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창업

byStranding Credit

2026년 정부의 새로운 창업지원 사업이 있었다.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국민이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실패에 대한 부담을 줄여 혁신 인재의 창업을 촉진하는 사업이다. 일반·기술 트랙과 로컬트랙으로 나눠 5천 명을 먼저 선발하고, 단계별로 교육과 멘토링, 사업화 자금을 지원한 뒤 다시 평가해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일종의 창업 오디션이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무려 62,944명.

정부의 창업·아이디어 공모전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였다. 최연소 9세, 최고령 90세. 중소벤처기업부는 보도자료에 ‘대한민국은 지금 창업 열풍’이라고 했다. 대체 어떤 프로젝트이길래 아홉 살 초등학생도 창업에 도전하고, 아흔 살의 어르신도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을까.


사실 창업에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열 살부터 주식을 했다는 워런 버핏도 어릴 때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더 일찍 주식을 하겠다고 했으니, 게다가 아직도 주식을 하고 있으니.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그런데, 이렇게 정부의 프로젝트에 6만 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한 적이 있었던가? 늘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놀라운 일을 보여주었듯 이번에는 기업가 정신의 대폭발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역사적인 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아이디어 단계부터 창업자나 초기 스타트업을 대규모로 모집한 뒤 여러 차례 경쟁을 거쳐 창업자로 발전시키는 토너먼트형 창업지원 사업이다. 단계별로 사업화 자금도 지원한다. 1라운드에 진출한 이들에게 지급되는 활동 자금은 200만 원이다. 아이디어를 적어 내면 돈을 나누어 준다. 일단 통과하고, 아이디어를 개선하고 제안서를 더 잘 써서 500명 안에 들어간다. 그리고 200명, 100명, 5명. 전문 컨설팅도 받으니, 단계별로 천만 원을 받고 운이 좋으면 1억 원을 받는다. 내 아이디어가 투자를 받게 될지도 모르지. 한심하게 로또 따위를 살 필요가 있나?


그런데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는 모르겠지만 62,944명이 몰려들었다. 200만 원으로 창업이 가능한 아이디어가 몇 개인지는 모르겠지만, 200만 원을 받기 위한 경쟁은 로또에 버금갔다. 이것이 ‘창업 열풍’인지는 모르겠지만, 창업하고 싶은 사람이 많은 것과 지원금을 받고 싶은 사람이 많은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그런데 정부 지원 사업에서는 신청자가 많으면 정바카라 수요가 많았다고 하고, 경쟁률이 높으면 인기 사업이 되며, 역대 최대 신청자가 몰리면 성공적인 정바카라이 된다.


만약 1억 원짜리 연구용역 하나를 발주했는데 100개 연구기관이 제안서를 냈다고 생각해 보자. 경쟁률 100대 1을 기록했다고 담당자가 칭찬을 받을까? 지나친 수요로 참가 자격과 제대로 된 과업을 설계하지 못했다고, 문바카라까지는 아니겠지만 많이 혼날 것이다. 경쟁률이 높은 것이 좋은 정바카라이라면, 매주 천만 명가량이 사는 로또가 우리나라 최고의 정바카라이다.경쟁률이 정바카라의 성공을 증명한다면 평가도 필요 없다. 추첨하면 된다.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신청자 수보다 누구를 지원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 아닌가.


순전히 어리석은 내 생각이지만, 62,944명이라는 숫자가 정바카라과 사업의 목적에서 벗어난 잘못된 기획 같다. 그래서 죄송하게도 창업에 대한 9살 어린이의 순수함과 90세 어르신의 열정까지 비난하고 말았다. 이것도 나의 어리석음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6만 명이 몰려든 것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부터였고, 이것은 나의 우스운 상상력을 자극하고 말았다.


자, 62,944명이 신청했으니 이제 62,944명을 심사해야 한다. 여기에 1,842명의 바카라임 멘토가 동원됐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멘토 한 사람이 맡은 아이디어는 20건에서 40건이었다. 1,842명은 아마 각자 50만 원 정도의 수당을 받았을 것이다.(그 이상이나 이하일 수도 있다) 내 예상이 맞다면 평가비만 9억 2천백만 원. 정확하지는 않으니 수억 원이라고만 해두자. 200만 원씩 주려고 수억 원을 쓴다니, 백만 원짜리 회칼을 사서 5천 원짜리 숭어회를 썰어주던 내 친구가 떠올랐다.


만약 이 6만여 건을 한 사람에게 전부 맡겼다면 어땠을까. 아이디어 하나를 읽고 사업성을 판단하는 데 10분씩만 써도, 하루 8시간씩 일해서 5년이 넘게 걸린다. 30분씩 꼼꼼하게 읽는 성실한 심사위원이었다면 16년 가까이 필요하다. 첫 번째 신청자가 무엇을 냈는지는 기억하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다. 한 사람이 평가를 한 것은 아니니 다행이다.


