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과정을 보았다.
가난한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정부가 기업을 키우기로 한 것. 그래서 당시 젊은이들의 목숨을 연구비로 바꾸어 온 일, 경제가 성장하며 이 지원을 확대하고는 기업에 눈먼 돈으로 불리게 된 일. 이 돈을 노리는 대리시험과 눈에 띄려는 미인대회가 되어 버린 일. 그리고 그것은 끊임없이 확장해서 얽히고설킨 지하철 노선도처럼 생태계가 된 일. 그리고 그 현재를 보았다. 이 모든 것이 창업과 기업의 성장, 산업을 키우려는 목적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지원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경제 규모에 비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나라다. 창업지원에만 한 해 수조 원을 쓰고, 연구개발까지 더하면 수십조 원을 쓴다. 창업 전후로 성장 단계에 따라, 기술 수준이 등급에 따라, 자금 규모에 따라, 정바카라의 방향에 따라 수많은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지원할지 맞춤형에, 개선에, 고도화에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을 투입하나. 그렇게 지원받은 기업들은 지금 어디까지 갔을까.
2023년 국회에 제출된 중소벤처기업부 자료에 의하면, 국내 창업 기업의 5년 차 생존율은 33.8퍼센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은 45.4퍼센트였다. 열 곳 중 예닐곱 곳이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통계를 낸 28개 회원국 가운데 26위다. 정부가 그 많은 돈을 들인 이유가 바로 이 숫자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창업 생태계를 살려, 기업의 생존율과 성공률을 높이겠다는 것. 그런데 세계적인 수준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데, 기업의 생존율은 거의 꼴찌였다. 물론 지원의 성과는 나중에 나올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부의 지원금으로 생존율이 높아진다면, 그것이 맞는 방향일까.
그중에서 연령대로 보면 1년 생존율은 대부분 연령이 60~70%인데 30세 미만은 59.2%로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낮다. 청년창업의 평균 생존율은 2.3년에 불과하다. 절반이 1~2년 안에 문 닫고, 10개 중 1~2개만 6~7년을 버틴다. 이 나라의 청년 기업은 데스밸리를 건너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이 죽음의 계곡을 지나도록 돕는 데 가장 앞장 서지만, 성공은 멀기만 하다. 그렇다고 그 지원이 기업을 죽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 그 노력이 헛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방향이 틀리면 아무리 의도가 좋고 애를 쓴다 해도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라, 그것을 살펴보고 싶은 것이다.
결국 기업의 성장과 산업의 성장은 나라가 부유해지고, 국민이 행복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2025년 1인당 국민총소득은 5,257만 원이었다. 그런데 가계가 실제로 쓸 수 있는 소득(PGDI)만 따로 보면, 1인당 2,917만 원이다. 5,257만 원과 2,917만 원. 뉴스에 나오는 국민소득과 내 지갑 사이에는, 2천만 원이 넘는 간극이 있다.
더구나 그 간극은 점점 벌어지고 있다. 2026년 2분기, 나라 전체의 실질 소득은 전년 대비 15.6% 늘었는데, 가계가 쓸 수 있는 소득은 5.5% 느는 데 그쳤다. 나라의 소득이 가계 소득보다 세 배 가까이 빠르게 늘었다. 그리고 그 격차가 벌어진 시기는 반도체 수출이 폭증한 때와 겹친다. 수출로 나라 전체의 소득은 커졌지만, 아직 가계의 소득까지는 오지 않았다. 국민소득에서 가계가 가져가는 몫은 2000년대 초 60퍼센트를 넘었으나, 지금은 55퍼센트 수준이다.
그렇다면 그 커진 소득은 누가 가져갔을까. 지난해 수출이 크게 늘었다지만, 대부분 몇 개 반도체 기업의 단가 상승으로 인한 것이었다. 반도체를 빼면 자동차도 선박도 수출이 줄었다. 그래서 애초에 낙수효과가 생기기 어려웠다. 그마저도 기업은 벌어들인 돈을 풀지는 않았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나라가 벌어들인 부가가치가 한 해 4퍼센트 넘게 늘 때, 일하는 사람에게 급여로 나간 몫은 그보다 더뎠고 기업에 이익으로 남은 것은 그보다 빠르게 늘었다. 파이는 커졌는데, 일하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파이가 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기업이 돈을 벌어도 고용은 늘지 않았고, 오히려 줄었다. 청년 취업자가 줄어드는 이유로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중이라는 의견도 많다.
그렇다면 가계 소득이 5.5% 늘었다는 통계는 무엇인가. 그것마저 정부가 만든 것이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가계의 실질 소득이 소폭 늘어난 것은 정부가 뿌린 현금성 지원 덕이었다. 현금성 지원을 빼고 계산해 보니, 가계가 시장에서 번 실질 소득은 오히려 1.3% 줄었다. 시장에서 사람들이 버는 돈은 줄었는데, 정부가 현금을 지원해 플러스가 된 것이다.
