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쓰레기통 전투

2장 [무지의 자각] 9화

by아제

'나는 깔끔한 사람이다.'

'아니, 엄청 지저분한 사람이지.'

'깔끔하다니까? 집도 깔끔하잖아!'

'집에 날파리가 날아다니는데?'

'여름인데 한두 마리 있을 수도 있지!'

'저게 한두 마리로 보이냐?'

소파에 누워 머릿속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올해 여름은 유독 힘들었다. 사방이 조금씩 막혀 가는 느낌이었다.

무슨 큰일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다만 돌파구 없는 쳇바퀴를 빙빙 돌다 보니, 어느새 그 쳇바퀴가 늪처럼 나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주식 투자에는 재능이 없는 게 분명했다.


공부를 더 하고 원칙을 가다듬어 봐도, 작은 변동 하나가 나타나면 대응이 어려웠다.


이상하게도 아는 게 많아질수록 더 심해졌다.


습득한 이론을 이리저리 비틀어 대기 바빴다. 아무도 말하지 않은 시나리오만 수도 없이 만들고 부수고, 만들고 부수고. 그게 매일의 일이었다.


‘나비 효과’ 때문이었다.

브라질의 나비가 날갯짓하면 텍사스에 토네이도가 생긴다는, 그 얘기.

시장의 변화들이 모두 나비의 날갯짓으로 보였다.

문제는 내 머릿속 나비가 한 번 날갯짓을 하면, 텍사스 토네이도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 것이었다.


작은 변화에도 심장이 땅바닥을 쿵! 치는 새가슴.

빛의 속도로 망상의 시나리오를 뿜어내는 폭주 엔진을 장착한 머리.

둘의 조합은 주식 투자에 썩 맞지 않았다.


뉴스 한 줄로 시장이 큰 점프를 할 거라는 시나리오를 짰다가는, 다른 뉴스 한 줄로 몇 년 후 대공황이 올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상상을 하는데 도대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투자를 하겠냐.

시나리오 하나하나를 떼어놓고 보면 상당히 그럴듯하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주식 얘기는 됐고! 지금 날파리가 한두 마리가 아니라니까?'


깔끔하다고 우기던 내가 졌다.

수십 가지의 시나리오로 울렁거리던 머리를 흔들고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부엌으로 향했다.


"메이 데이! 메이 데이!"

배가 침몰할 때 외치는 조난 신호다.

우리 집 부엌 쓰레기통이 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주식 시나리오에 넋이 빠진 나는, 그 신호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부엌 쓰레기통은 벌써 날파리 군단이 점령한 상태였다.

쓰레기통 바닥에서 퀴퀴한 냄새가 은근히 올라오는 건 알고 있었다. 쓰레기통을 아직 비울 때가 안 됐다며 며칠 지나친 게 화근이었다.


쓰레기통을 점령한 날파리 군단은 이미 비행 편대를 꾸리고 있었다.

고공비행, 저공비행, 스텔스 비행까지 해가며 놈들은 부엌으로 다가가는 내 주변 공간을 사방에서 공격해 왔다.


"으아악!! 이게 뭐야!!"

처음에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해결해야만 했다.

"다 죽었어!!"


전쟁을 선포했다.


퀴퀴한 냄새가 그들을 소환하는 본부임이 분명했다. 날파리들은 비행을 마치면 쓰레기통 뚜껑에 착륙해서 기체를 정비하는 듯했다. 쓰레기통의 뚜껑이 항공모함의 갑판으로 변신해 있었다.


날아다니는 비행 편대는 잡을 방법이 없었다. 놈들이 쓰레기통 뚜껑에 착륙하는 순간이 유일한 기회였다.


착륙하는 순간을 노려 탁! 탁! 탁! 잡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급한 마음에 손바닥으로 때렸다. 그러나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손바닥이 얼얼하고 아파서 더 이상 때릴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고지서인지 전단지인지 손에 잡히는 종이들을 죄 모아 둘둘 말아 쥐고는 타격을 개시했다.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었다.


몇 시간이나 걸친 전투 끝에 비로소 승리의 신호가 보였다. 비행을 계속하는 놈들이 한두 마리 남아 있긴 했지만 나머지 날파리 비행 편대는 전부 소탕했다.

그들의 본부였던 쓰레기통 속까지 모두 종량제 봉투에 싹 다 담아 공용 쓰레기장에 갖다 버렸다.

그리고 쓰레기통을 항균제로 빡빡 닦았다.


그렇게 부엌 쓰레기통 전투는 종료됐다.

아니, 종료되었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계속 한두 마리씩 쓰레기통 주변에 등장했다. 잡으면 또 한두 마리가 다시 끝없이 나타났다. 전면전은 끝났지만 게릴라전은 끝나지 않고 있었다.


"탁!"

"에잇 놓쳤네! 아얏!"

