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를 열기도 전에 쓰러졌다

첫 외부행사를 준비하며 처음 알게 된 생산능력의 한계

byAnotherScent

지역 청년행사는 가게를 계약하기도 전에 처음으로 예정된 외부 행사였다.

그런데 그 행사에 가지 못했다.

가게를 열기도 전이었다.


문제는 하나를 만드는 것과, 정해진 시간 안에 필요한 만큼 만드는 것이 전혀 다른 일이었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가져갈 제품을 한꺼번에 만들어야 했다.

사실 그때는 개인적인 일도 있었고, 시제품 개발조차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행사에 가져가서 팔 만한 제품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준비했는데 전시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이번 행사 준비에 업체 대표님이 부른 금액은 300만 원이었다.

그 금액을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당시 실 끼우는 법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것을 독학으로 배우고 있었다.

틀을 끼우는 것부터 기계를 설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뒤져가며 하나씩 찾아봤다.


심지어 다시 받은 기계는 배송 과정에서 센서에 문제가 생겨 처음부터 굉음을 냈다.

정상적으로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센서 위치를 수동으로 맞춰가며 겨우 기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해야 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전문기사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서울에서 너무 멀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

결국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모르면 검색했고,
검색해도 나오지 않으면 직접 만져봤고,
고장 나면 원인을 하나씩 지워가며 다시 움직였다.


창업을 시작하면서 장비뿐 아니라 교육까지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기계 앞에 서고 보니 내가 기대했던 교육과 지원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창업교육에 쓴 돈이 공중분해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인테리어는 매장 공사비도 계획보다 400만 원 이상 늘어난 상태였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수도를 가리기 위한 가벽부터 자수기용 단독 전선 추가까지,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비용이 계속 붙었다.


여기에 다시 300만 원을 더 쓸 것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연예인들이 오는 행사였고 사람도 많이 모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먹고 즐기기 중심인 행사에서 내 자수제품이 실제로 얼마나 팔릴지는 알 수 없었다.

사람이 많이 오는 행사와 물건이 많이 팔리는 행사는 같은 말이 아니었다.


‘만약 한 개도 안 팔리면?’


그 생각을 하자 300만 원이라는 숫자가 다르게 보였다.

첫 행사라는 이유로 판매 가능성도 확인하지 않은 채 추가 비용을 쓰는 건 부담이 컸다.

결국 추가 예산도, 현장 판매도 포기했다.

대신 전시를 선택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하나의 판단이었다.


처음 나가는 행사라고 해서 반드시 물건을 많이 만들어 들고 갈 필요는 없었다.

아직 무엇이 팔릴지도 모르는 단계라면, 먼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반응을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자수기는 이제 조금씩 다룰 수 있게 됐고, 제품도 하나씩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기계가 멈추면 어디부터 봐야 하는지도 전보다는 알 것 같았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장비를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만들면 된다고.


평소라면 하나를 만들고 문제가 생기면 멈춰서 원인을 찾아도 됐다.

실이 끊어지면 다시 끼우고, 기계가 멈추면 살펴보고,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도안을 수정해서 다시 만들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결국 하나가 나오면 됐다.


행사는 달랐다.

날짜가 정해져 있었다.

그날까지 제품이 나와야 했다.

기계가 멈춘다고 행사 날짜가 미뤄지는 것도 아니었고,

내가 아직 기계를 익히는 중이라고 시간을 더 주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으로 '만드는 시간'에 마감이 생겼다.

그리고 그때부터 계산이 계속 틀어졌다.

자수기는 자동으로 움직인다.

도안을 넣고 시작 버튼을 누르면 기계가 알아서 수를 놓는다.

처음에는 그게 곧 생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계가 돌아가는 시간과 내가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시간은 달랐다.

실이 끊기기도 했고, 중간에 멈추기도 했다.

한 번 멈추면 그동안 생산도 같이 멈췄다.

몇 시간 뒤 돌아와 보니 제품이 완성되어 있는 게 아니라, 기계가 진작 멈춘 채 그대로 있을 수도 있었다.


결국 계속 확인해야 했다.

멈추면 다시 움직이고,

다시 멈추면 원인을 찾고,

또 돌렸다.


행사 날짜는 가까워지는데 생각한 만큼 수량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기계를 더 오래 돌렸다.

하루를 넘겨 24시간 이상 기계를 계속 가동했다.

그런데 기계만 24시간을 돌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기계가 멈추는 순간 다시 봐야 했기 때문에 나도 그 옆을 떠날 수 없었다.

잠도 기계 옆에서 잤다.

정확히 말하면 제대로 잤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기계 소리가 멈추면 다시 일어났다.

그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첫 행사였고,

준비한 것은 보여주고 싶었고,

이미 잡힌 기회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았다.


이것만 만들고 자야지.

이 수량까지만 채우자.

이 문제만 해결하고 쉬자.

그렇게 계속 하루를 뒤로 미뤘다.

그리고 결국 몸이 먼저 멈췄다.

쓰러졌다.


지역 행사에는 가지 못했다.

첫 외부행사를 위해 제품을 만들고,

기계를 밤새 돌리고,

행사에 맞추려고 계속 작업했는데

정작 행사 당일에 내가 갈 수 없었다.


조금 허무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기계 한 대가 어느 정도를 만들 수 있는지,

제품 하나에 실제로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문제가 생겼을 때 얼마나 일정이 밀리는지,

그리고 내가 하루에 감당할 수 있는 작업량이 얼마인지.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일정부터 잡았으니까.

사업계획서에는 생산량을 숫자로 적을 수 있었다.


하루 몇 개.

한 달 몇 개.

판매 목표 몇 개.

실제 생산은 그렇게 계산되지 않았다.


기계는 멈췄고,

불량은 생겼고,

도안은 수정해야 했고,

나는 잠을 자야 했다.

마지막 항목을 가장 늦게 알았다.

사람도 생산과정에 포함된다는 것을.


처음에는 기회가 많으면 좋은 줄 알았다.

행사가 들어오면 나가고,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고,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업도 커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게를 열기도 전에 하나를 먼저 배웠다.


만들 수 있는 것과, 제시간에 필요한 만큼 만들 수 있는 것은 다르다.

기회를 잡는 것과그 기회를 소화할 수 있는 것도 달랐다.


첫 외부행사는 그렇게 놓쳤다.

그렇다고 일정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화가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기계를 세워둘 수는 없었다.

누군가 다시 알려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그냥 내가 처음부터 다시 혼자 배우기로 했다.

그렇게 겨우 기계를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에 첫 행사가 들어왔다.

이전 13화9평 가게에 굳이 문을 하나 더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