조금 복잡하고 골치 아프지만, 어릴 때 배운 슬롯나 경제 과목 시간을 회상하며 조금만 더 살펴보자. 지니계수를 기억에서 불러내 보자. 소득 불평등을 재는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 2026년에 OECD에서 발표된(’ 23년 기준) 우리나라의 시장에서 번 소득만으로 계산한 지니계수는 0.392였다. 비교 대상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곧 가장 평등한 수준이었다. 시장이 나눠준 것만 보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고르게 분배한 나라인 것이다.
그런데 조세와 복지를 반영한 지니계수는 0.323이 된다. 소득 평등 순위로는 1위권에서 22위까지 밀려난다. 다른 나라들은 정부에서 불평등을 크게 줄이는 동안, 우리는 조금밖에 줄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줄인 정도를 개선율이라 한다. 2023년 기준 한국의 개선율은 17.6%로, OECD 평균 34.4%의 절반이었다. 통계를 낸 29개 나라 가운데 28위, 시장은 할 수 있는 만큼 고르게 나눠주었는데, 정부는 그 이상의 불평등을 개선하지 못했다.
경제가 이렇게 흘러온 원인과 이유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내 짧은 생각으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한 가지 가설로 상상을 해본다.
정부는 부의 불평등을 조정할 의무와 바카라임이 있다. 시장이 불평등을 만들면 정부가 조세와 복지로 재분배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그 일에서 OECD 꼴찌다. 대신 일반적으로 시장이 하는 일에 우리 정부는 많은 돈을 썼다. 창업 기업을 키우는 데에 지원한 것이다. 열 곳 중 예닐곱이 필요치 않은 물건을 만들어서 5년 안에 문을 닫는 그곳에.
무엇을 만들어 팔기에 그렇게 많이 문을 닫을까. 앞서 우리는 지원을 받으려는 기업은 고객이 아니라 공고문이 원하는 물건을 만든다는 것을 보았다. 시장에 내다 팔 물건이 아니라 심사를 통과할 계획서를 만든다. 그렇게 태어난 물건은 애초에 시장이 찾지 않던 것이다. 그런 제품과 서비스는 지원이 끊기는 순간 사라진다. 정부가 그 많은 돈을 들여 키운 것이, 시장이 원하지도 않는 물건일 가능성이 너무 높다.
어쩌면 그 돈이 국민에게 돌아갔다면 어땠을까. 국민은 소비와 저축을 했을 것이고, 내수와 민간투자가 더 커졌을 것이다. 내수가 큰 나라에서는 창업 기업이 정부가 아니라 고객을 바라본다. 민간투자도 활발해질 수 있다. 시장이 충분히 크면, 정부의 지원 없이도 기업은 창업하고 성장한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시장은 그대로 두고, 기업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내수가 작으니, 기업은 시장이 있는 밖으로, 수출로 내몰렸다. 그리고 수출은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게 된다.
스스로 돌아가는 선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우리는 억지로 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재분배가 약해 시장이 작아지고, 내수시장이 작아 기업이 밖의 시장으로 나가야 하고, 수출을 위해서는 지원이 필요하고, 그 지원으로 재분배가 다시 밀린다. 기업을 키우면 국민이 잘 살 것이라 했던 낙수효과에 국민의 자리가 빠진 시장은 가장 중요한 고리에 지원금을 밀어 넣어 억지로 돌리는 악순환이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여러 풍경을 지나왔다. 시장이 아닌 곳에서 누군가 돈을 나눠준다면 그것은 눈먼 돈이 되고, 제품과 서비스가 아닌 제안서로 받아 간다면 전문가들이 제안서를 대신 써준다. 그것은 경쟁이 되고, 선택받기 위해 눈에 띄려고 애쓰는 오디션이 되어 버린다. 너무 복잡해서 목적지가 사라진 지하철처럼. 그리고 물을 채우지 못한 채 수도꼭지만 늘어가는 저수지처럼. 이제 그 저수지의 결말이 걱정된다. 물은 저수지 아래 논으로 흐르지 않고, 수도꼭지 앞에 줄 선 사람들 사이에서만 돌았다.
우리는 5년 안에 사라질 것을 키워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모이면 시장이 만들어진다. 우리에게 시장은 2,000년 전에도 있었다. 시장의 물건과 파는 사람, 그것을 사는 사람을 수천 년간 달라졌지만, 시장은 계속 있었다. 그러면 우리가 키워야 할 것은 물건일까, 파는 사람일까, 사는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