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

12~20

by숨 빗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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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2일 월요일. 우선고등학교로 출근하는 첫날이었다. 아직 3월 새 학기 전이었으므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3학년 자연 계열 5개 반의 국어 과목인 ‘화법과 작문’ 수업을 배정받았다. 한 반당 일주일에 4회 수업. 총 시수는 주당 20시간. 비담임어서 그럴까. 수업 시수가 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 분장도 완료되었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는 환경봉사부에 배치됐다. 환경부장은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오십 대의 한문 교사였다. 환경부장은 내게 이 학교만의 특색 사업인 학생들 저축 업무를 맡아달라고 했다. 이사장이 학생들의 저축 습관을 기르기 위해 입학식 때부터 모든 학생의 적금 통장을 만들게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해마다 저축왕을 선발해 연말에 시상한다고도 덧붙였다.

환경부장은 학교 근처 백반집에서 점심을 사주며 따로 내게 한 가지 일을 더 부탁했다.

“이사장님이 학교 청결을 굉장히 중요시하거든요. 나는 강민 선생님이 우리 환경부에서 제일 중요한 업무인 분리수거장 관리를 맡아줬으면 좋겠어. 전통적으로 그 업무 잘한 사람이 정교사로 임용도 잘 됐어요. 또 알아? 내년에 우리 학교에서 국어 정교사 뽑을지. 일 년 동안 궂은일 열심히 하면서 이사장님이랑 관리자 선생님들께 눈도장 좀 잘 찍어놔요.”

그렇게 해서 봄 방학(정확히는 겨울이지만)이 끝나가는 2월 마지막 주 교사 출근일 첫날에 나는 주 20시간의 수업 시수에 학생저축 업무, 그리고 분리수거장 총바카라임자라는 추가 업무를 받았다. 서른 중반 무경력 교사요, 비담임인 마당에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업무 분장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는 매일 아침 조회 시간과 방과 후 청소 시간마다 목장갑을 끼고 소매를 걷어올린 채, 학생들이 마구잡이로 쏟아놓고 간 쓰레기를 종류별로 하나하나 골라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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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 시작을 하루 앞두고 있었다. 이제 막 우선고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이라면 신입교사인 나와 입장이 비슷할 텐데, 시작부터 고3수업 담당이라니 더 긴장이 됐다. 첫 수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첫날 진도를 나가야 하는지부터가 고민거리였다. 당장 대입을 앞둔 고3이니까 바로 강의식 수업을 해야 할까. EBS수능연계교재로 수업을 할 계획인데 학생들이 모두 교재를 구입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기간제 교사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서 첫 수업에 대한 고민 글을 올렸더니 오래지 않아 친절하고 긴 댓글이 달렸다.


↳ 고3이어도 어차피 수업 오티는 해야 하잖아요. 첫날부터 수업하면 고3도 싫어해요. 의외로 수능특강 구입하지 않은 애들도 많고요. 첫날은 오티용 학습지 만들어서 준비물이나 수업 규칙 같은 거 알려주고 자습 주세요. 자습 주는 거 눈치 보이시면 돌아가면서 그냥 자기소개활동 시켜도 됩니다. 창의적으로 하는 애들 과세특에 반영해 준다고 하면 열심히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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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마구 두근거렸다. 하지만 처음부터 신입 교사인 티를 낼 순 없었다. 그래서 첫 수업을 하는 3학년 6반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학생들을 일부러 쳐다보지 않고 분필부터 들었다. 칠판에 ‘강민(姜敏)’이라는 내 이름을 한자까지 포함해서 크게 적었다.

“안녕하세요. 앞으로 여러분과 일 년 동안 ‘화법과 작문’ 수업을 하게 될 국어 교사 강민이라고 합니다. 이름은 외자니까 기억하기 쉬울 거예요.”

“안녕하세요.”

전부 다는 아니지만 제법 많은 학생들이 같이 인사를 하며 호응해줬다.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고3이어도 오늘은 첫 수업이니까 바로 진도를 나가진 않을 거예요. 교재는 교과서도 일부분 쓸 수 있지만, 여러분은 수능시험을 봐야 하니까 ‘수능특강 화법과 작문’과 ‘수능특강 문학’을 위주로 수업할 겁니다. 이번 주 안으로 모두 준비 해주세요.”

“오늘은 뭐해요? 자습해요?”

“바로 자습하기보다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니까 자기소개를 해볼까 하는데…”

“선생님, 1교시부터 오늘 자기소개만 벌써 세 번째 하는 거예요.”

“그래도 내가 여러분을 모르니까, 국어 시간인 만큼 이름 삼행시로 자기소개를 준비해 주세요. 멋지게 발표한 친구들은 과세특에도 써 줄게요.”

그때 맨 앞줄에서 더벅머리를 한 안경 낀 학생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화법과 작문 수업 때 자기소개를 잘 하는 학생―이라고 써주신다고요?”

“아, 꼭 그렇게 직접적으로 쓰는 건 아니고…”

몇몇 학생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왠지 처음부터 학생들과의 기 싸움에서 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선고등학교에서 3년째 생활을 하는 고3들인 만큼 새로운 교사에게도 별로 낯가림이 없어 보였다. 나도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자, 활동지도 준비해 왔으니 거기에 자기 이름 쓰고 그걸로 자기소개 삼행시를 지어보세요. 돌아가면서 발표하고, 나중에 걷어갈 겁니다.”

“쌤!”

또 그 더벅머리 학생이었다.

“왜?”

“전 쌤 이름으로 지으면 안 돼요?”

“넌 네 이름으로 해야지. 왜 내 이름으로 하니? 게다가 내 이름은 두 자뿐인데.”

“그래도 생각난 김에 하고 싶어요.”

“네 이름은 뭔데?”

“최호준이요.”

호준이라는 학생의 의도가 잘 파악되지 않았다. 이대로 요구를 들어줘야 할까.

“그럼 호준이는 발표는 선생님 이름으로 하고, 활동지에는 네 이름 석 자로 다시 지어서 제출하도록.”

“발표는 지금 바로 할게요. 빨리 운 띄워주세요.”

얘는 뭐 이리 자기 마음대로일까. 그래도 먼저 발표한다고 하니 그러라고 허락한 뒤 내 이름 ‘강민’으로 운을 띄워주었다.

“강.”

“강제로 자기소개 시키지 마세요.”

나는 순간 움찔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마저 운을 뗐다. 앞자리 학생들의 웃고 있는 표정이 보였다. 호준이는 자기가 말하면서도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느껴졌다.

“민.”

“민폐니까요, 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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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청소 시간마다 얼굴을 익힌 3학년 환경도우미 학생이 학급 쓰레기통을 분리수거장에 비우고 가며 내게 말했다.

“선생님, 올해 처음 오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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