아, 그러고 보니 신청한 62,944명도 시간이 들었을 것이다. 한 사람이 사업 내용을 생각하고 신청서를 작성하는 데 두 시간만 썼다고 가정해도 12만 5천 시간이 넘는다. 탈락할 5만 7천여 명도 똑같이 신청서를 썼다. 평가위원들은 심사 수당을 받으니 다행이지만, 탈락하신 분들의 시간은 뭘까. 그저 즐거운 기억으로 좋은 추억이 되었기를 바란다.


지원자가 많을수록 지원 사업은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슬롯 전체로 보면 선정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신청서를 쓰고, 많은 사람이 그것을 읽고, 많은 행정력이 선정과 탈락을 나누고, 결과를 안내하고 민원을 대응하는 데 쓰인다.


하지만, 이 일은 불행하게도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탈락자들은 왜 떨어졌는지 알고 싶다.

평가 의견이 지나치게 짧다는 불만이 나오고, 자신이 제출한 사업과 관계 없는 것으로 보이는 심사 의견을 받았다는 사례도 나타났다. 아이디어를 가지고 도전하라고 해놓고 비즈니스모델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취지의 평가를 받았다는 반발도 이어졌다. 1차 진출자 발표 이후 이틀 만에 문의와 재심사 요구가 378건 접수됐다.


심사위원을 향한 공격성 민원까지 벌어졌다. 심사위원의 실명과 얼굴을 캡처해 저격하는 글도 올라왔다. 6만 건을 심사하면서 실수가 한 건도 없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실수가 생길 수밖에 없는 규모를 스스로 만들었다.


뭐 처음 하는 프로젝트다 보니 이런 일이 생겼을 것이다. 다행히 정부는 개선바카라을 찾았다. 이제 다음부터는 잘될 것 같다. 정부는 심사를 강화하기로 했는데, 평가자를 늘리고 평가 의견을 충실하게 작성하도록 제도를 손봤다. 검증 절차도 보강했다. 이제 평가 의견도 최소 200자 이상을 쓴다. 만약에 1기 신청자 62,944명에게 모두 200자씩만 작성하면 1,258만 8,800자다. 대략 조선왕조실록 한글 번역본의 10분의 1 수준이고, 바카라 한 권을 10만 자라고 잡으면 약 126권이다. 평가 의견만으로 무슨 전집 한 질이 나온다. 누가 그걸 다 읽을까? 아마 담당자는 다 읽어야 할 것이다. 또 잘못 옮겨 민원이 생기면 안 되니까.


그런데 희한하게도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프로젝트는 조금씩 더 커진다. 그 커지는 예산을 투입하기 위해서 다른 예산을 희생했다. 별로 중요한 사실은 아니겠지만, '모두의 창업'은 2026년 본예산에서 출발한 사업이 아니었다. 국회 추경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1차 모두의 창업에는 기존 사업인 예비창업패키지에서 260억 원, 창업중심대학에서 176억 원, 합쳐서 436억 원이 활용됐다. 로컬트랙에도 기존 사업 예산 192억 원이 들어갔다. 1차에 쓰인 기존 예산만 628억 원이다. 여기에 2차를 위해 추경으로 2,003억 원이 새로 편성됐다. 일반·기술 트랙에 1,550억 원, 로컬트랙에 453억 원. 1차와 2차를 합치면 2,631억 원이다.


특히 예비창업패키지는 본예산의 52.9퍼센트가 모두의 창업에 사용됐다. 예비 창업자를 도우라고 국회가 배정한 돈의 절반 이상이 새로 등장한 창업 지원 사업으로 넘어갔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에 올렸다. 그런데 둘 다 창업 지원 사업이다.


2,631억 원.

2,631억 원은 한 달에 400만 원을 받는 온라인 게임인이 5,481년간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하는 수준이다. 지금으로부터 5천 년도 더 전, 이집트에 문명이 막 싹트고 초기 달력의 형태가 나타나던 무렵에 취직해서 지금까지 한 달도 쉬지 않고 월급을 받았다면 지금쯤 거의 다 모았을 것이다. 그런데 5,481년을 일하고 이제 은퇴하려 했더니, 정부는 같은 해 2차 '모두의 창업'을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1차에서 5천 명을 뽑았으니 2차에서는 1만 명을 뽑기로 했다. 보육 기관도 180여 곳에서 200여 곳으로 늘리고, 대학리그, 청소년 캠프, 글로벌리그도 만들기로 했다.


애초에 이 일은 대한민국이 창업과 기업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은 바로 지원 사업 생태계다.


