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점수는요

54~65

by숨 빗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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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도 지나고 구월이 끝나가며 이제 더위가 물러갔다 싶을 즈음 국어 정교사 L이 환경봉사부 교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강민 쌤, 오렌지 캬라멜이라고 알아요?”

“그거 에프터스쿨 걸그룹 멤버 세 명이 만든 유닛 그룹 아니에요?”

“잘 아시네. 이번 축제 때 오렌지 캬라멜 노래 중에서 ‘카탈레나’란 곡으로 공연을 할까 하는데요.”

“네? 누가요?”

“누구긴요. 또 우리 신입 교사들이죠.”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안한 표정으로 내게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창의부에서 가을 축제 때 신입 선생님들은 무조건 단체 공연을 준비해야 한대요. 늘 그래왔다나 뭐라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시월 중간고사 후에 바로 학교 가을 축제가 이어지는데, 매년 신입 기간제 교사를 많이 채용하는 학교답게 그들에게 축제의 마지막을 맡긴다고 한다. 다시 말해, 학생들 공연 후에는 마지막 순서가 신입 교사들의 댄스 공연이라고, 그게 이 학교의 오랜 관례라고 했다.

“저도 당황스럽긴 한데요. 힘없는 후배 교사들이 어떡하겠습니까. 까라면 까야지.”

“그게 말이 되나요? 요즘 세상에 학생들 앞에서 선생님들이 무슨 장기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교감이 창의부 부장한테 무조건 해야 한다고 못 박았대요. 창의부 부장은 한술 더 떠서 기왕이면 남자 쌤들이 여자가수들 춤 따라 하는 게 재밌겠다면서, 여자 쌤들이랑 같이 혼성팀으로 ‘카탈레나’ 공연하래요. 곡 지정까지 해버렸다니까요.”

체육대회 축구 경기에 강제로 참여시킨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학생들 앞에서 춤까지 추라는 말이었다. 나는 순간 진심으로 화가 났다.

“신입 교사가 무슨 학생들 기쁨조도 아니고. 전 그런 거 안 할래요. 춤도 출 줄 모르고, 못 추는 춤 억지로 따라 하면서 학생들 놀림감 되고 싶지 않아요.”

내 목소리가 좀 커졌을까. L이 발끈하며 내게 말했다.

“왜 저한테 언성을 높이세요? 저도 피해자라고요. 저한텐 바카라임지고 먼저 연습해서 축제 전까지 선생님들한테 춤 가르쳐주라고 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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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때부터였을까. 우선고등학교에 대해 조금씩 아쉬움이 들었던 것은. 때론 몸과 마음이 고달플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교사 생활을 시작한 곳이기에 우선고등학교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하지만 기간제 교사 온라인 카페나 동료 교사들을 통해 다른 학교의 정보를 접하면 접할수록, 우선고등학교의 학교 문화에 문제가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젊은 교사들에게 댄스 공연을 강제하는 건 요즘 시대엔 뉴스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었다. 공립학교뿐 아니라 대다수 사립학교도 이런 비민주적인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곳은 아직 이런 구태를 답습하는 걸까.

바로 옆자리의 영어 기간제 교사 H는 함께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갈 때마다 내게 우선고등학교에 대한 불만을 자주 토로했다.

“제가 기간제 생활 오 년째고 여기가 네 번째 학교인데, 이런 곳은 진짜 처음 봤다니까요. 강민 쌤은 여기 다닐 만해요?”

“흠… 처음엔 좀 빡셌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해서 괜찮은 거 같아요.”

“환경부장이 내년에 여기 정교사 임용될 수도 있으니 강민 쌤한테도 관리자들한테 잘 보여라, 뭐 이런 비슷한 말 했죠?”

“쌤한테도?”

“그런 부장 놈들이 더 나빠. 더 부려 먹으려고 하는 말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주말에 출근해서 애들 봉사 지도 좀 하라는데. 아, 열이 확 받아서 부장이랑 좀 싸웠죠. 쌤은 처음이라 잘 모르겠지만 여기보다 좋은 학교 인천에도 많아요. 난 올해만 지나면 여기 남으라고 부탁해도 안 남을 거예요.”

“그런가요?”

“교직원 회의만 해도 그래요. 그게 회의인가? 그냥 일방적인 통보고 훈계지. 맨 앞자리에서 관리자들 거만하게 앉아 있는 거 좀 봐요. 난 무슨 북한 김정일, 김정은인 줄 알았다니까.”

“에이, 그래도 그건 너무 나갔다.”

“딱 보면 알아요. 좀만 지나 봐. 아마 더 한 일들이 펼쳐질 걸요.”

그때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학생 때에도 경험하지 못한, 축제의 무대 한가운데에 강제로 서게 될 줄은. 재미있다고 박수치는 학생들 앞에서 우선고등학교 신입 교사로서 화려한 군무(?)를 추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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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작은 까탈레나 (Red Sun)

나도 모르게 빠져 들어가

도도한 콧대 까탈레나 (Red Sun)

Jutti Meri Oye Hoi Hoi 홀려 들어가


어머머머 멋있어 반했어

어쩜 같은 여자끼리 봐도 참 멋있어

까칠까칠 하지만 한 번만

보고파 알고파 함께 춤 추고파


본격적인 춤 연습이 시작됐다. 국어 교사 L이 보내준 유튜브 주소를 클릭하니 오렌지 캬라멜의 ‘까탈레나’춤을 단계별로 가르쳐주는 댄스팀 영상이 재생됐다. L은 영상 주소를 휴대폰 메시지에 첨부하면서 하소연 섞인 부탁을 덧붙였다.


- 이거 제가 원해서 하는 거 아니니까 저 미워하지 마시고 한 번만 도와주세요. ㅠㅠ 내일 연습 오시기 전에 전체 노래랑 간단한 동작만이라도 미리 익혀와 주세요. 부탁합니다.


이것도 무슨 대결이라고 경쟁이 붙었다. 신입 교사를 절반으로 나누어 나랑 L, 영어 기간제 교사인 H와 여교사 C가 오렌지 캬라멜의 ‘까탈레나’를 공연하기로 했고, 역사, 수학, 지구과학 기간제 교사 P, J, K는 GOD의 ‘하늘색 풍선’에 맞춰 댄스를 준비한다고 했다.

왜 우리 팀만 여자가수 곡일까. 여자가수 노래를 싫어한다는 게 아니라, 여자가수만의 남다른 춤 선을 ‘춤’의 ‘ㅊ’자도 모르는 내가 흉내낸다는 거 자체가 너무 창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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