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우리의 첫사랑 2
그래서 연락을 했느냐...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못했다. 일단 조서를 쓰느라 받았던 연락처를 개인적으로 활용하는 것 자체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미처 범법을 저지르기 전에 망원동 모녀 살인사건 용의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정신없이 사건에 매달린 탓도 있었다.
"강 경위님! 지금 합정 지구대 쪽에서 그 새끼 쫓고 있답니다. 바로 합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효범이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혐의가 혐의인 만큼 체포까지 애를 먹을 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현장은 이미 상황이 종료되어 있었다. 한 여성 시민 덕분이었다.
나는 아직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용의자를 호송차에 실었다. 그리고 지구대 순경들에게 자초지종을 전해 듣고 체포에 도움을 준 시민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거기서 그녀를 다시 마주친 것이다.
"저분이라고요?"
망원동 모녀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체포하도록 도운 '여성 시민'은 다름 아닌, 진영이었다. 나는 지금 이 믿을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단전에서부터 욕지기가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쓸어 올리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이게 말이 되는가? 왜 하필 너란 말인가...
나는 자기가 지금 무슨 짓을 한 줄도 모르고 해맑게 웃고 있는 그녀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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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시간째 미친놈처럼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중이다. 어제 범인을 검거하는 데 한몫 톡톡히 한 그녀에게 지금 전화를 거는 게 맞나 아닌가에 대한 고민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개인정보보호법이고 뭐고 이젠 모르겠다. 당장 전화를 걸어야 한다.
하지만 막상 걸려고 하니 쉽게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 뭐라고 해야 할까? 어제 네가 한 일은 살인범을 검거하는 데 한몫한 거라고? 그래서 뭐? 알면 뭐가 달라지나? 굳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겁을 줘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놔둘 수도 없지 않은가. 심지어 범인이 '그놈'인데!
마음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서로 충돌하며 싸운다.
"강 경위는 저 뭐여, 그 전화기가 뜨거운 겨? 들었다 놨다 아주 기냥... 그럴 거면 저기 저 세면대 가서 찬물로 박박 씻어 오든가. 요즘은 다 방수된다던디?”
팀장님의 핀잔에 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들고 있던 전화기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남이 보기에도 내가 안절부절못한 게 다 티가 나는 모양이었다. 내가 얌전해지자 팀장님은 그제야 팀원들을 향해 원래 하려던 말을 꺼냈다.
"그리고 저 뭐여, 니들 어제 김기태 잡을 때 도움받은 그 시민 있잖냐. 그 냥반 표창 준다던디. 범인 검거 유공으로다가."
나는 팀장님의 말에 숙였던 고개를 퍼뜩 들었다. 원래 유공 표창의 경우 처리가 좀 걸리는 편인데, 이 사건이 워낙 크게 언론에 오르내리는 중이라 위에서 급하게 결정한 듯했다.
"그니께 뭐 막내 니가 전화 걸어서 일정 한 번 잡어. 필요한 거 확인도 좀 허고, 설명도 좀 허고."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의 말에 효범이가 핸드폰을 집어 들고 일어섰다. 나는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그런 효범이의 팔을 낚아채듯 잡았다.
"내가 할게."
그런 내 행동에 놀란 것은 효범이뿐이 아니었다. 팀장님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지만, 나는 지금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예? 이런 건 그냥 제가 해도 되는데 말입니다."
"어, 아니야. 너는 지금 바빠. 너 지금 되게 바빠. 그러니까 내가 할게."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효범이를 도로 자리에 앉히자 팀장님이 알듯 말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려... 뭐, 누가 하든... 전화만 햐. 전화만. 오늘 안으로 연락만 하면 되지 뭐."
나는 의아해하는 효범이와 능글맞게 웃고 있는 팀장님을 뒤로하고 핸드폰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정진영 씨. 마포경찰서 강우진 경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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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원하면 신상을 공개할 수도 있나요?"
