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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간의 중간고사가 끝나고 금요일, 바쁘게 채점을 끝마치고 교무실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좋은 향기가 났다.
‘무슨 냄새지? 누가 향수라도 뿌린 건가?’
그렇게 짐작하고 주위를 둘러봐도 나만 혼자 공강(空講)인지라 환경봉사부 교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그때 부장 교사 바카라상 위에 놓인 꽃바구니가 눈에 띄었다.
열린 창으로 들어온 바람이 저 꽃의 향기를 내게 실어 왔나 보다. 이번 주말 일요일은 5월 15일 스승의 날이었다. 학생 중 누군가에게 미리 받은 것일까. 올해부터 시행된다는 이른바 ‘김영란법’ 영향으로 재학 중인 학생은 교사에게 꽃을 전하기 어려워질 거라던데. 졸업한 제자 중 한 명이 찾아왔던 건지도 모른다. 환경부장도 학생들에겐 때론 고맙고 훌륭한 선생님일 수 있겠지. 교무실과 교실에서의 모습은 또 다를 것이다.
나를 오래도록 기억해 주는 제자가 언젠가 내게도 생길까. 지금 수업하고 있는 고3 학생 중 몇 명이나 나를 기억해 줄까. 아니 그런 걸 기대하며 교사 생활을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
홀로 있는 교무실, 오후의 상념들이 바람 부는 연둣빛 교정을 따라 출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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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 쌤, 다음 주 수요일 체육대회 때 포지션 뭐하고 싶어요?”
3학년 체육을 담당하는 교사 M이 환경봉사부 교무실로 찾아와 내게 물었다. 영어 교사 H로부터 그가 교감의 동생이라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우선고등학교 이사장의 셋째 아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부장님이 말 안 하셨어요? 우리 학교는 체육대회 때마다 담임 대 비담임 이벤트 축구 경기하잖아요.”
“네?”
교사들의 축구 시합으로 체육대회 일정을 마무리하는 게 우선고등학교의 전통이라고 했다. 일단 학생들이 재미있어하고, 교사뿐 아니라 관리자들도 흥미롭게 관람하는 경기라고. 정작 나는 과거 중고등학생 때도 교사들끼리 그런 이벤트 경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남학생들이라 특히 해외 축구 덕후가 많아요. 그중에서 말 잘하는 두 명이 구령대에서 마이크 잡고 실시간 중계도 할 거예요. 선생님들 이름 말고 별명으로 부르면서요. 얼마나 웃긴데요.”
“아, 재밌긴 하겠네요. 그런데 전 운동신경이 없어서…”
신입 교사는 무조건 참여하는 게 학교 원칙이라고 했다. 그 가운데서도 남자 신입 기간제 교사는 의사와 상관없이 꼭 해야만 하는 거라고.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며 더는 다른 얘길 덧붙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 의사를 세심히 물어가며 학교 일을 진행한 경우는 많지 않았으니까. 학교가 대개 이런 방식으로 행사를 하는가, 하고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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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축구 이후론 단체 운동 경기는 처음이었다. 스포츠 관람은 좋아하지만 이제는 체력이 너무 떨어져서 직접 경기를 뛰는 건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꼭 뛰어야 한다니 어쩌겠는가.
경력과 상관없이 올해 우선고등학교로 처음 온 남자 교사는 모두가 필수 참가 대상이었다. 역사, 수학, 지구과학 기간제 교사 P, J, K은 물론이고, 올해 사립 정교사로 임용된 국어 교사 L도 포함됐다. 나보다 더 젊은 교사들 사이에서 제대로 뛸 수나 있을까. 괜히 망신만 당하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됐다.
그래도 막상 체육대회 당일이 되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들떴다. 교사로서 처음 경험하는 실외 행사이기 때문이었다. 오월 중순의 볕은 조금 따갑게 느껴졌지만, 답답한 교실을 벗어나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끼게 된 고3 학생들과 하루 수업을 건너뛰게 된 교사들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얘들아, 파이팅!”
“3반 이겨라!”
단체 줄넘기와 반 대항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흥미진진한 이어달리기 결승으로 오전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점심 식사 후엔 1, 2학년 축구 결승과 마지막으로 교사들의 이벤트 축구 시합이 예정돼 있었다.
“강민 선생님은 축구 좀 하나?”
“아니요. 잘 못합니다. 교장 선생님도 뛰십니까?”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교장이 학생들의 축구 결승을 지켜보며 운동장 한편에서 몸을 풀다가 내게 말을 걸었다. 교감이 이사장의 아들인 것과 다르게, 교장은 그들과 관계없이 교장 공모로 우선고등학교에 오게 된 외부 인사라는 걸 들었다. 인근 사립 고등학교에서 수학 교사로 근무하다가 우선고등학교 교장직에 도전했다고 한다. 오십 대 중반은 교장이라는 위치에 욕심이 생기는 나이일까. 그러나 아침마다 이사장과 교실을 돌며 학교 청결 상태를 점검받는 공모 교장의 쩔쩔매는 신세가 기간제 교사인 나보다 그리 나아 보이지 않았다.
“교장까지 이벤트 경기에 참여하는 줄은 모르고 있었는데.”
“담임 열한 명과 비담임 열한 명의 시합 아니었나?”
몇몇 나이 든 정교사들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언뜻 들렸다. 내부 승진으로 교장이 되지 못한 그들만의 질투이리라.
“교장이라는 사람이 채신머리없이 애들 앞에서 뭔 축구 시합이래.”
“그러게 말입니다. 학교 창피하게스리.”
교장은 이벤트 축구 경기에 뛰어선 안 된다는 교사 윤리강령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교장은 그들의 말을 못 들었는지, 아니면 듣고서도 한 귀로 흘려버렸는지 별 반응이 없다가 내게 말했다.
“내가 이래봬도 조기 축구회 회원이에요. 빠질 수 있나? 내가 비담임 팀 최전방에 설 테니 젊은 강 선생이 뒤에서 잘 좀 지원해 줘요.”
“아,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거야말로 진정한 군대 축구의 부활 아닌가 싶었다. 군대에서도 축구 좋아하는 말년 병장들 때문에 매일 억지로 끌려 나가서 패스만 했는데. 여전히 ‘군대스리가(군대와 독일 프로 축구 리그 분데리스가를 합친 말)’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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