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도 안 열었는데, 주문부터 들어왔다

같은 전시회, 다른 출발선

byAnotherScent

앞선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처음부터 판매가 목적은 아니었다. 아직 시제품도 충분하지 않았고, 판매할 만큼 제품을 준비할 여유도 없었다. 그래도 내가 만든 제품을 외부에 처음 선보일 기회였다.


문제는 자수기였다.


새로 들여온 기계는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작업 도중 멈추기를 반복했고, 원인을 찾아 다시 작동시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행사에 가져갈 제품을 만들기 위해 24시간 넘게 기계와 씨름했다.


결국 몸이 버티지 못했다.


쓰러져 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아쉬웠다.


기계를 구입하고 공간까지 마련했지만, 정작 제품 하나를 완성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런데 이틀 뒤, 또 다른 행사가 예정돼 있었다.


‘모두의 창업 in 충남’.


같은 지역의 청년창업기업들과 함께 공동전시 부스를 꾸리는 자리였다.


첫 번째 행사를 놓친 아쉬움을 정리할 시간도 없었다. 몸을 추스르고 다시 제품을 챙겼다.


이번에는 행사장에 갈 수 있었다.


타 지역 창업기업들과 함께 전시를 설치하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차이를 마주했다.


지원금이었다.


같은 창업기업이라는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였지만, 사업을 준비할 수 있는 여건까지 같지는 않았다.


지원금 규모가 다르면 제품 개발과 홍보에 투입할 수 있는 비용도 달라진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그 차이를 체감했다.


창업지원사업에 선정됐다는 사실만으로 모두가 비슷한 출발선에 서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원금 차이만 탓할 일도 아니었다.


이번 전시에서 스스로 부족했던 부분도 분명했다.


그동안은 제품을 완성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 자수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원하는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는지, 시제품을 몇 개나 준비할 수 있는지가 우선이었다.


정작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어떻게 브랜드를 기억하게 할지는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다.


다음 전시에서는 제품만 가져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문객에게 무료로 나눠줄 작은 제품도 미리 제작해야겠다. 단순히 물건을 나눠주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드를 기억할 만한 무언가를 준비해야겠다.


물론 무료로 나눠준다고 모두 고객이 되는 건 아니다.


제작비와 시간을 들여 만든 제품이 홍보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를 통해 분명히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제품을 만드는 일과 제품을 알리는 일은 별개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


창업을 시작할 때는 자수기를 잘 다루는 사람이 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제조업을 시작했으니 제품을 만드는 능력은 기본이었다.


다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제품을 만들고, 전시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과정까지 모두 내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관 주문제작도 들어왔다.


대기업의 커스텀 자수 키링 80개.


얼마 전까지 제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도 애를 먹었는데, 이제는 정해진 수량을 정해진 날짜까지 만들어야 했다.


전시를 준비할 때는 무엇을 보여줄지 고민했다.


주문을 받고 나니 어떻게 약속한 수량을 만들어 낼지 고민하게 됐다.


처음에는 주문만 들어오면 한시름 놓을 줄 알았다.


막상 주문이 들어오니 새로운 계산이 시작됐다.


제품 하나에 걸리는 작업시간, 재료비, 제작 가능한 수량, 납품 날짜까지.


그동안은 만들 수 있는 만큼 만들었다.

이제는 고객과 약속한 만큼 만들어야 했다.


창업을 준비할 때 사업계획서에는 제품 개발, 홍보, 판매, 매출 같은 항목을 나눠 적었다.


그때는 각각의 항목이 하나의 과정처럼 보였다.


현실에서는 달랐다.


제품을 완성했다고 홍보가 끝나는 것도 아니고, 주문을 받았다고 판매가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하나를 해결하면 그다음 문제가 기다렸다.


사업계획서에서는 한 줄이었던 일이, 현실에서는 며칠씩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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