며칠째 이어지는 전투에 내 손바닥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도대체 하느님은 왜 날파리 같은 걸 만들어낸 거야!" 하고 툴툴거리는데,


"탁!" 내 뒤통수였다.

"악! 저를 잡지 말고 날파리를 잡으시라고요!"


"지금 날파리 잡고 있는 건데?"

"저야말로 지금 날파리 때문에 엄청 짜증 모드잖아요! 무슨 신 소리세요!!" 으르렁댔다.

"알잖냐. 네 머릿속에 날파리가 그득한 거. 모르냐?" 하느님이 희죽희죽 웃었다.


"말을 좀 알아듣게 하시라고요!!"


주식에 날파리에 하느님까지. 올 여름은 왜 이러냐. 날씨도 찌는 듯이 더워 죽겠는데.


"얌마, 너는 맨날 주식 투자 한다고 폼만 잡고서는 웬갖 날파리 군단 같은 시나리오 군단만 만들어내잖냐! 그게 날파리가 아니면 뭐가 날파리냐!"


"탁! 탁! 탁!"

종이 뭉치가 계속 내 뒤통수를 때렸다.


"악! 그게 왜 날파리예요? 나비 효과를 계산하는 거라고요! 나비 효과! 하느님은 그런 거 모르잖아요!"

"넌 진짜 날 너무 띄엄띄엄하게 본다니까? 얌마! 그게 그... '미지의 경로'랑 다 똑같은 거라니까?"

언젠 그딴 건 없다고 박박 우기더니 왜 갑자기 미지의 경로를 소환하냐?


"지금 네 머릿속에 그득한 건 죄다 쓰레기다. 어휴! 새가슴이 아니라 새가슴 쓰레기통이네! 얌마! 머릿속 쓰레기 좀 비워라! 이러니까 맨날 날파리 같은 생각들이 붕붕 날아다니지!" 하느님이 인상을 찌푸린다.


"뭔 소리에요! 제가 얼마나 깔끔한 사람인데요!!"

"어휴! 안되겠다! 사람 불러야겠다!"

내 얘기를 듣지도 않고 한 손으로 코를 잡고는 다른 손으로는 손사래를 쳤다.


하느님이 귀를 덮는 큰 헤드폰을 머리에 썼다.

"아, 여보세요. 영계 방역반이죠? 나 하느님인데. 여기 머릿속에 날파리가 가득한 놈이 하나 있어서... 엉, 전문가 한 명만 급히 보내달라고. 아, 알았어요! 땡큐!"

"전문가 금방 오기로 했다. 그러니 나비 효과니 뭐니 개소리 말고 거기 꼼짝말고 있어라!" 하느님이 헤드폰을 벗으며 말했다.

"무슨 전문가요?!"


"쿠궁!" 소리와 함께 흰 방역복을 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하느님, 이 친구입니까?"

하얀빛을 뿜어내는 랜턴으로 내 머릿속을 비췄다.

"오! 날파리 같은 생각들이... 진짜 많네요. 이거, 한 번에 다 잡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영계의 살충 분무기, 살충 강풍기, 초음파 살충기 등 온갖 기구를 총동원해 작업을 했다.

"하느님, 쓸데없는 생각의 자가 발전 수치가 지나치게 높습니다. 잡아도 잡아도 계속 새로 생깁니다. 다른 분을..."


뒤이어 파리채 장군이 등장했다. 거대한 영계 파리채로 내 머릿속을 마구 휘저었다.

"하느님... 파리채가 이렇게 시커매진 건 처음입니다. 다른 분을..."


영계 살충 도사, 날파리 생각 퇴마사, 과학 망상 수사대까지 돌아가며 등장했지만 다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감당이 어렵습니다. 다른 분을..."


"얌마! 넌 도대체! 정체가 뭐냐, 새가슴! 우와, 진짜 징한 놈이네?"

"왜 자꾸 저를 환자 취급하시냐고요! 저 정상이라고요!"

"정상 같은 소리하고 있네! 지금 왔다 간 사람들이 다들 얼마나 전문가인지 네가 알고나 하는 소리냐? 안되겠다. 그 분을 모시는 수밖에 없겠다."


"스님이 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똑! 똑! 똑!"

목탁을 두드리며 허연 수염을 늘어뜨린 스님이 나타났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 공기까지 달라지는 듯했다.


"오랜만입니다, 하느님."

"스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골치 아픈 놈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모셨습니다."

"제가 힘 닿는 데까지 해 보겠습니다. 이 친구인가요?"

스님이 내 눈을 지그시 쳐다봤다. 스님의 눈과 마주치자 오금이 저려왔다.


"흐음. 특이한 체질을 타고난 친구군요. 머릿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별의별 시나리오를 끝없이 분수처럼 만들어 내는... 아, 머릿속 저 부분이 문제네요."

"아, 역시! 그걸 저놈 머릿속에서 없애주시죠!" 하느님이 안도하며 말했다.

