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름, 무명작가에서 인기 작가가 되기까지 스토리:읽다

그녀의 모든 작품을 읽고 그녀를 파해치다.

by아호파파B


작가처럼 살다 보니, 정말 작가가 되었다

첫 바카라을 내기도 전에 전업 작가로 뛰어들었다.

10년간 방에 틀어박힌 채 읽고 쓰는 삶을 살았다.

언제까지 이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답을 내지도 못한 채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보내며 30대가 지나갔다.


어느 날 새벽, 그녀는 자다가 '헉' 소리를 내며 깨어나 되뇐다.

큰일 났다. 글만 쓰다 마흔이 넘어버려서, 정말 큰일 났다.


2021년 1월 1일은 내 인생 최악의 날로 꼽을 만하다. 무슨 일이 생기지도 않았고 어디 아픈 데도 없는데, 마음을 앓으며 처음으로 밤을 지새운 날이기 때문이다. 밤을 꼬박 새우며 나는 마침내 인정해야 했다. 이젠 허울 좋은 전업 작가 생활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 황보름, 『단순 생활자』


작가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후 일주일 만에 면접을 치르고 사원증을 받았다.

10년 방에 박혀 있던 사람이 다시 출퇴근하는 온라인 게임인이 된 거다.

다시 온라인 게임인이 되니 "황당하게도 휴가를 즐기는 마음"이 되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퇴근하면 여느 온라인 게임인들처럼 텔레비전을 보고, 운동을 하고, 술을 마시는 저녁.

글을 놓아버린 사람에게 찾아온, 글을 쥐고 있던 10년 내내 누려보지 못한 평범한 저녁이었다.


작가가 되겠다고 글을 훈련하기 시작하고부터 10년 동안 단 하루도 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쓰고 있을 때도, 쓰고 있지 않을 때도 글을 생각하며 살았다. 바닥에 글이라는 깃대를 꽂아놓고 그 깃대를 힘껏 움켜쥐며 살았다. (…) 10년 만에 깃대에서 손을 떼니 온몸이 스르륵 풀리며 마음이 느긋해졌다.
— 황보름,『단순 생활자』


그리고 인생의 아이러니는 바로 이때 시작한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무렵,

그녀는 온라인카지노X밀리의서재 공모전에 출품해 둔 소설 한 편이 수상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몇 개월 후 회사에 앉아 있다가 수상작이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 황보름,『단순 생활자』


10년을 움켜쥐어도 오지 않던 소식이, 펜을 놓으니 회사 바카라상 위로 날아온 것이다.

이 소설이 바로 전 세계 50개국에 번역 출간된『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이다.


이런 영화 같은 이야기는 실제 이 소설을 집필 한 황보름 작가의 비하인드 스토리이다.


다시 불안할 테고 내 노력의 시간은 또 곧 밥값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또 살고 싶었다. (...) 이미 찍어 놓은 마침표는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긴 마침표 뒤에 다음 문장을 이으면 되지.
작가의 특권이라면 본인이 쓰고 있는 이야기의 마지막 정도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 황보름,『단순 생활자』




소설가로 유명해졌지만 사실 그녀는 에세이스트였다.


휴남동이 출간되기 전 그녀는 세 권의 에세이 바카라을 냈다.
『매일 읽겠습니다』, 『이 정도 거리가 딱 좋다』, 『난생처음 킥복싱』.
그리고 휴남동 이후 『단순 생활자』 에세이를 출간하며 휴남동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기도 한다.

그러니 그녀의 에세이는 그녀의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한 생각의 뿌리이기도 하다.

그녀의 소설 (줄여서) 『휴남동』, 최근에 출간한 『윗집 부부』 모두 느슨한 연대와 타인의 이해, 삶의 희망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혼자 잘 지내는 법을 벼리면서도 가끔은 혼자가 아니어야 한다는 걸 배워간 시간, 타인이란 존재에 대한 생각 등 에세이 네 권을 통해 기록된 사건들이, 소설이라는 형태로 다시 지어진 것이다.
에세이가 그녀가 직접 살아낸 삶이라면, 소설은 그 삶을 토대로 지은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녀를 제대로 만나려면 소설과 에세이를 함께 읽어야 한다.


이 글을 통해 그녀의 지난 작품들을 따라 그녀의 삶을 되돌아보며 정리해보려 한다.



부모님도 9시 뉴스 정도만 보고 10시가 되면 TV를 껐다. 그 시각 이후로 우리 집엔 정적이 흘렀고 (…) 살금살금 걸어 다녀야 할 만큼 고요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잠을 자거나 바카라을 읽는 것뿐이었다.
— 황보름,『매일 읽겠습니다』


침대에 누워 바카라을 읽던 엄마,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일을 하다 잠들던 가족.
집안의 정적 속에서 독서는 공기처럼 스며든 그녀의 환경이었다.


등굣길에 어젯밤 읽은 바카라 이야기를 흥분해서 떠들면 조용히 귀 기울여주던 친구들.
하루에도 몇 번씩 바카라상에 턱을 괴고 바카라이 건네준 이야기를 곱씹던 사탕보다 더 달콤한 시간.
사춘기에는 시험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 밤이면 『좀머 씨 이야기』의 좀머 씨가 남긴 외침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를 혼잣말로 몇 번 내뱉고서야 다시 미적분 문제를 풀던 시간들.


바카라이 그녀에게 무엇이었는지는 『매일 읽겠습니다』에서 비유 하나로 요약된다.

