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고마웠던 일보다 서운했던 일이 더 선명하게 기억난다.
누군가 내게 건넨 따뜻한 말 열 마디는 어느새 희미해지는데, 무심코 던진 차가운 말 한마디는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그날의 표정과 말투, 심지어 대화가 오갔던 장소까지 떠오를 때가 있다. 기억은 참 불공평하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살아오면서 참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 어려운 순간 손을 내밀어 준 사람도 있었고,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곳에서 조용히 나를 배려해 준 사람도 있었다. 그때는 분명 고마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은 흐릿해지고, 기대했던 순간에 돌아오지 않았던 말 한마디가 더 오래 남는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랬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배려를 너무 쉽게 당연하게 여겼다. 늘 내 곁에 있어 주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거나 기대와 다른 반응을 보이면 그동안 쌓인 고마움은 잠시 잊고 서운함부터 꺼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참 모순된 마음이다. 그 사람이 내게 해준 수많은 일보다 해주지 않은 한 가지에 더 마음을 빼앗겼으니 말이다. 열 번의 다정함은 익숙한 일상이 되었지만 한 번의 무심함은 특별한 사건으로 남았다. 왜 그럴까. 어쩌면 고마움에는 익숙해지고 상처에는 예민해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순간은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만, 아팠던 순간은 다시는 같은 일을 겪지 않으려는 듯 몇 번이고 되짚어 본다. 상처를 오래 기억하는 일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서운함을 오래 품었다고 해서 무조건 마음이 좁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상처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아물지 않는다. 고마운 일이 많았다는 이유로 아팠던 기억까지 없던 일로 만들 필요도 없다. 다만 나는 가끔 내 기억이 한 사람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려 한다.
누군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이 서운했던 순간이라면, 그 이전의 시간도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내게 건넸던 다정한 말, 별것 아닌 듯 내밀었던 손길, 내가 당연하게 누렸던 배려까지. 그러다 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서운했던 순간에도 그 사람은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번의 실망으로 그 사람의 전부를 판단하는 일은 조금 늦출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내가 베푼 친절은 오래 기억해 주길 바라면서, 정작 내가 건넨 무심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나는 나의 선의를 기억하지만, 상대는 나의 무심함을 기억할 수도 있다.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도 서로 다른 장면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기억을 중심으로 관계를 이해한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받은 상처에만 몰두한 나머지, 상대가 느꼈을 서운함에는 눈을 감는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쉬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기 때문이다. 이제는 고마움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려 한다. 마음속으로만 간직했던 감사도 기회가 된다면 말로 전하고 싶다. 오래된 서운함을 억지로 지우기보다, 그 곁에 잊고 있던 고마운 기억도 나란히 놓아보려 한다.
어쩌면 성숙해진다는 것은 상처를 잊는 능력이 아니라, 상처 너머의 시간까지 함께 기억할 줄 아는 일이 아닐까. 누군가를 기억할 때, 그 사람이 내게 남긴 아픔만큼이나 따뜻함도 오래 간직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