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흰 가운이라는 안전한 꿈

by부지러너

아버지는 늘 성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대학에 가야 하는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그 질문에 대한 아버지의 답은 비교적 분명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전문직을 갖는 것.

그중에서도 의사나 치과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좋은 길이라고 하니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 그 말의 무게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아버지는 오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팔남매의 막내였다. 형제들 중에는 큰 부를 이룬 분들도 있었지만, 막내였던 할아버지의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다.

1950년대 중반에 태어난 아버지는 가난하고 배고픈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삼남매의 장녀였던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셨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꾸렸다.

아버지는 일찍 취업해 동생들의 학비와 가족의 생활비를 바카라임졌다.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기도 전에 누군가의 미래를 바카라임져야 했던 셈이다.

온라인 게임을 옮기는 과정에서는 학벌과 인맥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벽도 경험하셨다.

열심히 일하고 실력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아버지에게 성공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일이 아니게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능력.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적인 삶.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한계를 자녀만큼은 겪지 않게 하는 것.

아버지가 생각하는 성공은 그런 모습에 가까웠던 것 같다.


IMF 외환위기는 그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평생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던 온라인 게임에서 하루아침에 밀려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버지 주변에도 퇴직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가정까지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버지 역시 승진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온라인 게임을 떠나는 경험을 하셨다.

회사에 충성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만으로 평생의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신 것이다.

다행히 아버지에게는 전문성이 있었다.

그 덕분에 정년까지 일할 수 있었고, 정년 이후에도 다시 일자리를 얻어 경제활동을 이어가셨다.

아버지는 그 경험을 통해 확신하셨던 것 같다.

회사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회사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의사나 치과의사는 그 확신에 가장 가까운 직업이었다.

정년이 없고, 자신의 전문성으로 일할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직접 병원을 운영할 수도 있는 직업.

아버지가 아들에게 흰 가운을 입히고 싶었던 이유였다.

처음부터 치과의사였던 것은 아니다.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해부나 신체를 다루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아버지는 치과의사라는 대안을 제시하셨다.

그렇게 치과의사는 자연스럽게 목표가 되었다.


그런데 정작 치과의사가 되고 싶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치과의사의 일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을 동경하거나, 치의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다.

좋은 대학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재미있는 대학생활을 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제시한 길이 나쁜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좋은 대학에 진학하면 그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했다.

아버지에게는 이루고 싶은 미래가 있었고, 아들에게는 그 미래를 거절할 만큼 분명한 다른 꿈이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꿈은 어느새 아들의 목표가 되었다.


아버지는 자신뿐 아니라 동생과 사촌들까지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다.

의사나 교수, 변호사처럼 전문성을 인정받고 슬롯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집안에 많아지기를 원하셨다.

가난한 시골에서 자라 가족을 바카라임져야 했던 장남에게 그것은 단순한 체면 이상의 의미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자주 말씀하셨다.

“넌 꼭 성공해야 한다.”

그 말은 오랫동안 삶의 기준이 되었다.

적어도 먹고사는 일을 걱정하지 않을 만큼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더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서른 살이 되어서도 정작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명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중학생 때, 고등학생 때, 혹은 대학생 때라도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해 조금 더 깊이 고민했더라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 삶이 지금보다 더 좋았을지는 알 수 없다.

치과의사가 되었더라도 충분히 좋은 삶이었을 것이다. 반대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지금 가진 것들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거나 어린 시절의 자신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아버지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 시절을 살아온 아버지에게 안정적인 전문직은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사랑의 표현이었을 테니까.

오히려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기회와 그 안에서 쌓은 경험들에 감사한다.


이제는 딸을 키우는 아버지가 되었다.

아이에게 안정적인 미래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는 다르게 해보고 싶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충분히 경험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 질문할 기회를 주고 싶다.

부모가 정답을 알려주는 대신, 아이가 자신의 답을 찾아가도록 돕고 싶다.

그 선택이 때로는 불안정하고 돌아가는 길이더라도, 자신의 결정에 바카라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먹고사는 걱정 없이 살기를 바라셨다.

이제는 딸이 먹고사는 걱정을 넘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어쩌면 두 마음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자녀만큼은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만큼은 아버지에게서 그대로 물려받았다.

오늘따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보고 싶다.


아버지와 아들의 진로 상담.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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