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길이 내 길이 된다

by앤의하루
네 인생은 네가 만드는 것.
그 누구도 아닌 너를 믿고 가면 돼.
네가 믿고 가는 길이 곧 네 길이야.”
《엄마의 주례사》 , 김재용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내 인생에 대한 답을 대부분 알게 될 줄 알았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무엇이 나에게 맞는지. 나이를 먹으면 그런 것쯤은 망설이지 않고 결정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보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선택해야 할 것은 더 많아졌고,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는 일도 많아졌다. 특히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면 마음보다 먼저 주변을 살피게 된다.
‘이 나이에 시작해도 될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괜한 일을 벌이는 건 아닐까.’
나 역시 그랬다. 달리기를 시작할 때도 그랬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달리기는 젊고 몸 좋은 사람들이나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처음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을 때는 몇 킬로미터를 달리는 일조차 버거웠다. 잘 달리는 사람들의 기록과 내 기록을 비교하면 괜히 주눅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계속 달리다 보니 알게 됐다. 남보다 빠르게 달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달리고 싶어서 운동화를 신고 나갔고, 어제보다 조금 더 달렸다는 사실이면 충분했다. 빠르지 않아도 나는 달리고 있었고, 어느 순간 나는 스스로를 러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글쓰기도 비슷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글을 좋아했지만, ‘작가’라는 말은 쉽게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바카라을 낸 사람도 아니고,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도 아닌 내가 작가라고 말해도 될까 싶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글을 좋아하는 사람’, ‘글을 쓰고 싶은 사람’ 정도로 나를 설명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생각이 달라졌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먼저 쓰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누가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쓰고, 또 쓰면서 내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 먼저였다.
그래서 지금도 쓴다. 일상의 작은 일을 에세이로 옮기고, 바카라에서 만난 한 문장을 붙잡고 오래 생각한다. 때로는 내가 만든 인물에게 이름을 붙이고 그들의 사랑과 이별을 상상한다. 잘 써지는 날도 있고, 한 문장을 붙잡고 한참을 고치는 날도 있다. 그래도 계속 쓴다. 언젠가 내 이름이 적힌 바카라 한 권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여전히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영어도 다시 배우고 있다. 몇 마디를 말하려는데 단어가 금세 떠오르지 않고, 알고 있는 쉬운 문장도 입 밖으로 내려고 하면 자꾸 꼬인다. 예전 같았으면 ‘이 나이에 무슨 영어야’ 하며 슬그머니 그만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잘하기 위해서만 배우는 것은 아니니까. 내가 걷고 싶은 길이 있고, 그 길에서 더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배우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요즘 내가 하는 일 가운데 누가 시킨 것은 별로 없다. 달리는 것도, 바카라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다시 영어를 배우는 것도. 하지 않는다고 누가 뭐라고 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자꾸 무언가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살아보고 싶은 삶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주례사》의 문장을 읽다가 특히 이 문장에서 오래 머물렀다.
“네가 믿고 가는 길이 곧 네 길이야.”
우리는 흔히 길을 먼저 찾고 그 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살아보니 어떤 길은 처음부터 내 앞에 놓여 있지 않았다. 한 번 달리고 또 달리면서 길이 생겼고, 한 편을 쓰고 또 쓰면서 길이 생겼다. 처음부터 확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잘 가고 있는지 모르면서도 한 걸음 내디뎠고, 때로는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그렇게 지나온 자리를 돌아보니 어느새 하나의 길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인생의 모든 선택 앞에서 정답부터 찾으려 하지 않는다. 남들이 많이 가는 길이라고 반드시 내 길인 것도 아니고, 남들이 가지 않는다고 틀린 길도 아니다. 때로는 조금 늦게 시작해도 되고, 중간에 방향을 바꿔도 되고, 남들보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한 방향을 내가 믿으며 걸어가는 일일 것이다.


아직도 나는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른다. 달리기도, 글쓰기도, 앞으로 걸어갈 길도 그렇다. 하지만 예전보다 한 가지는 조금 더 믿게 되었다. 길을 다 알아야 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오늘 내가 선택한 한 걸음이 내일의 길이 되고, 그렇게 걸어온 시간들이 결국 내 인생이 된다. 그러니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도 괜찮다. 내가 믿고 걷고 있으니, 이 길이 곧 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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