나는 여전히 예쁜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감상해볼 새도 없이, 느닷없이 날아든 질문에 마시던 차를 뿜을 뻔했다.
지금 얘가 뭐라는 거야. 제정신인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꽤 진지한 표정이었다. 진심인가 보다.
나는 격해진 마음을 최대한 진정시키며 그녀에게 설명했다.
"... 이번 사건은 살인과 관련이 있기도 하고, 자칫 범인에게 노출될 위험도 있고 해서 신상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웬만하면 공개하지 않는 편이..."
내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그녀의 귀여운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는 내가 말을 미처 다 끝내기도 전에 내 말을 잘라먹었다.
"그래도 본인이 괜찮다고 하면 가능은 한 거죠? 저는 사진도 찍고 저희 밴드명도 아주 살짝이라도 언급이 되었으면 하거든요."
아아. 밴드를 알리고 싶은 거구나.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필사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원래 이렇게 저돌적인 성격이었는지 곰곰이 예전일을 떠올려보았다. 그래, 뭐 평소엔 얌전하다가도 한 번 폭주한다 싶으면 못 말리는 애이긴 했지.
"정진영 씨, 어떤 사유로 그러시는지 대충 짐작은 가고, 그 마음 이해도 합니다만, 이 일로 나중에 혹시나..."
"괜찮아요. 문제 생긴다고 바카라임져 달라고 안 할게요. 그냥 가능한지 아닌지만 알려주세요."
바카라임져 달라고 하지 않는다고? 차라리 바카라임져 달라고 해라!! 자칫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라도 도움을 받을 수는 없을지 궁리를 하라고!
나는 답답한 마음에 내 설명을 전혀 들을 생각이 없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폭탄을 던져 놓고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태연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아마도 이미 내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 거겠지. 어릴 때도 그랬지만, 다 큰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나는 그녀를 이길 자신이 없다.
"뭐... 절대 안 되는 건 아닌데요..."
나는 난색을 표하기 위해 눈썹을 만지작거렸다. 거기다 작게 한숨까지 내뱉으며 말꼬리도 흐렸지만, 그녀는 내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활짝 웃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내가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해맑게 웃는 그녀를 보니 정말 난감했다. 하지만 그녀가 웃으니 나도 모르게 덩달아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질 뻔했다. 그래서 나는 내 입꼬리를 단속하며 표정을 감추기 위해 애를 먹었다.
그녀의 미소로 한 가지 확실해진 건, 내 마음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절실하게 원하는 거라면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라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돕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경찰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혹시나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내가 최선을 다해 막으면 될 일이다.
운명 따위 믿지 않는 나는 이렇게 또다시 너에게 휘둘린다.
"그런데요 정진영 씨..."
업무적인 이야기를 모두 마치고 그녀와 헤어지기 전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아무리 마스크를 썼다 벗었다 했어도, 한참을 마주 보고 있었음에도 그녀는 아직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호기심밖에 없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강윤재라는 걸 알게 되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반가워할까? 아니면 아직도 나를 원망할까?
나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움직였다.
"... 제가 사적인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다음에 혹시 개인적으로 연락드려도 되나요?'
하지만 나는 차마 그다음 말을 꺼내보지도 못하고 목구멍으로 삼켜야 했다. 그녀의 동료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생긴 것도 족제비처럼 생긴 게...
지난번부터 영 마음에 들지 않던 그녀의 동료가 하나 있었더랬다. 그녀의 어깨나 팔을 만지는 게 엄청 자연스러워 보이는 그 녀석. 오늘 훼방 놓은 게 그 녀석이라 더 짜증이 났다.
결국 나는 하려던 말을 삼키고 뒤돌아야 했다. 나는 지금 그녀에게 이방인이니까. 지금의 나보다는 함께 있는 저 사람들이 지금의 그녀를 훨씬 잘 알고 있겠지.
