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이라는 것은 녹록지 않다.

하지만 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개발자란 말이다!

by도보방랑가 김근희

"자 슬슬 시작해 볼까?"


매 작업을 시작하기 전의 루틴이다. 이번에 공수한 코케허니 싱글오리진 원두로 커피를 먼저 내린다. 풍부한 커피 향이 작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안경을 한번 고쳐 쓰고 갈축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내 손가락이 홀린 듯 춤을 추기 시작한다. '타다닥 타닥, 탁'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 생각보다 쉽지 않았네. 그래도 언제나처럼 만들어냈지."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건 생각보다 녹록지 않은 일이다. 인터넷 브라우저가 고작 글씨 크기를 키우고 즐이거나, 사진 한 두장 겨우 띄워주던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을 해왔던 나였다.


플래시는 까불다가 죽었고, 선 넘던 액티브 X도 죽었.. 아니 그 녀석은 관공서 어딘가에서 언데드처럼 살아있다는 소식을 드문드문 들었다. 뒷배를 업고 설치던 익스플로러를 엣지라는 녀석이 죽였다는 소문도 들었지만, 오랜 시간 녀석을 알아온 나로서는 아직도 둘이 동일인물이라는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파이어폭스는 확실히 죽은 걸 봤었는데 암흑의 개발자 집단이 다시 살려냈고. 수많은 것들이 태어났다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산전수전 다 겪은 개발자. 그게 바로 나다.


고객관리, 재고관리, 거래장부. 이까짓 서비스는 솔직히 눈 감고도 만들 수 있다. 나는 언제나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나이니까. 그래 언제나처럼 멋지게 만들어냈지. 특히 이번 건 더 거친 녀석이야.

모니터의 검은 화면 너머로 보이는 하얀 텍스트들이 나의 업적을 칭찬하듯 찬란하게 반짝거린다.


매일 숨 쉬듯이 해왔던 이 의식. 익숙한 표식을 찾으려 컴퓨터가 보내오는 메시지를 무미건조하게 훑는다.


"404 Not Found. (치명적 오류 발생. 요청한 존재는 이 차원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천천히 커피를 내려놓았다. 존재하지 않는다라. 좋아. 이 서비스는 시작부터 존재론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군.


"Missing semicolon (의식은 거의 완성되었으나 마지막 한끝을 놓쳐 의식이 실패했습니다.)"

젠장. 방심하고 말았다. 너무 오래 현업에서 떠나 있었나 보군. 내가 잠시 쉬는 동안에도 기술은 계속 발전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점 하나를 해결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다니.


"Unexpected token (불법적인 금지된 룬 문자 사용이 발견되었습니다.)"

아니 이 녀석은 꽤나 까다로운 녀석인데. 지나치게 원칙주의자야. 말이 통하지 않네. 생각보다 꼼꼼한 녀석이 걸렸어. 이 프로젝트 쉽지 않겠어. 하지만 마음에 들어, 쉬운 상대였다면 재미없었을 테니까.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도보방랑가 김근희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몽상가, 활자 중독자, 글 사진찍는 프로그래머,그리고 NORM 대표였던 사람. 지금은 도보방랑가로 살아가는 봄날의 망아지

1,44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4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