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미지의 경로] 13화
나름 잘 피해 다니고 있었다.
딱 3개월만 버텨서 살아남으란 미션을 부여받은 지 한 달이 넘었다.
보통 사람들처럼 일상생활을 나름 잘 해 나가고 있었다.
어제 저녁 생각지도 못했던 위협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랜만의 모임 일정이었다. 뮤지컬 펍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공연을 보기로 한 날이었다.
여친과 함께 대학로로 향했다.
공연 전에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한 식당에 우리가 먼저 도착했다.
"우리 모임 통장에 돈이 쬐끔 남아 있었던 것 같은데?"
식당에 앉아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잔고가 궁금해져서 핸드폰을 켰다. 통장 앱을 열었더니 메뉴가 수십 개 떴다.
정작 찾으려던 계좌는 찾지 못하고, 연동해 놓은 다른 금융 계좌들만 촤르르륵, 마치 영화 엔딩 크레디트처럼 펼쳐졌다.
"안 돼! 보기 싫어! 지금 보기 싫다고!"
3개월 동안은 내 주식 계좌 잔액을 절대로 안 보기로 했었다. 혹시라도 그걸 보게 될까 봐 가슴이 쿵쾅대고 호흡이 가빠졌다.
돈을 잘 벌고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피했겠는가?
한 달에 한 번은 생활비를 빼야 해서 할 수 없이 보는 날이 있는데, 그때 이미 계좌가 끝장으로 빠져 있었다. 생활비를 조달할 만큼만 팔고는 바로 주식 앱을 껐었다. 계좌를 봤던 순간 폭포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주식에는 다시 눈을 꽉 감은 채 지내고 있었다.
어제는 굳이 그걸 볼 때가 아직 아니었다.
근데. 왜?!!
모임 통장 잔고가 궁금했을 뿐이었는데, 뒤통수가 뜨끈해지는 이 느낌은 뭐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소설이 있다.
물론 제목만 들어봤을 뿐이다.
괜히 유명한 게 아니었나 보다.
내 주식 계좌 잔고가 눈에 훅 들어오고 말았다.
"쿠궁!... 툭! 쿠궁!... 투둑!! 쿠궁!... 투두둑!!" 기괴한 소리와 함께 심장이 발작하듯 꿀렁거렸다.
쿠궁은 심장 뛰는 소리였다.
쿠궁!을 뒤따라 들리는 툭! 투둑! 투두둑! 소리는 심장이 너무 놀라 하얗게 질려서 맥이 다 풀리는 소리였다.
심장과 연결된 혈관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몸 안의 자기 위치까지 포기하면서 밑으로 툭툭 떨어져 내리는 소리였다. 저 정도 소리면 위장 부근은 이미 지나친 거였다. 벌써 대장 근처까지 내려간 것 같았다.
주식은 지하실 밑에 또 지하실이 있다더니.
얼마 전에 길을 걷다, 까치가 날아가는 잠자리를 날쌔게 잡아채는 장면을 봤었다.
깜짝 놀랐고 신기했다.
그런데 내 심장이 떨어지는 속도는 그보다 백배는 더 빨랐다.
모임 멤버들이 식당에 다 도착해서 반갑게 환담을 나누며 식사를 시작했다. 내 얼굴은 웃고 떠들고 있었지만, 두껍게 바른 선크림 밑에서는 식은땀이 계속 흘렀다. 바닥 없는 싱크홀 속으로 한없이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내 심장은 계속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가 이제는 왼쪽 사타구니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두근! 두근!" 거리며 가늘게 박동만 유지하고 있었다.
일행 중 한 커플이 밝게 웃으며 집을 샀다고, 축하해 달라고 말했다. 정말 잘된 일이었다!
"이야! 진짜 잘 됐다. 정말 축하해! 이사 가면 집들이 꼭 해야 해!" 나도 활짝 웃으며 축하를 했다.
그런데 그들이 집을 샀다는 소식에 내 심장은 다시 한 뼘이나 더 밑으로 덜컹 떨어져 내렸다. 이놈의 심장은 이제 대놓고 내 생각과 따로 놀고 있었다.
자리를 옮겨 방문한 뮤지컬 펍은 사람들로 꽉 차 후끈했다.
배우들이 바로 옆에서 서빙을 해주며 반갑게 웃어주었다.
