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기가 가장 어려웠다

by정아라

운동이 필요한데 날이 더워서 오랜만에 1-2시간 수영을 하러 갔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신기한 것은,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형도 해 보고, 평형도 해 보고, 물에 몸을 누이고 배영도 해 본다.

물을 가르고, 팔을 뻗고, 발을 차는 일은 분명히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 되는 게 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의외로 숨 쉬는 일, 호흡이었다.


오랜만에 수영을 하니 체력이 떨어져서인가,

훨씬 빨리 숨이 찼다.

숨이 흐트러지니 수영이 편하지가 않았다.


신기하다.

매일 수만 번 하고 있는 일인데.
태어난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해 온 일인데.
나는 숨 쉬는 법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또 신기하다.

호흡이 편치 않으니 몸에 힘이 들어가고,

힘을 많이 줄수록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진다.

힘을 쓰지 말고

힘을 빼야 한다.


숨은 참 이상하다.

평소에는 존재조차 의식하지 않는데,

의식하는 순간 어떻게 숨 쉬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수영을 하면서 가장 신경쓰는 것이 호흡이었다.

그리고 체력이 달리니 숨이 차오른다.

숨을 잘 쉬려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수영장에서 아주 작은 사실 하나를 새로 배웠다.

숨은, 저절로 쉬어지는 것과 잘 쉬는 것이 다르다.


매일 걷는다고
걷는 법을 아는 것이 아니고,

매일 말한다고
듣는 법을 아는 것이 아니며,

매일 살아간다고
사는 법을 아는 것도 아니다.


익숙함은 능숙함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익숙한 것일수록 우리는 배움을 멈춘다.


그래서 삶은 종종 우리를 초보자로 만드는 걸까.

아픈 뒤에야 몸을 배우고,
상실한 뒤에야 관계를 배우고,
실패한 뒤에야 자신을 배운다.

그리고 오랜만에 간 수영장에서
나는 숨 쉬는 법을 다시 배웠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다시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몸을 다시 배우고.

숨을 다시 배우고.

사람을 다시 배우고.

나를 다시 배우는 일.


언젠가 보았던 '숨'의 정의가 떠올라 찾아 보았다.

그리스어 프뉴마(pneuma)는 숨이면서 영혼이라고 한다.
히브리어 루아흐(ruach)는 바람이면서 생명이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 프라나(prana)는 호흡이면서 생명력이라고 한다.


몸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숨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몸에 힘을 빼고 호흡에 집중하며 수영을 하니,

숨쉴 수 있다는 것이 고마워진다.

숨쉬고 있다는 것이 살아 있다는 것이구나, 느끼게 된다.

숨쉬는 행위가 이렇게 낯선 것이었나, 느끼게 된다.


숨을 다시 배워야 한다는 사실에 웃음이 난다.

그렇지, 다시 배워야지.

지금 숨을 다시 배우듯


숨을 배우며 자만하지 않았나 돌아본다.

숨을 배우며 익숙하다 여겼던 것을 다시 배워 본다.

숨을 배우며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을 다시 배워 본다.



이미지> Survivor (Pixabay).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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