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면접 문제를 맞히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AI와 함께 다시 공부했다.

by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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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그게 이 문제의 정답입니다."


좀 전까지 심각한 표정을 짓던 면접관은 비로소 환하게 웃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것저것 말해봤지만, 면접관이 원하는 것은 개별 사례가 아니라 일반화된 답이었다. 결국 이전 회사에서 RTL 엔지니어와 일하며 실제 설계 문제를 풀었던 기억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고, 그 경험과 오래전 배웠던 기초 지식을 연결해 답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질문은 내가 AI와 준비했던 예상 문제에는 없었다.




2024년 겨울, 두 달 가까이 소식이 없던 NVIDIA로부터 인터뷰를 보자는 연락이 왔다. 반나절 고민한 뒤, 나는 이를 수락했다. 인터뷰 일정은 약 2주 뒤로 잡았다. 경험상 그 정도면 준비기간으로 적당했다. 준비 기간이 길 수록 좋겠지만, 3주, 4주 뒤처럼 인터뷰 일정을 너무 멀리 잡는 것도 좋지 않다. 채용 측에 안 좋은 인상을 줄 수도 있고, 그 사이 다른 후보자에게 기회가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2주 동안 무엇을 공부해야 하지? 어떤 질문이 나올까?


고민했다. 경력이 짧지는 않았기에 내 이력서에 적힌 과거의 발자취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왜 그렇게 설계했는지,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떻게 풀었는지"와 같은 질문은 오히려 자신이 있었다. 면접자를 내 공간으로 데리고 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면접자가 나를 자신의 공간으로 끌고 가는 질문이었다. 즉 면접자의 팀에서 현재 겪고 있는 문제, 또는 기습적으로 아주 기초적인 하지만 내 기억에서 사장되어 버린 지식들이었다.


20년 넘게 업계에서 일하면서 내가 쓰는 지식은 오히려 진화되어 있었다. 매일 사용하는 것은 잘 알지만, 대학 때 배운 컴퓨터구조 전체, 그래픽스 전체, 아키텍처 기본 원리들이 머릿속 곳곳에 흩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경력이 쌓인다고 학부 때 배운 지식까지 차곡차곡 보존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주 쓰는 것은 깊어졌지만, 쓰지 않는 것은 기억 저편으로 밀려났다.


면접 후 가장 회한이 남는 경우는 이런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못 할 때다. 배운 적, 경험이 없어서 대답을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애초에 내게 없는 지식이니까. 하지만 과거에 명백히 내게 있던 지식을 기억해 내지 못해 대답을 못한다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게 된다. '아니 학부 수준의 이런 기초적인 것도 모른다고?'라는 듯한 면접관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야 하는 것은 덤이다.


사실 이미 아키텍트 포지션으로 몇몇 빅테크 면접에 응한 경험이 있어, 이미 공부하고 정리한 자료들이 있었다. 일종의 나만의 족보였다. 분야마다 PPT로 주요 지식들을 정리해 두고, 회사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보완해 온 자료였다. 새로운 회사의 면접이 잡히면 이 자료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예전과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AI였다.


마지막으로 이 자료를 본격적으로 꺼내 들었던 것은 2022년, 이전 회사의 면접을 준비할 때였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대화형 AI를 곁에 두고 공부할 수 없었다. ChatGPT가 세상에 나온 것도 그해 말의 일이었다.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바카라과 논문, 강의자료를 찾아가며 하나씩 확인하는 것이 당연했다.


2년 여가 지나 다시 같은 자료를 펼쳤다. 슬라이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옆에 질문을 받아줄 상대가 생겨 있었다. 이제는 부족한 자료는 조사시켰고, 궁금한 것이 생길 때마다 물었다. 오래전 배운 개념의 의미를 다시 설명해 달라고 하고, 비슷한 개념의 차이를 비교해 달라고 했다. 설명이 너무 추상적이면 더 구체적으로 물었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용과 다르면 다시 따져 물었다.


필요하면 미국 주요 대학의 CS 공개 강의자료도 다시 펼쳐봤다. 학부 시절 배웠던 컴퓨터구조와 그래픽스의 기본 개념부터, 이후 실무에서 익숙해진 아키텍처의 원리까지 빠르게 훑었다. 신기한 것은 처음 배우는 느낌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어떤 개념은 이름을 보는 순간 예전에 배웠던 내용이 조금씩 되살아났고, 어떤 것은 설명을 듣고 나서야 “맞아, 이게 있었지” 하는 기억이 돌아왔다. 학생 때는 시험을 위해 외웠던 개념이었는데, 수십 년의 실무 경험을 가지고 다시 보니 전혀 다르게 이해되는 것도 있었다.


