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 산맥에서 다리부터 찢고 가실게요

산티아고 순례길 : 1일 차.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byDK
여기였어? 피네네 산맥

생장을 출발하던 날 아침의 마을 풍경


말로만 듣던 피레네 산맥이 여기

아마도 중고등학교 때 '지리'나 '세계사' 이런 과목에서 들었을, 누구도 함부로 ‘못 들어봤다’고는 하지 못 할 유명한 그 산맥이, 여기 있는 것도 산티아고 걸을 준비를 하면서 처음 알았다. 프랑스랑 스페인이 붙어 있는 나라인지도 잘 몰랐지만,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나뉘어 있더라. 산티아고의 여러 순례길 중 '프랑스길'은 그래서, 첫날을 피레네 산맥 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폴레옹이 이베리아 반도 침략할 때 갔다던 '나폴레옹길'을 따라서..


생장을 벗어날 때의 날씨는 이러했다.
정상을 향해갈수록 하늘이 회색빛이 됐다.


오르막 1,300 미터

출발지인 생장은 해발 150미터. 첫날 루트의 최고점은 레포에데르 고개로 1,430미터, 그리고 내리막을 걸어 도착하는 론세스바예스는 해발 950미터다. 총길이는 24km다. 강원도 원주가 해발 150미터라니 그 정도 높이에서 시작해서 1439.5인 소백산 비로봉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500미터쯤 내려와 경기도 운악산(935m)까지 내려온다고 하면... 감이 좀 잡힐까 해서 국내 자료를 서치 했는데 감이 잡히는지 감이 안 오네...


그렇다고 어려웠던가?

오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1430미터까지 올라야 했지만 아주 길고 완만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가기 전에 종종 올랐던 관악산이나 북한산을 오르는 것보다 쉬운 느낌이었다. 심지어 관악산 같은 곳은 김밥 두 줄과 토마토, 물병 두 개, 보조배터리 뭐 이 정도의 봇짐을 가볍게 들었다면, 산티아고에서는 각자가 11kg쯤 되는 중대형 배낭을 메고 갔는데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이게 어쩌면 군대 훈련소 입영한 첫날처럼 아드레날린 같은 것이 솟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참고하시라.)



웃음만 나왔던 날씨

나폴레옹 길은 날씨만 좋으면 꽤 기분 좋은 길이다. 루트의 90% 정도는 포장 또는 비포장 도로를 따라 걷는 건데, 승합차가 지나다닐 정도로 경사가 완만하다. 우리 등산할 때처럼 사지를 써서 비탈을 오르거나 계단을 오르거나 할 높낮이가 나지 않는다. 주변은 딱 트였지, 소와 말이 뛰놀지, 푸릇한 고산지대 식물이 깔려 있지, 이쪽은 프랑스 저쪽은 스페인이지... 기분 좋은 오전을 보낼 수 있다. 다만... 날씨가 좋은 날은 일 년에 며칠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출발할 때 날씨만 믿으면 곤란한 것이 이 지역이다.

정상이 가까워오면서 구름이 사방을 둘러쌌고, 바람이 심했다. 구름 속이었기 때문에, 비가 흩뿌렸고, 바람이 심해서 우비가 계속 뒤집어졌다. 산 꼭대기에는 푸드트럭이 길가에 차를 대고 커피와 차, 샌드위치, 바나나, 쿠키 등을 팔았다. 오아시스 같았다. 트럭 뒤쪽에 널부러 앉아서 바나나를 까먹었다.


거센 바람이 기가 막혀서,

바나나가 든든해서,

차가 따뜻해서 우리는 웃었다.

미쳤기 때문에,

우리는 웃었다.


피레네 산맥 등성이엔 바람이 몹시 분다.


아마 이맘때쯤에 그랬던 것 같은데, 비바람 속을 걸으면서, (산란기 물고기도 아니고) 알이 차오르는 다리를 느끼며, 군대 태권도가 가랑이부터 찢는 것이 생각나, 내뱉었던 말


그래... 원래 첫날은 다리부터 찢는 거지!

