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마음

31-43

by숨 빗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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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좋은데, 오래간만에 어디 가볼까?”

연인이 말했다.

“그래, 거의 두 달 동안 긴장 속에서만 산 것 같네. 오늘은 아예 인천 밖으로 나가보자.”

우선고등학교에 근무한 지 한 달 반이 지났을 즈음, 머리도 식힐 겸 연인과 서울 나들이를 계획했다. 평일 업무와 수업 준비, 임용시험 공부에 매진하느라 늘 시간이 부족했다. 몹시 지쳐 있었지만, 화사한 봄의 끝자락을 그냥 흘려보내기는 아쉬웠다.

요즘 윤동주 시를 학생들과 공부해서인지 윤동주 시인과 관련된 시설에 방문해 보고 싶었다. 이미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는 종로의 윤동주 문학관 외에도 신촌 연세대학교 캠퍼스에도 시인의 기념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시인이 연희전문학교 시절 머물던 기숙사 이층에 윤동주 기념관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대학 교정에 핀 봄꽃을 구경하고, 윤동주 기념관에서 시인에 대해 다시 공부해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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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회사에서 사내 연애를 할 때보다 연인을 만날 기회가 부쩍 줄었다. 임용시험 공부와 기간제 교사 일을 병행하다보니 평일 저녁엔 여유가 없었고, 주말에도 겨우 하루 정도만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자주 시간 못 내서 미안해.”

“괜찮아. 처음 선생님 시작해서 정신없잖아. 밤마다 통화도 하는데 뭐.”

연인의 권유로 다시 시작한 도전이지만, 여유로운 데이트는 고사하고 함께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실 시간도 부족했다. 그녀도 내심 서운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으면서, 오히려 만날 때마다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전철을 타고 신촌역에 도착한 우리는 윤동주 기념관에 가기 전 신촌 로터리에 있는 종합 서점에 잠시 들렀다. 대학 시절 틈날 때마다 찾곤 하던 단골 서점이었다. 문학동아리에 가입한 후론 주로 일층 시집 코너에서 시간을 보내던 나였다.

졸업 후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서점은 크게 변한 게 없어 보였다. 출판사별로 시집 시리즈가 정돈되어 있는 서가를 한참 바라봤다. 그런 나를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연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자기 시집도 얼마 안 있으면 저기 어디쯤 꽂혀 있겠지?”

“저 유명한 시인들 사이에? 설마 그럴 리가.”

그것은 내게 힘을 주기 위한 연인의 과장된 말이었을 것이다. 쑥스러운 나머지 그럴 리 없다고 대꾸했지만, 그래도 그 순간 마음 한쪽 어딘가가 따뜻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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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그날 윤동주 기념관에 방문하지 못했다. 윤동주 기념관은 물론이고 연세대학교 정문조차 넘지 못했다. 서점을 나와 신촌 문화의 거리를 걷던 중 내가 심한 어지럼증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괜찮아? 갑자기 왜 그래?”

“잘 모르겠어. 멀미도 아니고, 이런 증상은 처음이라. 갑자기 땅이 흔들리는 것 같고 어지럽네.”

서점에서부터 머리가 조금 아팠다. 좀처럼 없던 서울 나들이였기에 잠시 어지럽다고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참고 계속 걸을수록 어지럼증뿐 아니라 구역질까지 났다. 결국 횡단보도 앞에서 걸음을 멈춘 채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갑자기 대체 왜 이러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머릿속으론 계속 증상의 원인을 찾았지만 그럴수록 몸을 더 가누기 힘들었다. 동시에 모처럼의 데이트를 망칠까봐 눈치가 보이면서 연인에게 미안함이 들었다.

“안 되겠다. 가는 거 포기하자. 아까 서점에서도 어지럽다고 하더니.”

내 손을 꼭 잡고 옆에서 부축하던 연인이 말했다.

“그러게. 갈수록 어지러움이 심해지네. 계속 토할 거 같아.”

“데이트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당장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그 정도까진 아니야. 잠깐 쉬면 괜찮을 거야.”