그러다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로 싹 바꾸고는 무대 위에서 공연을 펼쳤다.
"대성당들의 시대가 무너지~~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대성당들의 시대'가 울려 퍼졌다.
무너지는 대성당들과 함께 내 심장은 더욱 밑으로 흘러내렸다.
이제 왼쪽 허벅지 밑까지 내려와 있었다.
심장이 밑으로 내려갈수록 내 얼굴은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다.
다행히 어두운 공연 조명 때문에 우리 일행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신나는 곡으로 바뀌었다. 네 명의 배우들이 쉴 새 없이 객석을 가로지르며 춤과 노래를 퍼붓었다.
배우들의 엄청난 에너지 덕분에 생명을 소실해 가던 내 심장이 약간의 힘을 얻었다.
그러나 이미 종아리까지 떨어져 있었다.
"쿵덕! 쿵덕! 쿵덕쿵덕!"
가늘게 두근대던 심장이 힘을 내서 다시 펌프질을 시작했다. 음악에 맞춰 리듬까지 타고 있었다.
"쿵! 쿵! 쿵다닥! 쿵! 쿵쿵! 쿵다닥!"
심장의 펌프질 때문에 왼다리가 바닥을 찼다 무릎을 들었다 하며 춤을 추었다.
"자기야, 괜찮아? 자기 음악 좋아하는 건 아는데, 발이 너무 제멋대로 움직이는 거 아냐?"
얼굴은 창백해서 핏기 하나 없이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왼발 한쪽만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으니 바로 옆에 앉아있던 여친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응, 괜찮아. 내가 전에 춤을 배운 적이 있는데 그때 시간이 없어서 한쪽 발밖에 못 배워서 그래. 그게 아직도 몸에 남아 있나 봐."
구슬픈 내 표정이 말하는 게, 한쪽 발밖에 춤을 못 배워서 슬프다는 건지, 아니면 한쪽 발이 제멋대로 춤을 추고 있어서 죽을 것 같다는 건지를 여친이 알아채기엔 너무 어려운 상황이었다.
"괜찮다면 다행인데, 그래도 내일 병원에 한 번 가 보는 게 어때? 자기 요새 좀 힘들어 보이던데..."
안 그래도 요즘 하느님과 대화를 한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는 남친이라, 아마 정신과에 가보라는 얘기일 터였다. 심장이 발까지 내려가서 춤추고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테니.
"좀 피곤해서 그럴 거야. 오늘 밤만 푹 자고 나면... 허엇! 허엇!" 발이 이제 너무 극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발이 떨어져 나가 혼자서 무대 위로 올라갈 판이었다.
"안 돼!!" 벌떡 일어서면서 발을 세차게 바닥으로 굴렀다.
"쾅! 쾅! 쾅!" 있는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
주먹을 불끈 쥐면서 팔꿈치를 밑으로 세게 당기고 온몸을 순간 쪼그리면서 발을 쾅! 쾅! 쾅! 굴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있는 힘껏 "콰앙!!!" 하고 바닥을 걷어찼다.
거센 발차기에 놀란 심장이 순간 쑥! 하고 위로 올라붙어 제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으아아아!"
나는 감격에 겨워 두 팔을 양옆으로 크게 벌리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탄성을 질렀다.
"살았다!!! 죽을 뻔했다!!"
"우와와와와!!! 우와와와와!!! 멋지다!!! 휘이익!!!"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지고 있었다.
다시 밝게 불이 켜진 펍에서는 테이블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손이 부서져라 박수를 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방금 공연을 마친 배우들이 나와 정확히 똑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근데 저분은 누구야? 손님 아냐?"
"배우는 아닌 것 같은데..."
"근데 어떻게 마지막 피날레를 배우들하고 칼같이 맞춰서 똑같이 해? 난 짜고 하는 줄 알았다니깐?"
"아냐. 서프라이즈로 객석에 심어 놓은 배우가 맞아. 일반인은 저렇게 강렬한 동작이 나올 수가 없다니깐!?"
화색이 돌아온 내 얼굴을 보고 여친은 일단 마음을 놓은 듯했다.
더 이상 병원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다만, 한마디를 했다.
"자기야, 앞으로 춤출 거면 먼저 얘기하고 춤춰. 우린 잠깐 다른 테이블로 가 있을게. 알았지?"
