있다.
이어서 볶음밥과 스파게티가 나왔다. 카페 가서 디저트 안 시키면 섭섭하고, 중국집 가서 짜장면만 시키면 섭섭한 이유로 주문한 두 가지 메뉴들. 먼저 부산을 다녀온 친구가 입이 닳도록 추천하고 또 강조한 것이 바로 김치볶음밥이었는데 그 소문의 음식을 영접한 순간이었다. 생긴 건 그냥 김치볶음밥인데…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앗, 이 맛은…!?"
아하, 역시 그냥 김치볶음밥이구나.
역시, 역시. 기대가 컸던 탓이다. 정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익숙한 김볶맛 딱 그것이었다. 계속 먹어보니, 조금 매콤해서 양식과 함께 먹을 때 도움이 된다는 점이 차별점이라면 차별점이겠다. 하지만 나는 멀미도 안 하면서 느끼한 맛도 잘 느끼지 못하는 다시 한번 축복받은 몸이었으므로 꼭 김치볶음밥이 없어도 피자를 즐기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 김치볶음밥을 향한 기대의 패인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스파게티가 더 맛있었는데, 그건 피자의 특징과 맞물린 점이다. 기대를 한껏 안고 먹은 피자도 역시 피자 맛이었는데 치즈가 두툼하게 올려졌다는 점이 특별했다. 치즈가 달랐다. 도우 끝 치즈 크러스트는 일반적인 피자와 이재모 피자의 차이가 무엇인지 단박에 알게 했다. 쫄깃함보다 부드러움에 가까운 크림 같은 치즈. 그것이 다르다.
빵보다 풍성하게 올려진 토핑과 치즈가 입 안 가득 씹힐 때 마치 구름을 한가득 입 속으로 밀어 넣고 와구와구 씹어대는 듯한 느낌과 남아서 포장해 간 피자를 식은 뒤에 먹었을 때에도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웠던 이유까지. 역시 퐁신한 치즈가 톡톡히 제 역할을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될 만큼.
사람들이 유명하다, 맛있다고 하는 음식을 굳이 찾아가서 먹어보는 일은 누군가에겐 특별하지 않을지 몰라도 내겐 경험 그 자체에 의의가 있다. 남의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내가 직접 느낀 것에 입각한 평가를 내놓는 일이 즐겁다. 실제로 정말 궁금했던 부산의 핫한 피자는 하늘만큼 땅만큼 별나지는 않았어도, 좋은 경험이자 즐거움으로 다음에 또 부산에 간다면 또 한 번 먹고픈 부산 피자를 사랑할 이유를 내게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