하지만 몇 걸음도 가지 못하고 후회가 몰려왔다.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이렇게 너를 보낸단 말인가... 나는 급히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동료들과 웃고 떠들며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도 쉽게 가버리는 그녀에게서 괜히 서운함을 느꼈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그 뒷모습마저 아까워서 한참을 눈에 담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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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 새끼 진술 해놓은 것 좀 보십시오. 진짜 관종에 또라이 아닙니까? 무슨 배짱인지 변호사도 필요 없대요."
나는 망원동 모녀 살인사건의 주요 용의자의 신상이 적힌 파일을 만지작거리며 깊은 생각에 빠져있느라 효범이의 말에 대꾸할 타이밍을 놓쳤다. 내가 대답이 없자 효범이는 내 눈치를 살짝 살폈다.
"... 아 이 용의자, 강 경위님 동향 사람이라고 했었죠. 기분이 영 좀 별로시겠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동향 사람... 그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 정도의 인연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 김기태라는 이름은 그보다 훨씬 더 안 좋은 기억이자 악연이었다.
"그 새끼 언제 송치된다고 했지?"
"구속영장은 어제 나왔고, 검찰 송치는 모레 오전으로 잡혔습니다."
나는 골똘히 생각하며 손가락으로 눈썹을 쓸었다. 모레라... 남은 이틀의 시간 동안 나는 김기태가 혹시나 진영이를 알아본 건 아닌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효범아, 김기태 조사실로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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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몇 번을 얘기해요! 씨발, 내가 들어갔을 때는 이미 죽어 있었다고! 유기는 무슨...! 나는 시체를 건드린 적도 없어요. 아니 아예 그 옆에 간 적도 없어요! 그냥 그 집에서 바로 나왔다니까요?"
김기태는 본인의 범행을 부정하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쓰고 있는 마스크를 조금 더 올리며 고쳐 썼다. 일단 김기태는 나를 알아보지는 않았다. 마스크 덕에 얼굴을 가린 것도 있었지만, 내가 이름을 개명한 것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 부분은 잠시 후에 다시 확인하기로 하고, 체포 당시 상황부터 묻겠습니다. 경찰을 발견하자마자 도주한 건 인정하십니까?"
"..."
"왜 도주했습니까?"
"잡히기 싫으니까 뛰었죠. 씨발. 형사님 같으면 안 뛰겠습니까? 잡히면 지금처럼 살인범으로 몰고 갈게 뻔한데?"
김기태는 억울하다는 듯 입을 내밀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그런 김기태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감정을 빼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 그러다 합정 지구대 인근에서 붙잡혔고요."
"붙잡힌 게 아니라, 웬 미친 여자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나는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추었다. 진영이 얘기였다. 녀석이 지금 진영이를 떠올리고 있다.
"하. 진짜 재수가 없으려니까. 별 미친년을 다 만나 가지고."
나는 티 나지 않게 김기태의 표정을 가만히 살폈다. 다행히도 지금 이 새끼에게 그녀는 단순히 자신을 방해한 '누군가'일 뿐, 그게 누구인지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김기태가 더 이상 진영이를 떠올리지 않도록 말을 돌렸다.
"... 사람이 죽어 있는 걸 보고도 그 집에서 물건을 챙겨 나왔네요? 이거 피해자 목걸이 맞죠?"
"..."
나는 김기태가 소지하고 있던 피해자의 물품을 증거로 보여주며 계속해서 조사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도주한 곳 근처에서 피해자 차량이 발견되었는데, 거기서 김기태 씨 당신 지문이 나왔습니다. 근처에서 지갑도 발견되었고요."
"..."
"피해자 집에 들어갔고, 피해자 물건을 가져갔고, 피해자 차를 타고 현장을 빠져나온 것까지는 모두 인정하신다는 거죠?"
"아 그래요. 솔직히 내가 훔친 건 맞아요. 애초에 같잖게 어린년이 비싼 명품하고 다니길래 그냥 좀 꼬셔서 놀다가 푼돈이나 뜯어볼까 하고 만난 거니까. 애초에 그년이 자기 집 비밀번호를 막 다 알려준 게 잘 못이지."