어부가 밧줄로 원통형 물통에 몸을 묶고 바다로 뛰어들었듯, 나는 이야기와 문장에 나를 묶고 다음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바카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했지만, 많은 경우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황보름,『매일 읽겠습니다』


바카라이 사람을 단번에 구원하지는 않는다는 것, 다만 붙들고 버틸 자리를 만들어준다는 것.

휴남동 서점에 오는 손님들이 바카라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뀌는 게 아니라 그저 그곳에 머물며 천천히 회복되는 이유가, 그녀가 갖고 있는 '바카라'에 대한 생각에 다 적혀 있는 듯하다.




컴퓨터공학과를 나와 프로그래머가 된 그녀


『매일 읽겠습니다』 첫머리에서 그녀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문장은 이렇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서른 살에 회사를 그만두며 마흔 살까지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기로 계획했는데, 벌써 찾았다. 가능하면 평생 바카라을 읽고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매일 생각한다.
— 황보름,『매일 읽겠습니다』


어른의 삶은 이 고요한 독서가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나 보다.

컴퓨터공학과를 나와 프로그래머가 된 그녀는 두세 달씩 하루도 쉬지 못하는 야근의 시간을 지나며, 출근길 지하철에서 스스로도 놀랄 만한 생각과 마주친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 서서 창밖으로 어두운 터널을 마주할 때면, 나도 모르게 딱 일주일만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다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 황보름,『매일 읽겠습니다』


그녀는 이 시절의 자신을 그리스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의 쇠침대에 눕혀진 사람에 비유한다.

침대보다 크면 잘리고, 작으면 늘려지는 침대.

"몸은 그대로였지만 마치 영혼 어딘가가 잘려나가거나 아니면 늘려진 것 같았다."

정해진 규격에 사람을 맞추는 곳에서, 규격에 맞지 않는 영혼이 어떤 모양으로 구겨졌는지 담담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에세이 『단순 생활자』에서도 온라인 게임인 당시의 마음을 이렇게 떠올리는데...


회사에서 엑셀을 띄울 때면 내 마음은 집에서 한글을 띄우고 있었다.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처럼 가로세로줄이 촘촘히 그어진 엑셀이 아닌,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감도 잡기 힘든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한글을 띄워놓고 하루 종일 막막하고 싶었다.
— 황보름,『단순 생활자』

가로세로줄이 촘촘한 엑셀과, 막막하지만 평야처럼 빈 화면이 펼쳐진 한글.

엑셀과 한글의 비유는 그녀가 앞으로 어떤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나아가 살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시간들은 두 소설의 인물이 되어 다시 태어난다.

『휴남동 서점』의 영주가 그렇다.

소설 속 북토크에서 일에 관한 바카라을 이야기하던 영주는 이렇게 말한다.

"일을 하다 보면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내가 소진되고 있구나 하는 느낌. 긴 시간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기력이 없어서 취미생활 하나 못해요."

소설 속 대사이지만, 입원을 소망하며 출근길에 서 있던 작가 자신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렇게 도시에서 해오던 모든 것을 그만두고 서점을 연 영주의 첫 몇 달을, 소설은 이렇게 그린다.

서점을 열고 처음 몇 개월 동안은 메모를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정지된 시간이었다. 겨우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었다. (…) 문만 열어놓았을 뿐 영주는 사실상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서점은 아픈 동물처럼 숨을 헐떡이며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 황보름,『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최신작『윗집 부부』의 딸 선지도 그렇다.

말 잘하고 자신만만해서 아버지 경직의 눈에는 "이 세상의 조류에 딱 들어맞게 태어난, 한 번도 삐끗한 적 없는 아이"였던 선지.

그러나 소설은 그녀의 안쪽을 이렇게 들여다본다.


회사는 선지가 속한 부서의 부서원들을 잘근잘근 씹어먹고 있었다. (…) 마음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할 만큼 느린 속도로 침잠해 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퇴근 후 바닥에 고꾸라져 있는 자기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이었다. 무릎을 꿇고 두 주먹 위에 이마를 묻은 채,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도 모를 시간 동안 웅크려 있었다.
— 황보름,『윗집 부부』


겉은 멀쩡했지만 영혼 어딘가가 잘려나가고 있던 프로그래머 황보름,

번아웃 이후 서점을 오픈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서점에 하염없이 앉아만 있던 영주,

자신도 모르게 가라앉다가 바닥에 고꾸라진 선지.

세 사람은 어쩌면 같은 자리에서 출발한 인물들이다.

그래서 황보름의 소설에서는 무너지는 장면도, 회복하는 장면도 관념이 아니라 체험의 질감을 갖는다.

영주가 서서히 기력을 되찾고 선지가 상담실 의자에 앉기까지의 그 속도야말로, 작가 자신이 실제로 걸어본 회복의 속도이니 말이다.


... 다음화에 계속 이어집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고 그 작가의 작품 세계 깊숙이 들어가는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쓰고 있는 글은 황보름 작가의 삶을

읽다 → 견디다 → 쓰다 → 단련하다 → 멈추다 → 다시 시작하다 → 살아가다

이렇게 크게 구분하여 집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읽다 → 견디다'까지 집필했습니다.

다음 글은 '쓰다'부터 이어가려 합니다.





사실...

이번에 황보름 작가를 모시고 온라인 북토크를 진행합니다.

북토크를 통해 더 깊이 있는 대화를 하기 위해 이렇게 글로 정리해보고 있습니다.

혹시 그녀의 더 속 깊은 이야기를 듣기 원하시는 분은 아래 온라인 북토크에 신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www.moonjangsai.com/b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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