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이 좋나?

2장 [무지의 자각] 8화

by아제

"나는 운이 좋다!"

"나는 운이 좋다!"


아침부터 큰 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소리 내어 말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머릿속에서만 말하면

'나는 운이 좋다'가 자꾸

'나는 우기고 있다'로 들렸다.


어느 해 첫 출근 날이었다.

나름 전문가라고 스카우트되어 들어간 회사였다.

그러나 1년 만에 위기가 왔었다.

맡았던 조직은 대거 반납했고, 나는 쪼그라든 역할과 작은 영업부 하나만 떠안은 채 새해를 맞았다.


그런데도 꽤 해맑았나 보다.


코너에 몰려서 목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여러분, '나는 운이 좋다'라는 말을 천 번만 해보세요! 진짜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라고 늘어놓고 있었다.


심지어 한 손으로 박카스를 높이 치켜들고는,

"여러분, 다 같이 따라 해 보세요! 나는! 운이! 좋다!"

하고 건배사를 했다.


"정말 좋은 말입니다!"

"저희 부서는 운이 좋습니다! 하하!"

대부분 웃으며 반응해 줬다.

진심이었겠는가.


'알고 보면 바보인가?'

'좀 이상한 사람 아냐?'

'사고나 치지 않으면 좋겠다.'

이게 진심이었을 것이다.


당시 사이토 히토리의 바카라에 빠져 있었다.

"운이 좋다"라는 말을 천 번 하라는 것도 사이토 히토리 님에게 배웠다.


몇 달 뒤, 생각지도 못했던 영업 방향을 우연찮게 찾았다.

다행히 그 아이디어가 현장에서 먹혔다.

연말쯤 되자 맡았던 부서가 기슬롯생을 했다.

나는 안 잘리고, 살아남았다!


"나는 운이 좋다"를 매일 천 번씩 외운 건 아니었다.

솔직히 연초에 얘기하고는 다 잊어버렸었다.


"뭔가 살길이 있을 거야, 그 길만 찾으면 돼!" 하면서 일에 매진했었다.

살길이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처음 해보는 낯선 현장 영업이었는데도 말이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나는 운이 좋다!"

"나는 운이 좋다!"


"'나는 운이 좋다'는 말로 한 해를 시작해서인가? 왠지 바로 쉽게 죽지는 않을 것 같았거든..."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리는데... 뒤통수에서 찜찜한 기운이 느껴졌다.


"뭘 씨부려 쌌냐?"

눈을 뜨니 하느님 얼굴이 내 코앞에 바싹 붙어 있었다.

"아잇, 깜짝이야! 오면 온다고 제발 얘기를 좀 하고 오세요!"

"뭘 그리 씨부려 쌌냐고?!"

"어휴, 저리 좀 가세요! 왜 이렇게 얼굴을 들이밀고 난리래?"


"뭔 좋은 얘기인지 궁금해서 그러지."

"확언이에요, 확언! 아시죠? 말하면 이루어진다고 해서 요새 좀 깬 사람들은 다 하는 거!"

"아, 확언. 난 또 죽은 사람이라도 살려내려는 염불인 줄 알았지. 크크!"

"하느님이라면서 왜 이렇게 무식하세요? 좀 창피해지려고 하네?!"

"이놈이?! 내가 그딴 것도 모를 줄 아냐? 그걸 하고 있는 네 꼬락서니가 한심해서 하는 말이지!"

"제가 왜요?"

"너 그렇게 천 번 외우다가는 운이 오기도 전에 당 떨어져서 뒈지겠다."

"아, 진짜! 할 말 없으면 일 보러 가세요.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타나서는 훼방이나 하고!"


"확언은 그렇게 하는 게 아냐 인마."

하느님이 갑자기 정색했다.

조심해야 한다. 저 정색을 믿었다가 얼마나 심한 일을 당했던가! 이제 절대 믿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요?"

"앵무새처럼 앵앵거릴 게 아니라..."

"네놈이 진짜 운 좋은 놈이라는 걸 깨달아야지."

"어..."


뭔가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럴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무슨 밑밥인지 알 수가 없다.


"말장난해요? 운이 좋으면 뭐 하러 그런 확언을 해요? 그냥 운 좋게 살면 되지!"

"내 말이! 크크크!!" 신났다.

당연한 말 아닌가?

그런데 대뜸 동의하니까 왠지 가슴이 긁히는 기분이었다.


"운 나쁜 사람들은요? 확언이라도 해서 운을 바꿔줘야 할 것 아녜요! 또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고 계시네?!"

