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한 일이 뭐지?

코딩 에이전트를 처음 만난 날, 내가 하던 일에서 내가 빠지기 시작했다.

by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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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혹시 이 코드 왜 죽었는 줄 알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채팅창에 질문을 던져 봤다. 잠시 뭔가를 뒤지는가 싶더니, 내가 열어보지도 않았던 다른 파일의 코드를 인용하며 대답을 쏟아냈다.


"코드를 따라가 보니 segmentation fault의 직접적인 원인은 267라인의 ABC 포인터입니다. 유효한 메모리 주소가 설정되지 않은 상태로 보입니다. 원인 분석을 계속할까요?"


나는 그저 '왜 그런 거야?'라고 물었을 뿐이었다.


"아니, 너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뭐 이런 사용자가 다 있어?) 네 저는..."


녀석이 스스로 디버깅을 하고 있다. 게다가 정확한 진단까지. 코딩 에이전트를 처음 제대로 써본 날, 나는 그렇게 문화 충격에 빠졌다. 등골을 타고 묘한 전율이 올라왔다.




2025년 여름, 새로운 회사에 이직한 뒤,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 몇 개월 동안 주로 문서를 읽었다. 스펙을 쓴 사업부 엔지니어들, 주요 팀 매니저들과 Q/A 미팅을 하며 회사 제품의 구조, 개발 프로세스, 각 팀의 분위기 등으로 머릿속을 채워 나갔다.


"VVV와 CCC를 써보세요. 설치 및 사용법에 대해서는 직원들이 작성해 놓은 사내 문서가 넘치도록 있고요.."


미팅 도중 한 시니어 아키텍트가 AI 코딩 툴을 소개했다. 내가 반드시 익혀야 하는 사내 시스템의 개발자 중 한 명이었다. 그 무렵 업계는 바이브 코딩이라는 말이 한창 들리기 시작했고, 회사는 직원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AI 사용을 강조하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여전히 한 땀 한 땀 손코딩을 했다. 직전 조직은 AI 도입에 비교적 조심스러웠고, 주변에서도 유닛 테스트처럼 반복적인 일을 일부 맡기는 정도만 눈에 띄었을 뿐이다. 나 역시 AI가 내 코드를 대신 뒤지고 디버깅하는 모습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 그거 꼭 써야 돼?"


새로운 회사의 AI 코딩 압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동안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적응 기간에는 실제 코딩보다, 스펙, 논문, 회의록 등등 텍스트를 읽고 쓰는 일이 주 업무라는 핑계를 댔다. 그래서 주로 챗봇하고만 놀았다.


그러나 결국 나는 엔지니어 아니던가. 더는 도망 다니지 못했다. 결국 사내 시스템을 익혀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사내 저장소에서 해당 코드를 내려받고 개발 환경을 세팅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을 제대로 빌드하려면 회사에서 표준으로 지정한 새로운 IDE를 써야 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 안에 AI 코딩 에이전트가 들어 있었다.


이건 내가 써본 적이 없었다. 물론 이전 회사에서도 접할 기회는 있었다. 다만 기존 IDE로도 코딩이 가능했기에 굳이 바꿀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누군가 새로운 기능이 있다며 호들갑을 떨곤 했지만, 나는 시큰둥했다.


새로 설정한 IDE로 프로젝트 코드를 열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어렵사리 빌드를 끝냈다. 그리고 대망의 테스트 실행. 그런데 진행 도중 갑자기 오류를 내며 죽어버린 것이다.


'아 씨... 뭐가 문제지? 성가시게스리..'


이런 경우 보통 콜스택을 따라 죽은 지점부터 거꾸로 올라갔다. 의심 나는 곳에 중단점을 걸고, 변수 값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원인을 찾는 식이었다. 내가 수없이 해온 익숙한 디버깅 방식이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IDE가 문제였다. 이러한 일련의 디버깅 기능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아직 파악이 안 되어 쓰기 매우 불편했다. 짜증이 몰려왔다.


그러다 우연히 IDE 한쪽에 웬 채팅창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 혹시?


"너... 혹시 이 코드 왜 죽었는 줄 알아?"




녀석의 디버깅 덕분에 나는 비교적 수월하게 문제를 찾았고, 재빌드 후 실행에 성공했다.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고 있는 걸 보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내가 한 일이 뭐지?'


나는 이번에 디버깅 과정의 대부분을 직접 하지 않았다. 콜스택을 따라가지도 않았고, 중단점을 걸지도 않았고, 변수 값을 일일이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한 일라곤 '문제가 뭐니?'라고 자연어 몇 마디를 던진 것뿐이었다.


예전엔 코딩을 하는 시간보다 버그를 잡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경우도 흔했다. 코드 작성은 며칠 만에 끝냈는데 디버깅에 1~2주를 쓰기도 했다. 오랫동안 내가 직접 통과해야 했던 그 과정을, 이번에는 AI가 대신 지나갔다. 놀랐다. 편했다. 그런데 묘하게 마음 한구석이 걸렸다.


이렇게 내가 하던 일에서 내가 하나씩 빠져나가면, 나는 어디에 남아있어야 할까.



- 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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