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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셔요?”
금요일 밤, 오랜만에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쯤이면 퇴근해 저녁 식사도 마쳤을 시간이겠지.
“혼자 사는 아빠가 이 밤에 뭐 하겠냐. 성경 읽고 있었지.”
“외로워서 주님과 만나는 겁니까?”
“믿음으로 뵙는 거지. 아빠가 너랑 누나 위해 맨날 기도한다. 너도 교회 좀 나가라.”
“또 그 소리. 각자의 종교는 존중합시다.”
아빠는 새어머니가 돌아가시고부터 전에는 도통 나가지 않던 교회에 몰두했다. 지난 추석 때 방문했을 때는 이제는 텔레비전도 안 보고 라디오로 매번 기독교 방송만 듣는다고 했다.
“그래, 학교는 잘 다니고? 웬일로 전화냐?”
“그냥 안부 전화. 내일 학교에서 강화 가는 일도 있고 해서.”
“토요일인데 학교에서 여길 온다고? 왜?”
“교사들 워크숍. 일 년에 한 번씩 간대요. 올해는 강화도 마니산이라네.”
“집에도 들렀다 가는 거야?”
“아니요. 그냥 강화 가니까 알고나 있으시라고.”
“알겠다. 아빠 걱정하지 말고, 너나 행복하게 잘 살아라.”
늘 같은 말로 전화 통화를 마무리하는 아빠였다. 당신은 이제 더 욕심이 없으니, 어쩌면 너만이라도 행복하라―는 그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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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워크숍에는 교장을 비롯해 서른 명이 넘는 교사들이 참가했다. 강화도행 전세버스에 탑승한 다수가 남교사들이었는데, 일부 섞여 있는 여교사는 대부분 기간제 교사들이었다. 이사장의 아들인 교감과 체육 교사 M은 워크숍에 불참했다.
임용시험을 삼주 정도 앞둔 주말이라서 공부에만 전념하고 싶은 휴일이었지만, 기간제 교사 신분이다 보니 교사들 행사에 빠지는 게 아무래도 부담이 됐다. 공립과 사립 임용시험의 합격을 백 퍼센트 장담할 수 없는 입장에서 내년 기간제 재계약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워크숍 불참’이라는 눈에 띄는 마이너스 요소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왕 가게 된 마당에 제대로 바람이나 쐬고 싶었다. 우선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출발한 전세버스가 강화 제2 대교라고도 불리는 초지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내 나이 스무 살쯤 완공된 다리이니, 어느덧 이 아치형의 석교가 섬과 뭍을 이은 지 십오 년 가까이 지났다. 이 다리를 건설할 때 중고등학교 동기들 다수가 이곳에서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금은 연락도 닿지 않는 오래전 친구들의 땀으로 빚은, 바다 위의 길을 나는 지나고 있는 셈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서린 강화도지만, 오히려 학교 졸업 후에는 일 년에 한두 번만 방문하는 낯선 곳이 되고 말았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수록 강화를 찾는 게 더 불편했다. 아무래도 이곳에선 나를 아는 사람이나 학창 시절 친구를 만날 확률이 높았으니까. 대학 졸업 후 바로 중등임용고시에 합격했거나, 신춘문예에 이른 나이에 당선돼 지금보다 유명한 시인으로 자리 잡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더 자주 이곳을 방문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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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보다는 교사 엠티에 가까운 모임이었다. 산악회 회원들의 주말 단체 등산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최종 목적지인 강화도 마니산에 도착하기 전 고려궁지 아래 식당가에 들러 점심으로 묵밥과 두부김치를 먹었다. 이사장의 아들인 교감이 불참한 상황에서, 아무리 외부 공모 교장이라곤 하지만 다음으로 가장 눈치가 보이는 대상은 교장이었다. 그러나 교장은 그런 낌새를 진즉에 파악했는지 교사들에게 자기 신경 쓰지 말고 막걸리 반주라도 곁들이며 편히 먹으라고 말했다. 산에 오르기 전이라 대부분 한두 잔만 마시거나 아예 술을 먹지 않는 교사도 많았다.
사십 대 초반의 슬롯 정교사 S가 옆자리에서 권하는 바람에 나는 막걸리 한 잔을 엉겁결에 마셨다. 그는 삼 년 동안 우선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다가 작년에 사립 임용시험에 합격해 마침내 정교사가 되었다고 들었다.
“강민 쌤과는 교과랑 부서가 다르다 보니 많이 얘기를 나누지 못했네요. 많이 드세요.”
“감사합니다.”
“환경봉사부 일 힘들죠? 특히 여름에 분리수거장 지도하느라 고생한 거 내가 잘 알아요.”
“아닙니다. 고생은요.”
S교사의 잔이 비어서 이번에는 내가 막걸리 병을 들어 그의 잔에 술을 따랐다.
“나도 이 학교 처음 와서 이 년간 맡은 일이 그거였거든요.”
“아, 그러셨구나.”
“내가 가끔씩 보니까 분리수거하는 학생들 꼼꼼히 잘 지도하시더라고요. 조금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계속 공부하고 있죠?”
“아, 임용이요? 네.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공부 놓지 말고 계속하세요. 그러다 보면 기회가 있을 거예요. 사립이든 공립이든 계속 준비하고 있어야 찬스가 오거든요.”
“네. 명심할게요.”
교과도 다르고 부서도 다른 S교사가 신경 써서 그렇게 말해주니 뭔가 먹은 마음 없는 진심이 느껴졌다. 환경봉사부 출신에 분리수거장을 맡아본 업무 선배라고 하니 왠지 더 친근감이 들었다. 그도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면서 계속 공부하고 준비했던 걸까. 참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그 기회를 잡은 것인가.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내게도 그런 날이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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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입구를 따라 쭉 걷다 보면 삼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한 넓은 숲길이 나온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도 곧잘 소풍이나 체험 학습을 오던 곳이었다. 익숙한 추억의 장소를 우선고등학교 교사들과 방문하니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숲길 중간에 갈림길이 나오는데 학창 시절엔 친구들을 따라 직선 코스인 계단로로 산을 올랐다. 그 길은 가파른 돌계단으로 이뤄진 더 빠른 코스였다. 그런데 선배 교사들 다수가 조금은 긴 코스인 단군로를 따라 등반하는 걸 보니 나도 오늘만큼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따라 산을 오르고 싶어졌다. 올해 내 생활도 서른 중반 인생에서 가보지 않은 최초의 길 아니던가. 비록 멀리 돌아가지만 목표를 향한 에움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마음이 내겐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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