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 0일 차 생장

byDK

걷기로 작정한 사람들의 기차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고속열차를 탔을 땐, 배낭을 멘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바욘에서 (두 량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지역열차 TER로 갈아타니, 거기엔 일부 지역민을 제외하곤 온통 '걷기로 작정한 사람들' 밖에는 없었다. 커다란 배낭을 바닥에 눕히거나 가랑이 사이에 끼고 오밀조밀 앉았다. 서로 마주 보며 앉는 구조여서, 처음 보는 타국의 미친 사람들과 어색하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은 생장까지 한 시간 남짓 대화를 이어갔다.


고속열차를 타고 바욘까지 이동한다. 짐칸에 둔 우리들의 배낭.
바욘역에서 내려 매우 짧은 지역기차 TER로 갈아탄다


영어도 짧고 숫기도 별로 없는 동양인 부부.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면서 점점 높아지는 프랑스 산골의 풍경을 열심히 내다보았다. 건너편의 한 서양 여자는 '동양인들이 여긴 왜 왔어?'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힐끗힐끗 봤다. 그녀는 초반 며칠 동안 가끔씩 마주쳤는데, 한 번도 우리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폭풍전야

프랑스의 끝자락이자 피레네 산맥의 기슭에 자리한 마을. 이 마을의 이름은 '생장 피에 드 포흐 Saint-Jean-Pied-de-Port'다. 고개 Port 아래 Pied에 있는 성 요한 Saint Jean의 마을, 정도로 풀이할 수 있는데, SJPP라는 약칭으로 불린다. 4월의 (아는 척 좀 보태서) SJPP는 성수기의 북한산 등산로 입구 같은 풍경이었다. 좁은 골목마다 온통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로 가득했고, 뭔가에 들떠서 각자 자기네 언어로 왁자했다.


생장 골목에서의 우리 부부. 그리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찍은 첫 번째 도장


순례자 등록

생장에서 숙소를 잡은 다음에 할 일은 순례자 사무소에 가서 '순례자 등록'을 하는 것이다. 이름, 성별, 연령대, 국적, 출발지와 도착지, 순례 동기, 순례시작지점 등을 등록한다. 걷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자전거로 순례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이동 방법'도 도보인지 자전거인지 기록한다. 이렇게 등록을 마치고 2유로짜리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은 후 대망의 첫 번째 도장을 받는다. 마지막 준비는 순례자 사무소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가리비 껍데기나 빨간색 십자가가 그려진 '사제 가리비 껍데기'를 사서 배낭에 매는 것.


나는 앞으로 32일 동안 죽도록 걷기로 하였소

이런 선언을 하는 일이다.

순례길 곳곳에서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를 판다.


물집이 잡히기 전의 고운 발로

그 미친 사람들이 모여서 아직 덜 미친 마지막 평범한 오후, 물집이 잡히기 전의 온전하고 고운 발들로 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적당한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고 와인이나 맥주로 폭풍 전야를 즐기고 있었다.


생장에서 이른 저녁으로 먹은 음식과 맥주.


우리는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55번 알베르게에 묵었는데, 싸기는 했지만 그다지 쾌적하지는 않았다. 굳이 조바심 내며 그곳을 찾아 달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비탈에 지어진 건물이라 입구는 이렇게 골목에 면해 있지만 실제 침실은 계단을 내려가야 있다. 그렇다고 지하는 아니고, 출입문 반대편으로는 비탈을 따라서 창이 나 있는 구조였다.


유명한 생장 55번 알베르게.
55 알베르게의 이층침대. 우리의 첫 번째 베드.
55 알베르게가 있는 골목 풍경


불면의 첫날밤

시골이라 그런지 산기슭이라 그런지 내 기억이 그런지… 밤은 일찍 찾아왔다. 다음 날 새벽부터 걸어야 했고, 딱히 할 일도 없었으므로 모두들 일찍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 긴 밤은 도대체 잠을 못 이뤄서 무척이나 피곤하고 긴 밤이 되었다. 새벽 내내 30분 간격으로 잠이 깼던 것 같다. 4시부터 눈을 뜨고 기다리다가, 5시에 맞춰둔 알람이 채 첫 음도 제대로 내뱉기 전에, '닭의 목을 비틀듯이' 재빨리 끄고 일어났다.

핸드폰 캡처. 5시. 맑은 날씨. 생장 드 피에...

내가 눈을 뜬 건지도 구분이 안 가는 어둠 속에서 침대맡마다 켜진 충전기의 LED 등이 그나마 시야에 들어오는 숙소. 부지런하기로 유명한 한국인들을 필두로 상대적으로 바지런한 세계의 순례자들이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소리가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2025년 4월 23일.

미친 척 달려와

미친 듯이 800km를 걷기로 한 우리 부부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날을

그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p.s.

이 글은 온라인카지노북을 위해서 기존의 글을 수정 재연재한 것입니다.

너른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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