모두의 창업이 정부의 기술 창업 지원 사업에서 유난히 이상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기업 지원 정바카라은 모두 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기업을 키우려고 지원할 예산을 만든다. 이 돈에는 지원자들이 모인다. 지원자들에서 지원 대상을 선정하려면 평가가 필요하다. 평가하면 탈락자가 생긴다. 탈락자는 만족스럽지 않으니 당연히 민원이 생긴다. 민원이 생기면 평가를 강화한다. 평가를 강화하면 더 많은 예산과 인력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렇게 지원 사업을 관리하기 위한 또 하나의 지원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생태계는 피라미드 형태의 먹이사슬 같은 것으로 구성된다. 맨 아래 돈을 주는 정부가 있고, 그 정부의 일을 수행하는 부처와 수행기관, 그 수행기관에 모여든 신청자. 그들이 서로 얽혀 탄생하는 수혜자. 프로젝트는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그런 프로젝트는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창업과 기업은 그 프로젝트 수혜를 위해 아이템을 발굴하고, 사업 기획을 하고, 기술도 도입한다. 비즈니스모델도 만든다.


일반적인 비즈니스모델은 고객을 대상으로 만들어지는데, 여기에서 고객은 시장이 아니라 정부다. 기업은 원래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돈을 받는다. 그런데 지원 사업 생태계에 오래 있으면 다른 능력이 발달한다. 시장이 원하는 제품보다 공고문이 원하는 제품을 만든다. 고객의 언어보다 평가위원의 언어를 익힌다. 매출보다 사업비 집행률에 익숙해진다. 제품 로드맵보다 정부 사업 일정표를 먼저 본다. 투자자를 설득하는 것보다 사업계획서를 잘 쓰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그리고 지원 사업 수행 실적이 다음 지원 사업의 가점과 신뢰가 된다.


지원을 받아 사업에 성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더 많은 지원금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위험 부담도 적다. 기회도 많고 한번 기회를 잡으면 다음은 더욱 쉬워진다. 지원 사업의 주체도 지원 사업을 해본 기업이 더 잘한다. 제안서도 더 잘 쓰고, 회계 정산도 더 잘한다. 성과로 인정하는 인허가와 특허도 확보하고, 고용 창출도 지원금 인건비로 해낸다. 웬만하면 원활하게 끝내야 하는 프로젝트에 실패 판정도 쉽게 내리지 않는다. 편법은 몰라도 불법적인 자금 집행만 없으면 된다.


창업은 원래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다. 그런데 지원 사업 생태계에서는 스타트업이라는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 유리할 때가 있다. 초기기업이어야 받을 수 있는 돈이 있고, 청년 기업이어야 받을 수 있는 돈이 있고, 기술기업이어야 받을 수 있는 돈이 있다. 성장해서 졸업하는 것보다 자격을 유지하며 다음 사업으로 이동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스타트업이 사업을 하기 위한 단계가 아니라, 스타트업 자체가 업(業)이 된다.

이것이 지원 사업 생태계의 모습이다.


기업이 시장에서 실패하면, 자사의 제품을 외면한 고객을 탓할 수 없다. 하지만 지원 사업 생태계에서 실패하면 그것은 프로젝트의 불공정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고의 아이디어, 아이템, 제품과 기술은 분명 최고인데 안 뽑히는 이유는 뽑은 사람 잘못이기 때문이다.

나는 늘 궁금하다. 애플,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의 어느 창업보육센터에서 창업했고, 어떤 지원 사업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했을까? 어떤 멘토링과 컨설팅 프로그램에 참여했을까? 그들이 한국 시장 개척단으로 참여해서 우리가 아이폰을 쓰고, 구글링 하게 되었을까? 미국은 실리콘밸리가 한 곳에 있지만, 대한민국은 실리콘밸리가 많다. 모두 다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되겠다고 선포한 광역지자체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으니까.


지금도 많은 정부 관계자, 지원기관은 새로운 지원 사업을 발굴한다. 선진국에서 한다는 지원 프로그램은 모두 들여온다. 그런 프로그램을 그대로 들여오지만, 결과는 선진국과 다른 경우가 많다. 해외의 성공한 제도를 가져오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름을 번역하고 예산을 붙이고 수행기관을 정하면 된다. 그런데 제도가 놓이는 토양은 복사되지 않는다. 경쟁시장도, 투자 문화도, 실패의 바카라임도, 대학과 기업의 관계도 함께 가져올 수 없다.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생각난다. 대한민국은 늘 더 적극적이다. 귤을 가져와 심은 뒤 탱자가 열리면, 귤 R&D 지원 사업과 탱자 고도화 사업을 하나 더 만든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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