"너 뒈질 뻔했더라?"
집에 돌아오자마자 하느님이 기다렸다는 듯 첫마디를 날렸다.
"진짜 죽을 뻔했어요... 하아." 간신히 심장이 제자리를 찾았지만 아직도 심장에 멍이 든 것처럼 아프고 얼얼했다. 최소 이삼일은 더 시름시름 아플 각도였다.
"근데 뭐 그딴 일로 뒈지려고 그러냐? 아무리 네가 머리가 나쁘다는 걸 감안해도 난 당최 이해가 안 된다. 진짜 저놈의 머릿속은 시커먼 시궁창이다."
"뭐라고요? 시궁창? 죽다 살아난 사람한테, 위로는 못 해 줄망정, 그게 할 말이에요?" 서러움이 복받쳤다.
"내가 못 할 말 했냐? 맨날 시커멓고 냄새나는 생각만 해 쌌지 않냐! 시궁창 맞는데 뭘."
"으아악!!" 울분에 소리를 질렀다.
"정말 뭐 이따위 하느님이 다 있어!! 흑!"
"잘 거예욧!" 문을 쾅 닫고 들어가려고 했다.
"(쾅)" 문이 닫히질 않았다.
다시 엄청 세게 문을 닫았다. "(쾅)"
"제발! 장난치지 마세요! 힘들어서 자야 한다고요!!"
"그냥 자면 안 되지. 살긴 살았는데, 아직 완전히 산 게 아니잖냐. 제대로 살려놓고 처자든지 말든지 해야지. 너 잘못하면 자다 뒈진다?"
자다가 뒈질 수도 있단 말에 뜨끔했다.
솔직히 이 기분에 잠이 오겠나.
단지 하느님 면상까지 볼 힘은 당연히 없었다.
배터리가 1% 정도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말해봐라. 왜 좋은 자리 가서 지랄병을 부리다 왔는지."
"다 알면서 뭘 물어보세요?"
"내가 뭘 다 아냐? 네 배배 꼬인 소갈딱지는 나도 알 수 없는 우주의 미스터리다. 크크!"
"아... 그만 좀 하시라고욧! 저 엄청, 우울하고 막막하고 죽을 것 같다고욧!"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너 아까 네 주식 계좌 본 다음부터 이 지랄옘병을 하고 있는 거잖냐."
"거봐! 다 알면서 왜 물어보냐고요! 흑!"
"근데 너 그거 보기 전까지는 룰루랄라 하면서 여친하고 팔짱 끼고 식당까지 갔잖아."
"그거야 제 계좌 숫자를 보기 전이잖아욧!"
"그러니까 내가 이해가 안 되지. 네가 숫자를 보기 전이나 숫자를 본 후나, 숫자가 바뀌었냐? 안 바뀌었잖아? 근데 왜 난리냐? 보나 안 보나 어차피 그 숫자가 그 숫자인데!!"
"그래도 숫자 아예 모르면 마음이 좀 낫다고요.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하잖아요!"
"헛소리 마라. 눈 가리고 아웅이겠지. 하여간 지 맘대로 갖다 붙이기는... 쯧."
"안 보고 있으면 그래도 올라갔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잖아요!!"
"인마 그게 바로 눈 가리고 아웅이잖냐!! 크크크! 진짜 돌대가리!" 배를 움켜잡고 지나치게 깔깔거렸다.
"흐흐흐... 게다가... 아니 네 계좌가 마술사 모자냐? 뱀이 나올지 토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마법이라도 된단 말이냐? 크하하하하!! 인마, 네가 보나 안 보나 이미 뱀이 나오기로 돼 있으면 뱀이 나오는 거지!! 딴 사람들은 이미 뱀이 나와서 아가리를 냅다 벌리는 거까지 다 봤는데 너 혼자 눈 감고 있는다고 뭐가 바뀌냐고!! 아하하!! 아이고 이런 겁쟁이 노무 자슥아!! 크크크!!"
"사람을 바닥에 패대기만 치는 게 아니라 아주 발로 짓밟기까지 하시네요. 안 그래도 머리 터질 것 같은 사람을! 우악!! 더 짜증 나!! 진짜 못됐어!! 잘 거예요!!"
다시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웬일이래? 이번엔 방문이 제대로 닫혔다.
