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이라는 이름의 무게

by앤의하루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꼭 둘로 나눠야 한다면, 하나는 스스로 가출을 꿈꾸는 아버지, 다른 하나는 처자식들이 가출하기를 꿈꾸는 아버지로 나눌 수 있었다.”
― 박범신,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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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가끔 이런 말을 한다.

“그냥 다 주고 혼자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어.”

집도, 가진 것도 다 두고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사는 게 힘들면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싶었다. 나라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 없었던 것도 아니니까.

“나도 가고 싶어. 데리고 가.”

농담처럼 받아친 적도 있었다. 어차피 다음 날이면 남편은 출근했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이면 가족과 밥을 먹었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일이 생기면 아빠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니 그 말은 사는 게 고단한 어느 날의 푸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박범신의 《소금》에서 이 문장을 만났다.

“스스로 가출을 꿈꾸는 아버지.”

문장을 읽는 순간 남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혹시 그 말은 정말 떠나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잠시라도 아무것도 바카라임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을까. 지금 너무 버겁다는 말을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남편도 아니고, 아빠도 아니고, 가장도 아닌, 그냥 자기 이름 하나만 가진 사람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우리에게는 자연스럽게 역할이 생겼다. 나는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었고, 남편은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었다. 둘 다 온라인 게임에 다니며 함께 가족을 꾸렸고, 주말이면 농사일에, 아이들 양육까지 보태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어떤 일들은 유난히 남편의 몫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집안에 큰돈이 들어가는 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일,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해결해야 하는 일.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순간에도 어쩌면 남편은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가장이라는 자리가 그런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선택인 일이 자신에게는 바카라임이 되고,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다음 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


《소금》의 주인공 선명우 역시 가족을 위해 오랫동안 살아온 아버지다.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채우며 살아가는 동안 한 사람의 개인보다 가족을 바카라임지는 ‘아버지’라는 이름이 점점 더 커져간다. 바카라을 읽으며 내게 ‘가출’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집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 붙은 수많은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은 마음처럼 느껴졌다. 가족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며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이 어느 날 문득 자기 자신에게 묻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디에 있지. 가족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동안,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는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을 하고 나니 남편의 말도 조금 다르게 들렸다.

“다 주고 혼자 떠나고 싶다.”

왜 하필 다 주고 떠나고 싶다고 했을까. 정말 모든 것을 버리고 싶었다면 그냥 떠나고 싶다고 말했을 텐데, 떠나는 상상 속에서도 가진 것을 가족에게 남겨두고 간다. 그 말을 곱씹다 보니 조금 서글퍼졌다. 떠나고 싶은 순간에조차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같아서. 물론 남편의 마음을 내가 다 알 수는 없다. 그 말이 단순히 지친 어느 날의 푸념이었을 수도 있고, 혼자 여행 한번 실컷 해보고 싶다는 뜻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면서 사람에게 찾아오는 공허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열심히 일했고, 아이들을 키웠고, 가족을 지키며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면 가족은 제법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오래 달려왔을까’ 하는 질문 앞에 서게 되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아빠를 찾을 일은 참 많았다. 데려다 달라고 할 때도, 용돈이 필요할 때도, 무언가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도 아빠를 불렀다. 그런데 어느새 아이들이 자랐다. 각자의 친구가 생기고, 각자의 세계가 생겼다. 부모의 손을 필요로 하는 일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때는 앞으로 올라갈 곳을 바라보며 달렸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지나온 시간이 앞으로 남은 시간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질 때가 찾아온다. 그 사이에서 중년의 가장은 어떤 마음으로 서 있을까. 나는 그 마음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이제는 남편이 '훌쩍 떠나고 싶다'고 말할 때 예전처럼 웃어넘기지만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까이 살면서도 서로의 역할에는 익숙하고, 서로의 마음에는 의외로 서툴다.

나 역시 남편에게 좋은 남편이기를,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이기를 바랐다. 가족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사람이기를 당연하게 기대한 순간도 많았다. 그러면서 가끔 잊었다. 그 많은 역할을 내려놓아도 그에게는 여전히 자기 이름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어쩌면 중년의 외로움은 곁에 사람이 없어서 생기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오래 살아오느라, 정작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지 못했던 시간에서 오는 외로움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다음에 남편이 또 그런 말을 한다면 조금 다르게 대답해보고 싶다.

“다 주고 가지는 마. 그냥 당신 것 챙겨서 긴 여행 한번 다녀와.”

잠시 남편도, 아빠도, 가장도 내려놓고 자기 이름으로만 있을 수 있는 시간. 그런 시간이 있다고 해서 가족을 덜 사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다시 돌아와 자신의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일일지도 모른다. 가장에게 필요한 것은 더 단단해지는 법만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 것. 아무도 바카라임지지 않는 시간을 가져도 되는 것. 가족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선택해도 괜찮다는 것. 어쩌면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마음을 조금 더 자주 알아봐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금》을 덮고 남편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린다.

“다 주고 혼자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어.”

다음에 그 말을 다시 듣게 된다면 예전처럼 웃으며 “나도 데리고 가”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번에는 먼저 물어볼 것 같다.


“당신은 요즘,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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