"운이 나쁜데 앵앵거린다고 운이 좋아지냐? 크크!! '실제로는 운이 나쁘지만 그래도 나는 운이 좋다', 이딴 마음으로 앵앵거리는 거 아니냐! 그게 되겠냐?"


반박이 불편했다. 말이 안 되는데, 또 말이 됐다.


듣다가 헷갈려졌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인가?

운이 나쁜 사람인가?

머리는 이미 멈췄다.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네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될 거다. 아무래도 영계 도구들의 도움을 받아야겠다."

품 안에서 접는 부채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빨간색, 다른 하나는 파란색이었다.


"뭐예요?"

"행운과 불운의 부채다."

"행운과 불운의... 부채요?"

"이 중 한 가지 부채로 바람을 부치면 오직 행운의 기억만 떠오르고, 다른 하나로 바람을 부치면 불운의 기억만 떠오른다. 어떤 색을 선택할 테냐?"


빨간색 부채와 파란색 부채?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 무슨 매트릭스 영화냐?...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은... 그래! 빨간 알약을 골랐었다.


"빨간 부채요!"

"진짜지? 후회 안 하지?"

"후회 안 해요."

"자, 빨간 부채닷!"


어떤 바람이 불어올까 긴장하며 눈을 감았다.

행운의 바람일까, 불운의 바람일까?


"빠르탁!!" 빨간 부채가 내 머리를 내리쳤다.

"악! 바람을 부치셔야죠! 왜 때려요!"

"이건 때리는 부채다! 크크크!!"

"빠르탁!!", "빠르탁!!", "빠르탁!!"

내 몸을 붉은색 바람이 휘감았다.

"이런 순 엉터리..." 말을 잇지 못하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붉은 바람 속의 나는, 부자는 아니나 가난하지도 않은 집에서 무탈하게 자랐다. 공부도 웬만큼 해서 괜찮은 대학에 갔다. 운 좋게 인기 있는 회사에도 취직했다.

시련이 닥쳤지만 또 운이 좋아 어떻게든 넘겼다. 이만하면 됐다 할 때까지 회사 생활을 더 했고, 이제 그다음 삶을 살고 있다.

아픈 데도 없고 많지는 않지만 모아둔 돈도 있다. 이렇게만 계속 살아간다면 앞으로도 큰일 없이 살아가지 않을까.


"푸르탁!!" 파란 부채였다.

맞는 순간 위잉 하는 소리가 들리며 머리가 울렸다.

"푸르탁!!", "푸르탁!!", "푸르탁!!"

붉은 바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푸른빛 안개가 내 몸을 둘러쌌다.


푸른 안갯속의 나는, 어릴 때부터 허무함과 슬픔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쪼끄만 자식이 뻑하면 신경질을 부려댔다. 원하던 대학은 못 가고 차선의 학교를 갔고, 원하던 회사는 못 가고 차선의 회사를 간신히 갔다.

먹고살 만해지니까 사고가 생겼고 일이 꼬였고 뒤통수를 맞았고 빚까지 졌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세 번이나 잘렸고 온라인 게임 생활은 이제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모아둔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살 날을 생각하면 막막하다. 딱히 아픈 데도 없으니 오래 살 게 오히려 걱정이다.


"돌아와랏!"

하느님이 "딱!"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끄으으응..."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떴다.

정신이 몽롱하다.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정신이 돌아왔다.


"분명 빨간 부채 선택했잖아요! 왜 파란 부채로 또 때려요?!" 뱁새눈으로 째려봤다.

"뭘 먼저 선택하겠냐는 질문이었지 그것만 선택하라고 언제 그랬냐? 크크!! 무슨 매트릭스 영화라도 되는 줄 알았냐? 크크크!!" 신나서 배를 잡고 깔깔거렸다.

따져봐야 답이 안 나오는 사람이다.


"그래서요? 맞을 때마다 다른 버전으로 보이긴 하던데, 그때그때 마음 상태에 따라 그럴 수 있는 거잖아요. 당연한 거 아니에요? 영계의 도구라고 해서 난 또, 대단한 게 있는 줄 알았네. 별것도 없구먼."

"진짜 머리가 안 돌아가는구나. 얌마! 확언 얘기하다가 부채까지 온 거 아니냐?"

"그러니까 확언하고 부채하고 무슨 상관이냐고요?!"


하느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채의 강도를 엄청 낮출 테니 이번엔 맞으면서 동시에 확언을 해봐라."

"뭘 하라고요?"

"맞으면서 '운이 좋다' 앵앵이를 하라고!"