다음날 저녁, 사업하시는 분들 틈에 끼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다크 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와 있었다.
어젯밤엔 자꾸 떠오르는 어수선한 생각에 밤새 뒤척였다.
3개월을 죽지 말고 살아남으라는 게 미션이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그 미션이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다.
새벽 세 시쯤.
'그냥 깩하고 다 포기해 버려?'
깜짝 놀라 이불을 걷어찼다.
어허. 아니지. 그건 절대 아니지.
머리는 급히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 미션을 포기할 수는 없지.
그럼... 숨어서 버티는 거다.
1번, 주식 앱부터 지운 후 핸드폰 끄고 잠수 타기... 음, 지금도 아무도 안 찾는데?
2번, 현금 박박 긁어 무인도로 튀기... 무인도면 돈 쓸 데도 없는데? 아, 뱃삯!
3번, 깊은 산속 오두막에 들어가 장작 패며 살기... 아, 나는 노가다 하루도 못 버티는 저질 체력인데.
그 정도에서 딱 멈추려고 했다.
그런데 어렸을 적부터 융단 폭격식 교육으로 굳어진 4지선다 멘탈의 후유증이 너무 컸다.
세 가지 생각을 해버렸더니 왠지 나머지 하나를 더 채워야만 속이 시원했다.
그런데... 끝내 나머지 한 개가 영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뭐라고... 세상에, 그딴 걸 골똘히 고민하다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저녁 식사 자리에 앉는 순간에 문득 나머지 한 가지가 더 떠올랐다.
'그래. 이불 속이다. 이불 뒤집어쓰고 3개월 동안 계속 잠만 자는 거다!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아예 눈을 뜨지 않는 거다!'
등잔 밑이 어둡다던 옛말은 역시 지혜의 농축이었다.
어젯밤 내 발로 걷어찼던 그 이불에 답이 있었다.
젠장! 뭐 좋은 생각이라고 여기서 이러고 있냐!
그러면서도 일단은 4개의 선택지를 다 채웠다는 충족감을 느꼈다.
순간 반짝 정신이 들었다.
'도대체 내가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하느님, 저 정신 차리게, 매우 좀 때려주세요!'
식사 중에 주식 얘기가 나왔다.
최근 한 달여 동안 시장이 폭락해서 다들 계좌가 망가졌다는 얘기가 주를 이뤘다.
"제가 아는 한 회장님은, 얼마 전까지 천억 원을 벌고 있었는데 그게 한 달 만에 50억인가 60억 원 수익으로 쪼그라들었대요. 50억 수익이니까, 그래도 많이 번 건데... 기분은 천억 원을 날렸다는 생각이 당연히 드는 거죠. 그래서 아주 괴로워하고 계세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몇 달 만에 백억 수익이 났다가 한 달 만에 수익이 0원이 됐대요.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하신다고는 하는데... 이분도 '벌었을 때 조금이라도 팔아 둘걸'하면서 속으로 엄청 괴로워하고 계세요."
이런 얘기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분명 나하고는 상관없는 딴 세상 얘기였다.
나는 제대로 벌지도 못했다가 더 까였고, 나에겐 이미 엄청 큰 손실이어서, 커다란 돌멩이가 목구멍과 위장 사이 어딘가에 덜컥 걸려 있었다.
그런데 천억이 날아갔네, 백억이 날아갔네 하는 얘기를 듣다 보니, 문득 어깨가 가벼워졌다.
"그 사람들이 바위, 돌멩이면 나는 그냥 모래알? 아니 먼지? 수준인가?"
어젯밤 밤새 뒤척이던 게 약간 머쓱해졌다.
저녁을 마저 먹으려는데,
"탁!" 고무신 한 짝이 내 이마를 때렸다.
"으악!" 묻지 않아도 누구일지 분명했다.
"밥이 입에 처들어가냐? 먼지나 처먹어라! 인석아!"
밥숟가락이 입을 찾지 못하고 밥알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으악, 민폐!"
주섬주섬 밥알을 주우려는 데 고무신이 내 뒤통수를 계속 "탁! 탁!" 때렸다.
"그만 좀 때려요!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요! 창피하게! 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밥 먹다 말고 혼자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지르는 걸로 보였을 거다.
"아까 때려 달라며. 매우 때려 달라며!
