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한 정복력이 꿈틀거리다
그 부산에 뭐가 있는데?
여행을 계획하자마자 터져 나온 말. 도대체 거기까지 가려는 이유가 뭐냐고? 누군가에겐 애정하는 여행지일지 모르는 부산은 내게 먼지 같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아마도 존재할 좋은 면을 진하고 탁하게 가리는 두툼한 먼지로 각인된 지 오래다.
언제 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10년도 더 된 생애 첫 부산 여행은 모든 면에서 나빴다. 단번에 좋았던 점을 찾기 어렵다. 아, 아니다. 딱 하나 긍정적으로 볼 만한 기억은 여행 첫날 저녁, 바닷가 앞 조개구이 집에서 먹은 조개들과 해물라면. 그때의 부산 여행을 떠올리노라면 유일하게 꼽을 수 있는 한 조각의 기쁨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당시 있는 그대로를 즐기지 못할 갑작스러운 상황이 있었고, 음식에 미안함의 맛이 더해진다면 그 어떤 산해진미가 앞에 놓인다 하여도 그리 유쾌한 기억이 되긴 어렵다.
이렇게 부산은 나쁜 기억인 채 살아가는 게 맞을까?
누구는 1년에도 몇 번씩 가는데, 내가 겪지 못한 좋은 뭔가가 있지 않을까?
막연한 추측 속에서 부산에 대한 미묘한 정복력이 생겨났다. 나 빼고 다 가는 부산이라서 처음 겪는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느꼈다. 서울에서 가장 먼 길을 기준 잡을 때, 빠지지 않는 부산이니 숙박비보다 비싼 돈 들여 KTX 타고 갈 만한 가치가 있는 지역이라는 생각도 했다. 전에 KTX를 타고 대전에 갔다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도착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아쉬웠기 때문이다. 어쩌면 말은 좋은 기억으로 바꾸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실은 낸 돈 아깝지 않을 만큼 진득하게 오래 비싼 열차를 누리고 싶은 욕심 때문일지도.
나로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딱 한 번 가본 부산이 별로였다는 점이다. 반면 엄마는 세 번을 갔는데, 세 번 모두 실패였다. 여행의 실패라고 함은 음식, 숙소, 사람, 풍경 등 다양한 요건들이 모두 대비하지 못한 강풍에 맞아 산산조각 난 유리창 꼴이 되었다는 것. 첫 부산 여행에서 엄마는 아팠고, 두 번째에서는 함께 간 일행이 말썽이었고, 세 번째에서는 모든 게 처참했다. 부산의 문을 두드릴 때마다 속을 알 수 없는 검은 얼굴이 활짝 웃으며 께름칙하게 맞이하는 것만 같았던 경험들이 엄마와 내가 부산을 가까이하지 않아 온 이유다.
엄마와 내가 단둘이 떠난 첫 번째 여행이 꽤나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용기를 얻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올 가을에 예약해 둔 큰 여행 하나 앞두고 여름휴가로 국내를 한 번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말 나온 곳이 부산이었고, 솔직히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일생에 한 번쯤은 나쁜 여행을 좋은 여행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우리가 운이 없었던 거겠지, 부산의 잘못일까. 그렇게 10여 년을 멀리 했던 부산은 어느덧 한 달 뒤로 성큼 다가왔고, 8월 말 부산 날씨는 과연 살아남을만한가 하는 우려와 설렘을 뒤섞고 있던 차 새로운 여행 메이트가 생겼다.
“우리 다음 달에 부산 가는데, 같이 갈래?”
둘이 계획한 여행에 둘을 더 끼워 넣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해외여행을 가기엔 부담스럽고 언젠가 한 번은 또 여자들끼리의 여행을 가고 싶던 마음이 있었으니. 갑자기 왠 부산이냐는 물음에 우리의 적당히 거창한 여행 목적을 설명했고 그건 아마 분명 성공적일 거라는 말도 덧붙였던 것 같다.
그렇게 3년 전 여름 그 자체였던 태국 방콕 이후 엄마와 이모, 사촌 여동생, 나까지 여자들 넷이서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됐다. 첫 여행이 좌충우돌 다사다난 했기에 이번엔 모두 조금 더 넓은 배려의 마음과 빡빡하지 않은 계획을 안고 향한 부산.
제발 맛있는 걸 먹기를.
부디 숙소가 좋기를.
이번 부산은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경험을 사랑하는 여행자치고 상당히 간절하게 빌면서, 그렇게 애증의 부산을 만나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