"빠르탁!!", "나는 운이 좋다!"

"푸르탁!!", "나는 운이 좋다!"


빨간 부채로 맞는 순간 운이 좋다는 느낌이 바로 들었다. 확실히 확언도 잘 붙었다. 그런데 이미 운이 좋다고 느껴져서 굳이 확언을 할 필요가 없었다.


파란 부채로 맞았을 때는 확언을 하자 멀미가 나는 것 같았다. 속이 안 좋은 걸 억지로 참으며 괜찮다고 우기는 느낌이었다. 속 안 좋은 걸 인정하고 약을 먹든지 토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확언이... 핵심이 아니네요?"

"이제야 알겠냐? 아직 멀었다! 넌 머리가 나쁘니 한참 더 맞아야 한다. 계속하자!"


"빠르탁!!", "나는 운이 좋다!"

"푸르탁!!", "나는 운이 좋다!"

"빠르탁!!", "나는 운이 좋다!"

"푸르탁!!", "나는 운이 좋다!"


계속하다 보니 좀 무뎌졌다. 입으로는 확언을 하면서 딴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빨간 부채와 파란 부채로 계속 번갈아가며 맞다 보니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은근히 헷갈렸다.


그때 얼마 전 들었던 후배 소식이 떠올랐다.


한참 전에 큰돈을 벌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 뒤로는 연락이 끊겼었다. 최근에 다른 후배에게 근황을 들었다.


"그 친구 어떻게 지내니?"

"건물주로 지내죠. 그때 돈 많이 벌었잖아요. 근데..."

"응, 근데? 뭐?"

"몇 년 전부터 몸이 아파서 치료를 받고 있대요. 엄청 비싼 약을 매월 맞고 있대요. 그게 쉽게 낫는 병이 아니래요."


돈을 번 건 운이 좋았던 것 같고.

몸이 아픈 건 운이 나빴던 것 같고.

돈이 있어서 비싼 약을 쓸 수 있는 건 운이 좋은 것 같고.

비싼 약을 써도 안 낫는 병인 건 운이 없는 것 같고.


"진짜 모르겠다!!"

"알 때까지 더 맞아랏! 크크크!!"


"빠르탁!!", "푸르탁!!", "빠르탁!!", "푸르탁!!"


"점점 더 모르겠다고요!"

"어찌 됐든 넌 억세게 운이 좋은 놈이라는 걸 모른다는 게냐?!"

"제가 운이 좋다고요?"


"빠르탁!!", "푸르탁!!", "빠르탁!!", "푸르탁!!"


"얌마! 어떤 헛소리를 해도 받아주는 내가 옆에 있잖냐! 부채 드럼까지 쳐주면서! 크크크!! 이게 얼마나 운 좋은 일인지 진짜 모르겠냐?"


"빠르탁!!", "푸르탁!!", "빠르탁!!", "푸르탁!!"


"애초에 운이 없었으면 네가 날 만나기나 했겠냔 말이다! 난 너를 위해 밤새도록 부채 드럼을 쳐 줄 수도 있다! 오 예! 함 가보자! 레쓰기릿!!"


"빨딱! 풀딱! 빨딱! 풀딱! 빨딱! 풀딱!"

"빨ㄸ!! 풀ㄸ!! 빨ㄸ!! 풀ㄸ!! 빨ㄸ!! 풀ㄸ!!"

"ㅃㄸ!! ㅍㄸ!! ㅃㄸ!! ㅍㄸ!! ㅃㄸ!! ㅍㄸ!!"


부채 드럼이 점점 더 빨라졌다.

부채에 맞아 머리가 흔들렸다.

온몸에 힘이 빠져 축 늘어졌다.

몽롱해지면서도 정신줄을 붙들었다.


"아닌데...


하느님 만난 건 진짜 운이 나쁜 게 맞는데.


안 만났으면

오늘이 이럴 날이 아니었는데.


아파...

힘들어...

이제 그만..."


몽롱한 머릿속에선

오만가지 생각들이 꿈틀거리며

다시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음 화 예고]


〈부엌 쓰레기통 전투〉

2장 [무지의 자각] 9화


부엌 쓰레기통을 점령한 날파리 군단과

사투를 벌이던 새가슴.


그러나 하느님은 부엌보다

새가슴의 머릿속 상태가 훨씬 고약하다며

영계의 전문가들을 부르기 시작한다.


과연 새가슴은

전문가들의 손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9월 25일(금)에 발행되는

9화 〈부엌 쓰레기통 전투〉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