길고 긴 산티아고 길의 첫날이,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싶었던 것이다.



모두가 절뚝거리던 내리막

론세스바예스로 내려가는 쪽 비탈은 프랑스길 800km 중에서 최악의 코스 중 하나로 기억한다. 산을 넘으면서 생긴 구름들이 늘 비를 뿌리는 곳이었고 그래서 길은 가파른 진흙탕 길이었다. 가파른 데다가 진흙탕이었고, 첫날이었고, 첫날이었지만 아드레날린은 소진됐고, 이미 20킬로미터 이상을 걸어온 후여서, 미치도록 힘들었다. 우비라는 옷을 입고 뭔가를 한다는 건 진짜 힘든 일이다. 관악산 연주대 정상석에 629m라 적혀 있다. 그러니 거기에서 내려왔다고 보면 되는데, 거기에서 내려온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것처럼' 절뚝거리던 어떤 아주머니도 그 내리막에서 만났다. 아마 그날로 귀국길에 오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크게 다친 몸 상태'셨다.


생장 출발하고 곧 만나는 산장(오리손)에서 도장 하나, 론세스바예스에서 도장 하나.


론세스바예스 순례자 알베르게

그렇게 첫날을 걷고 나면,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수도원 단지에 있는 '순례자 알베르게 Albergue de Peregrinos de Roncesvalles'에 묵게 된다. 오래된 벽돌과 높은 천장을 가진 매우 큰 수도원에서 잔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규모도 규모지만 시설과 시스템이 꽤 잘 돼 있다. 이 정도 퀄리티의 숙소는 전체 산티아고 길에서 탑 5 안에 든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인터넷 사이트도 있고, 예약 시스템이 있어서 두 달 전에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이 다음날 우리 부부에게 상당히 곤란한 상황을 만들긴 했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공식 홈페이지]

https://alberguederoncesvalles.com/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홈페이지의 이미지들. Derechos de autor: Albergue de Roncesvalles.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의 옵션과 가격. Derechos de autor: Albergue de Roncesvalles.


알베르게에 있는 자판기에서 산 음식들. 큰 자판기가 여러 대 있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는 값을 지불하면 저녁과 아침, 도시락도 제공한다. 동네 자체가 일반 상가가 거의 없는 고산지대 리조트 단지 같은 곳이어서 다른 옵션도 별로 없다. 숙소 예약할 때 미리 저녁과 아침 등을 포함하는 게 낫다. 저 이미지는 홈페이지 2026년 9월 현재 버전인데, 숙박은 15유로, 저녁은 14유로, 아침은 6유로, 도시락은 10유로로 돼 있다. 우리도 저녁과 아침을 먹고 도시락을 담아 주는 부직포 가방을 메고 한참을 다녔다. 자판기도 잘 돼 있어서 샌드위치, 요구르트, 음료, 생수 등을 여러 개 뽑아 먹었다.



까미노 패밀리

포도주가 함께 제공되는 저녁식사 때, 처음으로 '까미노 패밀리'를 맺게 된다. 같은 길을 여러 날에 걸쳐서 걷는 게 산티아고라서, 출발하는 날짜가 같은 사람들은 그 후 한 달 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자주 만나게 되는데, 고생 안 해도 친해질 판에 고생까지 하는 동지애가 있으니 가족처럼 친해진다고 하여 '까미노 패밀리'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까미노 Camino는 '길'이라는 뜻. 스페인어로 '걷다' 동사원형은 까미나르 caminar다. 산티아고 길에서 '부엔 까미노! Buen Camino! 라고 서로 인사하는데, buen(좋은) + camino(길)이다. 잘 걸어~ 좋은 길 되길~~ 이런 뜻이다.) 이 날, 론세스바예스의 저녁식탁에서 마주 앉은 사람들은, 내내 잊기 어려운 사람이 된다.





p.s.

이 글은 온라인카지노북 [산티아고를 걸을 때의 기분]을 위해 기왕에 포스팅했던 글을 재연재하는 것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월, 금, 토 연재
이전 02화미친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