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초보 러너. 아직 30-40분밖에 달리지 못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리. ㅎㅎㅎ
정말 오랜만에 일정이 없는 저녁 시간. 러닝화 끈을 매고 집 앞 공원으로 나갔다.
달리기의 좋은 점은 온 감각이 활짝 열린다는 것이다.
비염이 있어 남들 다 맡는 냄새를 못 맡을 때가 많은데,
신기하게도 달리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냄새다.
후각.
도심에서는 나뭇가지를 가지치기 하면 특유의 풀냄새가 퍼진다. 그 냄새를 무진장 좋아하는 편인데 오늘은 그 냄새가 났다. 아마도 얼마 되지 않은 과거에 가지치기를 했나 보다.
풀냄새가 날 때마다 코로 한껏 냄새와 함께 공기를 들이마셨다.
시각.
공원에는 사람들이 많다. 혼자 걷는 사람, 혼자 뛰는 사람, 둘이 걷는 사람, 강아지와 산바카라하는 사람...
뛰다가 두 강아지가 다정하게 인사하는 것을 보았다. ㅎㅎㅎ 아 너무 귀엽다. 나는 포유류를 무진장 좋아한다. 절로 웃음이 난다. 강아지, 고양이들은 어떻게 생겼든 다 귀엽고 다 사랑스럽다. 귀여운 것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걸 믿는다. 모두의 마음을 사랑하는 상태로 만들어주니까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내 의식의 흐름 무엇? ㅋㅋㅋㅋㅋ
발 밑에 다리 많은 벌레가 기어가는 것이 보였다. 밟지 않도록 사뿐히 건너 뛰었다. 밟지 않아 다행이다. 생명 하나를 구했다. 하하.
아니, 언제 저기에 꽃을 심었지? 작은 꽃들을 공원 이름이 붙은 곳에 심어 놓은 것은 몰랐네. 꽃도 예쁘네.
청각.
런데이 어플을 실행하면서 시간을 재면서 뛰고 있어 런데이 아저씨의 목소리를 계속 듣는다.
그런데 뛰다가 풋, 웃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에 뛰면 힘든 게 다리 근육이 종아리부터 서서히 아파온다. 그러면 다리가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러면 '아, 그만 뛰고 싶다.' 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신기한 건 그 순간이면 어김없이 너무나도 정확한 타이밍에 아저씨가 외친다!
"힘내세요! 할 수 있습니다!"
"대~단합니다! 이제 절반을 넘었습니다!"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할 수 있습니다!"
같은 멘트들이 나온다. ㅎㅎㅎㅎㅎ
나는 가스라이팅에 민감하다.
칭찬을 싫어한다.
대부분의 칭찬을 나를 조종하려는 의도로 읽는다.
그래서 가끔 앱을 상대로
‘뭐냐 너. 지금 가스라이팅하냐.’
얼척 없게 투덜거린다.
그리고 있는 내가 우스워 웃는다.
웃다가 힘내서 뛰게 된다.
미각. 먹은 건 없으니 패스.
촉각.
무엇보다도 오늘 예민했던 건 귀에서 자꾸 이어폰이 빠지는 거였다. ㅋㅋㅋ
무선 이어폰 충전이 안 되어 있어 유선 이어폰을 끼고 나갔는데
평소에 앉아서, 누워서 사용할 땐 전혀 몰랐는데
뛰었더니만 계속 흘러 내리다가 슉 귀에서 빠져 나왔다. ㅎㅎㅎㅎㅎ
뛸 때는 요 녀석 유선 이어폰 사용은 부적절하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ㅋㅋㅋ
고작 30분 뛰는데도 땀이 줄줄 흐른다.
그런데 희안하게 꼭 왼쪽 이마를 타고 흐른다. 오른쪽 이마로는 흐르지 않는다.
머리를 왼쪽으로 기울이고 뛰나? 왼쪽에 땀이 많이 나나?
혼자 풉 웃으며 이상한 생각들을 하면서 뛰었다.
달리기할 때 느껴지는 감각 중 가장 좋은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바람을 느끼는 것이다!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이 너무 좋다.
머리도 상쾌하고 마음도 상쾌하고 쾌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때로는 복잡했던 생각들도 한 번에 날아간다.
왠만한 일들은 다 별 것 아닌 일이 된다. ㅎㅎㅎ
달리기를 할 때는 온 감각이 열린다. 신기하다.
마지막으로 좋은 건 꾸준히 하는 게 생각보다 더 큰 힘이 있다는 것.
산에 다닐 때도 그랬다. 뒷산 남한산성은 고작 400미터도 되지 않는 낮은 산이다.
낮은 산만 다니니 높은 산은 오르지 못할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고작 남한산성인데도 몇 년 다녔더니,
검단산도 갈 수 있고, 관악산도 갈 수 있고, 도봉산도 갈 수 있고, 태백산도 갈 수 있었다.
달리기도 그런가 보다.
겨우내 안 뛰다가 최근에 다시 뛰기 시작했는데
3개월 가까이 쉬었는데도
재시작한 첫 날부터 30분을 무리 없이 뛸 수 있었다.
자전거도, 수영도,
어릴 때 배운 것들은 하나도 잊히지가 않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내 몸에 고마운 마음.
몸으로 배운 건 힘이 세다. 잊히지 않는다. 몸이 기억한다.
몸의 정직함을 사랑하게 된다!
나의 정직한 몸뚱아리를 사랑한다. ㅎㅎㅎㅎㅎ
표지 이미지> roxanawilliams1920 from Pixabay. ㅎㅎㅎ 저렇게 멋있게 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