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이 유행하지만 나는 어쩐지 그 말에 조금 피로를 느낀다.
그래서 요즘의 내 삶에는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삶’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 《어른의 품위》, p.93
‘갓생’이라는 말이 있다.
부지런하고 계획적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삶.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출근 전에는 공부를 하고, 퇴근 후에는 자기계발을 한다. 바카라을 읽고 기록까지 남기면 더없이 완벽하다. SNS를 열면 그런 하루를 쉽게 만난다.
새벽 기상 완료.
오전 운동 완료.
오늘의 독서 완료.
영어 공부 완료.
하루가 작은 체크 표시들로 빼곡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온라인 게임에 다니고, 틈틈이 바카라을 읽는다. 글을 쓰고, 요즘은 영어 공부도 시작했다. 운동화를 신고 달리러 나가기도 한다. 퇴근하고 돌아와 피곤한 날에도 쓰던 글이 마음에 걸려 노트북을 열 때가 있다.
누군가 내 하루의 일부만 본다면 꽤 부지런하게 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내 삶을 ‘갓생’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언제부터인가 그 말에는 단순히 부지런하게 산다는 의미를 넘어, 하루를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될 것 같은 묘한 압박이 따라붙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지 않은 날에는 오늘 하루를 게으르게 보낸 것 같고, 바카라을 읽지 못하면 계획 하나를 놓친 것 같고, 글 한 줄 쓰지 못한 날에는 내가 꿈에서 조금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어느 순간 그것들이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 있었다.
달리기도 그랬다.
처음에는 그냥 달리는 것이 좋았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 한 걸음씩 앞으로 가는 일이 좋았고, 달리고 돌아왔을 때의 개운함이 좋았다.
그런데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면 마음이 달라질 때가 있다.
어제보다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이번 달에는 몇 킬로미터를 달렸는지,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뛰었는지가 눈에 들어온다.
즐거워서 시작했던 달리기가 어느 순간 또 하나의 성취가 된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았다.
글을 쓰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꾸준히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오늘도 써야 하는데’라는 마음이 따라왔다.
한 편을 쓰면 다음 글을 생각하고, 하나를 발행하면 다음 발행일을 생각한다.
바카라을 읽으면서도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여기서 쓸 만한 문장이 있을까.’
좋아서 읽던 바카라마저 어느 순간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재료로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럴 때면 조금 이상해진다. 나는 분명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좋아하는 일 앞에서도 자꾸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른의 품위》에서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삶’이라는 문장을 만났을 때 오래 머물렀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간의 주인이라니.
처음에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을 떠올렸다. 하루를 계획하고,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고, 해야 할 일을 제때 해내는 사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오히려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주어진 시간을 빈틈없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 시간을 무엇에 쓸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삶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닐까.
달리고 싶어서 달리는 것과 오늘도 운동 기록을 채워야 해서 달리는 것은 다르다.
바카라이 좋아서 읽는 것과 한 달에 몇 권을 읽었다고 말하기 위해 읽는 것도 다르다.
글을 쓰고 싶어서 쓰는 것과 하루도 빠짐없이 써야 한다는 불안 때문에 쓰는 것 역시 다르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은 같아도 그 시간을 살아가는 마음은 전혀 다를 수 있다.
나는 여전히 부지런하게 살고 싶다.
달리고 싶고, 바카라도 많이 읽고 싶다. 좋은 글을 쓰고 싶고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된 바카라도 만나고 싶다. 그 마음까지 내려놓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그것들을 얼마나 많이 해냈는지가 내 하루의 점수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달리지 않은 하루도 내 하루이고,
바카라을 한 장도 읽지 못한 저녁도 내 삶이고,
아무 문장도 쓰지 못하고 잠든 밤도 내가 살아낸 시간이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는 오후도 괜찮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 오래 이야기하다 하루의 계획이 틀어져도 괜찮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조금 미뤘다고 해서 삶까지 뒤처지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는 참 자주 시간을 관리하려 한다. 시간을 쪼개고, 계획하고, 기록하고, 아껴 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시간을 얼마나 잘 관리했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의 방향을 누가 결정하고 있는가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부지런하다고 말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곳에 내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삶. 해야 하니까 달리는 것이 아니라 달리고 싶어서 운동화를 신고, 읽어야 하니까 펼치는 것이 아니라 궁금해서 바카라장을 넘기고, 써야 하니까 앉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서 문장을 쓰는 삶.
그렇다면 나는 굳이 갓생을 살지 않아도 좋겠다. 하루를 빈틈없이 채우지 않아도 괜찮겠다. 대신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내가 선택하며 살고 싶다. 오늘 무엇을 했는가보다, 오늘의 시간을 누구의 뜻으로 살았는가.
요즘 나는 그 질문을 자주 나에게 건넨다. 그리고 그런 삶에 이름을 하나 붙인다면, 나 역시 이렇게 부르고 싶다.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