"그건 어렵습니다. 만약 저걸 떼어내게 되면 이 친구는 죽거나, 아니면 살아도 바보가 될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스님?"

"영계의 황금 두꺼비를 쓰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오호호! 황금 두꺼비! 맞다! 제가 미처 그 생각을 못했네요! 크크!! 그거면 되겠네요!! 흐흐!!"


"아니 두 분! 잠깐만요. 황금 두꺼비가 뭔데요? 제 의견은 묻지도 않고 왜 두 분이 모든 걸 결정하는 거죠?"

하느님과 스님이 순간 "뭐래?" 하는 표정으로 힐끗 보더니 계속 둘 사이의 쑥덕 대화를 이어갔다.


"이 황금 두꺼비를 저 친구 머릿속에 심겠습니다!" 스님이 소맷자락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두꺼비를 꺼내 들었다.

"심읍시다, 스님!"

"자, 두껍아, 저 친구 머릿속으로 들어가라!"

두꺼비는 높게 뛰어오르더니 내 얼굴을 향해 달겨들었다.


"안돼!!"

묵직한 덩어리가 머릿속을 뚫고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쿵!"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하여간 저 자식 오버하는 것 좀 보세요. 그 황금 두꺼비는 빛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무게도 촉감도 안 느껴진다면서요?"

"네. 랜턴 빛에 쏘이는 감각 정도죠. 저렇게 머릿속에 뭐가 들어온다는 둥, 묵직하다는 둥, 그런 건 다 망상입니다. 저 친구 상태가 심각해요."

"제가 괜히 스님까지 모셨겠습니까. 이제 황금 두꺼비가 저 녀석 머릿속에 턱하니 들어앉아서 쓸데없는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낼름낼름 먹어 줄 테니, 저 녀석 머릿속은 한결 맑아지겠네요."

"맞습니다. 하느님. 훨씬 나아질 겁니다. 저는 다음에 뵙겠습니다. 아미타불."


정신을 차린 후 나는 뭔가 달라진 것을 알았다.


뉴스 한 줄에 촉발된 생각이 예전처럼 태풍을 일으키지 않았다. 세계 경제 시스템을 무너뜨리지도, 모든 일자리를 AI와 로봇으로 대체시키지도 않았다.

태풍이 일어나기 전에 뭔가가 내 머릿속 생각을 먹어치우는 느낌이 들었다.

몸과 마음도 덜 흔들리게 되었다.


그런데, 점점 일상의 생각도 깜빡깜빡하게 되었다.

방금 전에 뭘 하려고 했는지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 메모를 적었다.

그런데 그 메모를 왜 썼는지가 기억이 안 났다.

그래서 그 메모를 쓴 이유를 또다시 메모로 적었다.

하루 종일 메모를 적다 보면, 웬 허여멀건한 사람이 집 안을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였다.


저 사람은 또 누구지?


응?

'저 날파리 새끼! 저거 잡아야지!'

라고 메모를 써 놨는데

아직도 날파리가 저기 있네?


이 날파리는 새로운 날파리인가?

아니면 메모를 써 놓고도 잡는 걸 잊어버려서

계속 저기 있는 날파리인가?


잠깐만.


난 누구지?


난 뭐 하던 사람이지?


하루 종일 메모를 쓰는 게 원래 내가 하던 일인가?


고개를 들자

아까의 허여멀건한 분이 주방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저기요!

물 마시고 계신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제가 누군지 혹시 아세요?

...

그리고...

혹시 하느님 못 보셨어요?

...

요새 안 보이시는 것 같아요.”


“풉!!!” 하느님이 물을 마시다 뱉어 버렸다.


“저! 새가슴 시키!! 황금 두꺼비마저 지같이 폭주를 시켜 버렸어! 진짜 구제불능이야!!”


황급히 하느님이 다가왔다.


늦었다.


황금 두꺼비는

내 미래의 시나리오들을 다 먹고

현재의 기억들마저 다 먹어치운 후

이제는 과거의 기억들을 먹는 중이었다.


뒤늦게 하느님이 황금 두꺼비를 빼냈다.


그러자 두꺼비가 헤집다 만 과거가

오히려 선명하게 들춰졌다.

피하고 싶어

오래 묻어두었던 과거.


그러거나 말거나 남은 날파리 한 마리는 유유히 집안을 날아다녔다.





[다음 화 예고]


〈파울로 코엘료와 부자 아빠〉

2장 [무지의 자각] 10화


피하고 싶던 과거의 기억.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변해야만 했던 자기 모습과 마주한 새가슴.


하느님은

걱정을 해결해 주겠다며

또 다른 전문가를 부르는데.


과연 새가슴은

제대로 된 전문가를 만나는 걸까?


9월 27일(일)에 발행되는

10화 〈파울로 코엘료와 부자 아빠〉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