새벽 세 시에 네가 무슨 생각했는지 내가 모를 줄 아냐!
다신 그딴 생각 못하게 아주 작살을 내주마!!"
"탁!", "탁!", "탁!"
"으아! 그만! 그만! 이제 정신 다 차렸어요!! 그만하셔도 돼요! 아까 혼잣말은 언제 또 들은 거야! 사랑의 매, 감사합니다! 이제 그마안!!"
"근데 왜 아직도 가슴에 돌멩이가 걸려 있냔 말이다!"
"돌멩이냐!", "탁!"
"모래알이냐!", "탁!"
"아니면 먼지가 될 테냐!", "탁!"
"노선을 정하라 이 말이다!"
"탁! 탁! 탁!"
"이 돌대가리야!", "탁!", "탁!"
"아, 그만 좀 때려요!"
"아니, 더 맞아야 한다!!"
"탁!", "탁!", "탁!"
"으아악! 이럴 거면 그때 3개월을 버텨라 어쩌라 흰소리 말고 일단 다 팔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라고 하지.
그만 때리라고욧!
버티라 해놓고,
안 보다가 보고 흔들리면 빙신,
남하고 비교해서 위안 좀 얻으려고 하면 돌대가리!
진짜 어쩌라고요!!"
"그럼, 걍 토끼시든지!"
"1번, 아무도 찾지 않는 잠수 타시든지!"
"탁!"
"2번, 돈도 필요 없는 무인도로 튀시든지!"
"탁! 탁!"
"3번, 장작도 못 패면서 오두막으로 가시든지!"
"탁! 탁! 탁!"
"4번, 이불 뒤집어쓰고 3개월 처주무시든지!"
"탁! 탁! 탁! 탁!"
하느님이 고무신으로 계속 치면서 말부림을 하다가 흥이 올라 버렸다.
"아,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탁!"
"아,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탁! 탁!"
"아, 각설이도 으쓱대고 잘 사는데"
"탁!"
"이깟 놈의 멍충이는 살지도 죽지도 못하네"
"탁!", "탁!", "탁! 탁! 탁!"
"그깟 3개월도 못 참고"
"탁!"
"뒈질까 말까 한디요!"
"탁! 탁!"
"뒈지긴 뭘 뒈져, 이놈아!"
"탁!"
"요란 떨지나 말든지!"
"탁!", "탁!", "탁! 탁! 탁!"
각설이 타령인지 아니면 굿을 하는 건지 모를 지경이다.
하느님의 타령과 춤사위가 점점 더 흥을 돋우어 갔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하느님이야, 박수무당이야..."
하느님 옷도 어느새 알록달록하게 바뀌어 있었다.
문득 가슴속 돌멩이가 작아진 게 느껴졌다.
돌멩이가 군데군데 부서지면서 모래알로 변하고 있었다.
조금씩 가슴이 편해졌다.
"아, 내가 죽기는 왜 죽어!"
"아, 절대로 안 죽고 살 거야!"
"아, 하느님 꼴 보기 싫어서!"
"아, 절대로 안 죽고 살 거야!"
나도 타령판에 끼어들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신명 나게 춤을 췄다.
아직 죽을 땐 아닌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내 왼발은 또 한 번 맹활약을 했다.
탭댄스로 시작해 셔플, 힙합, 팝핑을 거쳐 캉캉으로 막을 내렸다.
다음 날 아침.
이틀 내내 혹사당한 왼발이 욱신거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발은 욱신거리는데
어디론가 한 발짝
내디뎌 보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올라왔다.
"띠링!"
그때 카톡이 울렸다.
***
[다음 화 예고]
<한 발 앞으로>
3장 [미지의 경로] 14화
수십 년 만에 단톡방에 나타난 옛 친구.
뜬금없이 유튜브 채널을 열었단다.
노래는... AI가 만들었다고?
주식 계좌만 피해 다니던 새가슴의 가슴에
오랜만에 뭔가가 꿈틀댔다.
"나도! 뭔가!"
마음은 한 발 내디뎠을 뿐인데
머리는 벌써 열 발쯤 앞서 달려가 있다.
그리고 그 뒤를
둘둘 만 종이 뭉치가 쫓아온다.
10월 7일(수)에 발행되는
14화 〈한 발 앞으로〉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