"그런데 들어가 보니 두 사람이 이미 죽어 있었다?"
"그렇다니까요?"
"시신을 발견했는데도, 신고는 하지 않았고?"
"..."
"대신 목걸이랑 지갑을 챙겨서 죽은 사람 차까지 훔쳤다."
김기태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요? 그게 뭐 내가 죽였다는 증거라도 됩니까? 내가 시체를 끌고 나가는 게 뭐 어디 찍히기라도 했어요?"
나는 김기태의 뻔뻔한 태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모든 정황이 이 새끼가 살인범이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지만, 정작 살인을 했다는 제대로 된 증거가 없었으니 몰아붙일 수는 없었다. 살인 혐의에 관한 한, 수사는 다시 원점이었다.
"피해자하고는 언제 처음 만났습니까?"
"몰라, 기억 안 나요. 그냥 오다가다 마주치다가 걔가 먼저 말 걸었어요. 그래서 술 몇 번 먹고, 그러다 뭐..."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도 피해자 집에 가본 적 있습니까?"
"킥... 가기만 했게요?"
"...?"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남자가 가면 따로 할 게 뭐 있겠어요. 씨발 그냥 자는 거지."
"사귀는 사이었다는 말입니까?"
"풉... 형사님은 사귀는 사이에만 자나 봐요? 안 그렇게 생겨서 개순진하네."
"김기태 씨.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내가 인상을 쓰자 그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자세를 고쳐 앉고 내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는 묻지도 않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형사님, 여자애들이 얼마나 단순한 줄 아세요? 특히 혼자 나와 사는 애들이요. 몇 번 장단 좀 맞춰주면 바로 다 내준다고. 외롭대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 외롭지 않게 해 줘야지. 안 그래요?"
진술을 하는 내내 그는 마치 자신이 피해자보다, 아니 그 누구보다 우위에 있음을 증명하려는 듯 보였다. 나는 대꾸할 가치도 없는 그의 말을 무시하며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피해자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건 언제입니까?"
김기태는 재미없다는 듯, 방금까지만 해도 히죽거리던 입꼬리를 슬며시 내렸다.
"그날 저녁에 한 일곱 시쯤인가? 저녁에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한 게 마지막이었죠."
"피해자가 집으로 오라고 불렀다는 말입니까?"
"네. 아까 말했잖아요. 그년이 늘 먼저 꼬신 거라니까요? 비밀번호도 알려줬다고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사람 불러놓고 집에 없길래 씨발 뭐 하나 싶었죠. 그러다 그냥 차라리 잘됐다 싶어서 돈 될 만한 거나 좀 챙겨 나가려고 한 거예요."
"그래서요?"
"그래서 방부터 뒤지려고 문을 열었더니... 쯧. 거기 죽어 있더라고요. 지 엄마랑 둘이."
나는 타이핑을 하던 손가락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신소희 씨 어머니를 그전에 뵌 적이 있습니까?"
"...? 내가 걔 엄마를 어디서 봐요."
"그런데 죽어 있는 시체를 보고 엄마인 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
"김기태 씨."
"... 아니 티비에서 그러더만 엄마라고..."
그는 아까 묻지도 않은 피해자와의 일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을 때와는 달리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더욱 굳어진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죽었다는 건 어떻게 바로 알았습니까?"
"..."
"김기태 씨. 보기만 하고 그 둘이 죽어 있었다는 걸 어떻게 확신했냐고요. 앞선 조사에서는 시신 가까이에는 간 적도 없다고 진술하지 않았어요?"
내 질문에 김기태는 갑자기 입을 꾹 다물고는 처음으로 내 시선을 피했다. 김기태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그리고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만 몇 번 달싹였다.
"... 변호사 불러주세요."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나는 잠시 아무 대답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분명 그의 진술에는 구멍이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