결국 우리는 사월의 봄꽃도, 젊음의 상징인 대학 캠퍼스와 윤동주 기념관도 구경하지 못했다. 나들이는커녕 신촌 현대백화점 앞 정류장에서 광역급행버스를 타고 급히 인천으로 돌아가야만 했으니까. 인천으로 가는 동안에도 멀미 비슷한 어지럼증과 구토 증상은 계속됐다. 그래도 차에서 내리고 집에서 몇 시간 누워 있으면 회복될 것이라 생각했다.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 없었기에 더 그랬다.

버스에서 눈을 감고 어지럼증을 간신히 참아내며, 어서 빨리 집에 도착하기만을 바랐다. 그런 와중에도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오랜만에 사람들이 너무 많은 곳에 가서 그런가. 학교에서도 늘 많은 사람 곁에서 일하는데. 혹시 티브이 속 연예인들이 자주 겪는다던 공황 장애 비슷한 건가. 근데 내가 왜? 그렇다고 이리 갑작스레 몸이 아파질 수도 있는 건가. 무슨 급성 바이러스라도 걸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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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 부평역 앞에서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집 근처 건널목 신호등 아래서 나는 한 번 더 주저앉았다. 증상은 더 심해졌다. 머리가 핑핑 돌다 못해 땅이 파도처럼 출렁이기 시작했다. 볕 좋은 봄날 속 행인들은 그런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갔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이게 대체 뭐지? 머리에 무슨 이상이 생겼나? 간신히 일어나 다음 신호에서 건널목을 걷는데, 2차선 도로 그 짧은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횡단보도이기에 중간에 멈춰서 쉴 수도 없었다.

간신히 집 앞에 도착해 난간을 부여잡고 3층 옥탑방으로 올라가 누웠다. 식은땀이 줄줄 흘러 온몸이 축축했다. 그래도 연인이 걱정할까 봐 그녀에게 ‘괜찮아, 집에 잘 도착했어. 걱정 말고 쉬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낡은 침대 프레임이 병자의 신음처럼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침대 머리맡에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연인의 답장이었다.

‘정말 괜찮은 거지? 나도 잘 도착했어. 너무 아프면 참지 말고 바로 병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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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갑자기 죽을 수도 있는 건가?

난생처음 겪는 일이기에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헛기침이 났고, 구토 증세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심해지고 있었다.

옥탑방에 누워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방안이 계속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더는 안 되겠다 싶었다. 거의 의식을 잃어가던 찰나, 주인집에게 양해를 구해 응급차를 불렀다. 평소 친분이 있던 주인집 내외는 옥탑방까지 올라와 내 핸드폰으로 바로 직전까지 메시지를 주고받은 연인에게 연락을 했다.

한달음에 달려온 연인의 간호를 받으며 나는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약을 투여받고 이리저리 머리 사진을 찍어본 뒤였다. 한 시간 가까이 잠들었던 것 같다. 깨고 나서 다소 진정이 되었지만, 어지럼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만 신경을 쓴다는 느낌이 들면 다시 어지러웠다.

담당의는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 남자 의사였다. 그는 사진상으로는 큰 이상이 없고 혈관이 다소 확장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곤 최근 갑작스럽게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스…트레스요? 글쎄요.”

“뭔가 주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거나…….”

“아…….”

나는 새로운 온라인 게임으로 옮긴 지 이제 막 한 달 반이 되어간다고 말했다. 의사는 아무래도 그 영향이 제일 큰 거 같다고 판단했다. 마음을 편히 먹고 지나치게 예민해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우선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나도 모르게 정신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던 걸까. 공립 임용시험 공부를 하면서도 우선고등학교의 사립 정교사 임용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내게도 분명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사립 임용에서는 1차 필기시험에 통과하면, 2차 관리자 면접에서는 아무래도 기존 근무 태도가 합격 여부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았다. 공립‧사립 정교사 임용에 모두 실패할 것을 대비해 우선고등학교 기간제 재계약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고등학교 관리자들 눈에 들기 위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뒤로 늘린 근무시간이 먼저 떠올랐다. 깔끔한 옷차림 준비에서부터 다른 교사들과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해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했다. 복도를 순회하며 교실을 지나가는 교감, 교장에게 내 수업이 어찌 보일지 노심초사하는 건 일상이었다. 저녁뿐 아니라 공강 때마다 수시로 찾아가 청소하던 분리수거장에서 오히려 숨통이 트였으니까.

지나치게 잘해 보려 애쓴 탓에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탈이 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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