경력이 쌓이면 지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주 쓰지 않는 지식부터 접근하기 어려운 곳으로 밀려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AI는 새로운 것을 가르치는 선생이라기보다, 기억의 서가 깊숙이 밀려난 지식을 다시 찾아주는 사서였다. 바카라은 원래 내 것이었다. 다만 어디에 꽂아두었는지를 잊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내 과거의 지식을 복원한 뒤 나는 AI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기초를 훑는다고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포지션은 신입이나 중간 경력자를 뽑는 자리가 아니었다. 면접관 중에는 디렉터와 임원도 있었다. 이런 면접에서는 단순히 어떤 기술을 아느냐보다, 그 기술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 지난 경험을 통해 어떤 판단 기준을 갖게 되었는지를 묻는 대화가 훨씬 많다. 즉, 경력의 길이보다, 그 축적한 시간이 그 사람에게 어떤 시야를 만들어 주었는가를 보는 자리였다.


그래서 AI에게도 단순한 예상되는 기술 문제를 만들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 내 이력과 지원하는 역할, 면접관의 직급을 놓고, 어떤 종류의 대화가 오갈지를 함께 상상했다. 지난 프로젝트의 의사결정을 어디까지 파고들 수 있을지, 기술의 방향을 묻는다면 어떤 질문이 가능할지, 서로 다른 선택지 사이의 상충을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을 정리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AI가 만들어준 답을 외우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질문을 하나씩 받아보며, 내 생각이 어디까지 정리되어 있는지를 확인했다. 답이 나오지 않으면 왜 그런지 다시 생각했다. 어떤 질문은 내 빈틈을 보여줬고, 어떤 질문은 내가 그동안 근거 없이 직관으로만 판단해 온 것임을 되돌아보게 했다.


마지막으로 난 AI와 함께 역방향도 준비했다. 내가 받을 질문이 아니라, 내가 던질 질문이었다. 흔하디 흔한 "팀 문화는 어떤가요?"가 아니라 디렉터, 임원에게 할 만한 질문, 나의 관심과 수준이 드러나는 질문을 AI와 다듬었다.


"현재 팀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요?"

"앞으로 몇 년 동안 이 분야에서 가장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보는 것은 무엇인가요?"


AI가 제안한 질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것들을 골라 나의 언어로 바꿨다. 질문 몇 개를 준비하면서 묘한 생각이 들었다. 면접에서 나는 무슨 질문을 받을지를 고민할 때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볼지를 생각했다. 반대로 내가 던질 질문을 준비하면서, 내가 이 회사와 기술을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정답을 매끄럽게 내는 것만큼이나, 품질이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그렇게 2주가 지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AI는 족집게 강사가 아니었다. 준비했던 질문이 그대로 나온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내가 과거에 수행했던 프로젝트를 깊숙이 파고들거나, 기술의 미래와 방향에 대한 내 생각을 묻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 아주 기본적인 지식을 한두 번 비틀어 적용해야 하는 질문들이 날아왔다. 그중 하나가 이 글의 서두에 등장했던 질문이었다.


처음에는 답을 찾지 못했다. 머릿속에 있는 여러 사례를 꺼내놓았지만 면접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사례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원리를 묻고 있었다. 그러다 이전 회사에서 RTL 엔지니어와 씨름했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며칠 전 다시 들춰봤던 오래된 기초 개념도 함께 따라 올라왔다. 서로 전혀 다른 곳에 있던 두 기억이 순간적으로 연결됐다.


나는 그 둘을 엮어 답했다.


“맞습니다. 그게 이 문제의 정답입니다.”


면접관이 웃었다.


예상 문제가 빗나갔다고 해서 준비가 빗나간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AI가 내게 해준 일은 정답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학부 시절 배웠던 기초 지식,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내용, 그리고 20년 넘게 현장에서 겪었던 경험들을 짧은 시간 동안 다시 바카라상 위에 펼쳐놓게 한 것이다.


실제 면접에서는 그중 무엇을 꺼내 어떻게 연결할지 내가 판단해야 했다. 면접을 준비하는 동안 AI는 기억의 서가 깊숙이 밀려난 바카라들을 찾아주는 사서였다. 하지만 면접장에는 그 사서를 데려갈 수 없었다. 질문을 받은 순간 어떤 바카라을 꺼내고, 서로 다른 페이지를 어떻게 연결해 답을 만들지는 결국 내 몫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AI가 일타강사처럼 면접 문제를 맞혀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녀석은 제대로 맞히지 못했다. 대신 오래전에 내 것이었던 지식을 다시 찾아 주었다. 어쩌면 그게 더 큰 도움이었는지도 모른다. 면접에서 필요한 것은 준비한 답을 꺼내는 능력보다, 처음 보는 질문 앞에서 자신이 가진 것들을 다시 조립하는 능력이었으니까.



- 예나빠



표지 이미지 출처: https://www.newmanwebsolutions.com/blog/remote-work-digital-marketing-atlan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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