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하지만 당당하게 산다는 것

by여운

사람을 대할 때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겸손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어디까지가 겸손이고 어디부터가 비굴인지. 당당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도 있는데, 그게 또 교만으로 보일까 봐 한 발 물러서게 된다. 겸손과 비굴, 교만과 당당함. 이것들이 비슷한 결로 묶여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겸손과 당당함은 반대가 아니라 같은 방향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교만과 비굴이 한 쌍에 가까웠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 앞에서 쉽게 작아진다. 돈에 자신이 있으면 더 많은 돈을 가진 사람 앞에서 위축되고, 권력에 익숙하면 더 높은 권력 앞에서 눈치를 본다. 기준이 ‘위’에 있기 때문이다. 계속 비교하게 되고, 그 비교에서 밀리면 자연스럽게 비굴해진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쁜 사람을 보면 괜히 신경이 쓰였고, 학벌이 좋은 사람 앞에서는 말투가 달라졌다. 반대로 내가 더 낫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는 속으로 평가하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했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마음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비굴하면서 교만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조금 지치기 시작했다. 계속 비교하고, 그 안에서 위치를 정하고, 맞추려고 애쓰는 게 생각보다 피곤했다. 그래서 더 가지려고 하기보다, 욕심을 조금 내려놓는 쪽으로 바꾸기로 했다. 남이 얼마나 가졌는지보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에 더 집중하는 쪽으로.

누가 더 나은지 따지지 않으니까, 상대를 평가할 일이 줄어들었다. 대신 대화가 잘 통하는지, 같이 있는 시간이 편한지가 더 중요해졌다. 그 기준으로 사람을 보니까 훨씬 단순해졌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안에서는 조금 더 당당해졌다. 굳이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그렇다고 스스로를 낮출 필요도 없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아는 것이다.”라는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내가 가진 것을 과하게 부풀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족하다고 깎아내리지도 않는 상태. 그게 겸손이라면, 그 위에서는 자연스럽게 당당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생각한다. 겸손하게 살되, 비굴하지 않게. 당당하게 살되, 교만하지 않게. 말로는 단순하지만, 결국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남과 비교하는 데 두면 흔들리고, 내 안에 두면 조금 안정된다.

완벽하게 그렇게 살지는 못해도, 적어도 방향은 알게 된 것 같다.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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